IOC 선수위원 당선된 원윤종 “하루 15시간 투표소 길목에 서 있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2월 20일 22시 06분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뒤 포효하는 원윤종(오른쪽)
2018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4인승에서 은메달을 확정한 뒤 포효하는 원윤종(오른쪽)

“선수들에게 ‘선수 대표자를 참 잘 뽑았구나’ 하는 소리를 듣고싶다.”

한국 겨울종목 사상 첫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원윤종 전 봅슬레이 국가대표 파일럿이 20일 밀라노 코리아하우스에서 당선 소감을 밝혔다. 원 신임 선수위원은 19일 발표된 투표 결과 11명의 후보 중 득표 1위로 2명이 선발되는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원윤종은 “선수들이 저에게 믿음을 준 만큼 보답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싶다”고 했다.

IOC 선수위원 후보 유세를 위해 출국하기 전 지난달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원윤종.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IOC 선수위원 후보 유세를 위해 출국하기 전 지난달 동아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는 원윤종.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평범한 대학생활을 하다 ‘봅슬레이 국가대표 선발전’으로 엘리트 선수의 길을 걷게 된 원윤종은 썰매도 없어 외국에서 낡은 썰매를 빌려 쓰던 시절을 지나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 2015~2016시즌 봅슬레이 2인승에서 한국 봅슬레이 최초로 세계랭킹 1위를 찍는 신화를 썼다. 이어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 올림픽 때는 4인승에서 올림픽 은메달을 일궜다.

우연히 들어선 봅슬레이 선수의 길에서 올림픽 메달이라는 ‘끝장’을 본 원윤종은 은퇴 후에는 스포츠 행정에 눈을 돌렸고 IBSF 선수위원,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을 거쳐 스포츠 행정의 ‘끝판왕’인 IOC 선수위원의 자리를 따냈다.

원 위원이 IOC 선수위원이 존재를 알게된 건 올림픽 데뷔전이었던 2014 소치 올림픽 때부터였다. 다만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그 자리에 도전한다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의 생각이 바뀐 건 세 번째이자 은퇴를 앞두고 있던 2018 평창올림픽 때였다. 원 위원은 “주변을 둘러볼 여력은 없었는데 당시 유승민 선수위원(현 대한체육회장)이 스포츠 외교관으로 전방위로 활동하시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어서 이후 기회가 생겼을 때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인지도나 지명도에서 다른 후보들에 앞설 것이 없었던 원윤종은 1위 당선의 비결로 ‘진정성’을 꼽았다. 원 위원은 선수촌이 개장한 날부터 후보유세 마지막 날까지 아침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번 올림픽 4개 클러스터에 퍼진 6개 선수촌 투표소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서있었다.

밀라노 선수촌 식당 앞에서 선수위원 유세 조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하던 원윤종. 밀라노=뉴시스
밀라노 선수촌 식당 앞에서 선수위원 유세 조끼를 입고 선거운동을 하던 원윤종. 밀라노=뉴시스
원 위원은 “밀라노 선수촌에서 비가오던 날이었다. 저녁 9시 30부이 지나 저도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선수가 다가오더니 ‘얘기좀 할 수 있냐’고 했다. 자기는 엄마 선수인데 가족들을 데리고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아이를 돌보기엔 환경이 너무 어렵다고 이야기를 했다. 지금 현재 밀라노 올림픽에서는 ‘돌봄공간(널싱존)’이 없다고 한다. 파리 올림픽 때는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의견이 너무 좋은 것 같아서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적극적으로 꼭 전달하겠다고 이야기를 주고받던 게 가장 기억이 많이 난다”고 했다.

이번 유세를 위해 한국에서 운동화 두 켤레, 방한화 한 켤레를 준비해왔던 원윤종은 운동화가 많이 닳았냐는 질문에 “이동은 차로 했고 많이 걷기보단 하루에 14~15시간을 서있다보니까 신발이 닳는게 아니라 제 무릎, 허리 관절이 닳은 것 같다”며 웃었다.

원윤종은 가는 선수촌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알게하겠다’는 각오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선수촌에 지박령처럼 서 있는 그에게 커피를 건네는 선수, 봉사자, 관계자들도 있었다. 원윤종은 “하루에 세 잔 정도는 그렇게 얻어 마시고 제가 졸려서 마신 것도 있어서 하루에 커피 다섯 잔씩은 마신 것 같다”고 했다.

IOC 선수위원은 위원보다는 ‘선수’에 방점이 찍힌 직함이다. 원윤종 역시 “선수들의 대표자로서 선수들의 의견을 수렴해 행정기관에 전달하는 게 선수위원회의 역할”임을 강조했다.

공교롭게 이번 투표 기간 원윤종의 ‘친정’인 썰매 종목에서는 가장 큰 논란이 터졌다.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 희생당한 조국의 전사자들의 얼굴을 새긴 헬멧을 쓰고 경기에 나서려던 스켈레톤의 울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우크라이나)가 ‘경기장’(FOP·경기가 펼쳐지는 필드, 코트, 링크 등 선수, 코치, 심판만이 출입 가능한 제한 구역) 내에서는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할 수 없다는 IOC 규정에 따라 대회 출전을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헤라스케비치는 자신의 출전금지 처분이 부당하다며 CAS(스포츠 중재 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선수의 의견은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전쟁 희생자들의 얼굴을 헬멧에 새겼다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이 금지당해 논란이 됐던 우크라이나의 스켈레톤 선수 울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 코르티나담페초=AP 뉴시스
전쟁 희생자들의 얼굴을 헬멧에 새겼다가 이번 올림픽에 출전이 금지당해 논란이 됐던 우크라이나의 스켈레톤 선수 울라디슬라우 헤라스케비치. 코르티나담페초=AP 뉴시스

원윤종은 이에 대해 “저는 기본적으로는 선수와 행정의 가교 역할이니 선수 의견을 잘 받아서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다. 지금 당장은 선수들의 생각을 모아 IOC에 잘 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두 도시 이름을 한번에 쓸 만큼 ‘분산개최’ 로 화제가 된 이번 올림픽에서 원윤종은 6곳의 선수촌을 속속들이 모두 다녀본 몇 안 되는 경험을 가지게 됐다.

원윤종은 “밀라노 선수촌이 가장 인원도 많고 규모가 큰 반면 안테르실바 선수촌은 바이애슬론 단일 종목만 있고 선수촌도 빌리지 개념이 아니라 4개 호텔을 묶어놨더라.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니 세계선수권, 월드컵 같다는 얘기가 많았다”며 “클러스터마다 선수단 규모가 달라서 사정이 다르지만 올림픽은 경쟁의 장이기도 한 동시의 축제의 장이다.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들이 최대한 올림픽 분위기를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요소를 구성해 놓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원윤종은 아직 선수위원 신분으로 AD(선수, 코치, 보도진 등 관계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경기장 및 훈련장 출입 권한을 통제하는 필수 신분증)를 받지 못했다. 원윤종은 빠르면 내일 선수위원으로 업그레이드된 AD를 수령할 예정이다.

#원윤종#IOC 선수위원#봅슬레이#밀라노 코리아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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