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은 어떤 로테이션으로 가장 ‘재미’를 봤을까[발리볼 비키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3일 14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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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장충 경기 승리 후 기뻐하는 흥국생명 선수단.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19일 장충 경기 승리 후 기뻐하는 흥국생명 선수단.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프로배구 여자부 흥국생명은 5라운드 시작과 함께 ‘변칙 로테이션’ 카드를 꺼냈습니다.

‘배구 여제’ 김연경(35)과 외국인 선수 옐레나(26·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항상 ‘대각’에 서도록 로테이션을 짰던 겁니다.

원래 배구에서는 아웃사이드 히터(OH)와 미들 블로커(MB)는 같은 포지션끼리 오퍼짓 스파이커(OP)는 세터(S)와 대각에 서는 게 정석입니다.

김연경은 OH, 옐레나는 OP라 두 선수는 연달아 서거나 한 칸을 뛰어 서는 게 정석인데 두 칸을 뛰어 대각에 섰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시는 분은 아래 그림을 참조하시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김연경은 후위 왼쪽, 옐레나는 전위 오른쪽으로 대각입니다.
김연경은 후위 왼쪽, 옐레나는 전위 오른쪽으로 대각입니다.
김대경 감독대행(36)은 5라운드 시작과 함께 14세트 연속으로 이 카드를 썼지만 19일 장충 방문경기 1세트를 22-25로 내주자 2세트부터 카드를 바꿨습니다.

그러면서 이 경기 2세트 흥국생명 서브는 이원정(23·S) → 김연경김나희(34·MB) → 옐레나김다은(22·OH) → 이주아(23·MB) 순서가 됐습니다.

이렇게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에 선수 한 명이 들어가는 건 두 선수가 동시에 코트 위에 있던 103세트 가운데 9번(8.7%)밖에 쓰지 않았던 카드였습니다.

그리고 이날 2~4세트를 포함해 이렇게 선발 로테이션을 꾸린 12세트 가운데 11세트(91.7%)를 따냈습니다.

나머지 한 세트는 지난달 15일 광주 방문경기 2세트였는데 이날 흥국생명은 경기 내내 이 로테이션을 썼고 결국 3-1 승리를 거뒀습니다.

옐레네와 김연경 사이에 김나희가 있습니다.
옐레네와 김연경 사이에 김나희가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로테이션에서 더 중요한 건 서브 순서가 아니라 선수 위치입니다.

흥국생명이 이번 시즌 가장 많이(81세트) 쓴 로테이션은 김연경과 옐레나가 붙어다니는 방식입니다(위 그림).

두 선수가 붙어 다니면 전체 로테이션 6번 가운데 2번은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서지만 또 2번은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자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로테이션은 김여일 전 단장과 권순찬 전 감독이 자리를 내놓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신용준 흥국생명 단장은 취임 기자회견(?)에서 “팬들 사이에서 전위에 김연경과 옐레나가 같이 있는 게 아니고 전후로 나눠서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김연경(왼쪽)과 옐레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김연경(왼쪽)과 옐레나.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위에서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 또는 후위에 서는 게 6번 중 2번(33.3%)이라고 말씀드린 건 ‘이론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는 두 선수가 모두 전위에 있을 때는 흥국생명이 연속 득점을 올리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면 해당 시점 로테이션을 유지한 상태에서 계속 경기를 치를 수 있습니다.

거꾸로 두 선수가 전부 후위에 있을 때는 연속 실점을 당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이럴 때는 +/-를 따져서 어느 쪽 케이스가 많았는지 알아보면 됩니다.

이럴 때는 김연경과 옐레나가 붙어서 돌아갑니다.
이럴 때는 김연경과 옐레나가 붙어서 돌아갑니다.
배구에서 모든 랠리는 우리 팀 득점 아니면 상대 팀 득점으로 끝납니다. 고로 우리 팀이 이번 랠리에서 득점할 확률은 기본적으로 50%입니다.

김연경과 옐레나가 나란히 선 상태로 맞이한 랠리는 총 3186번입니다.

이 중 1224번(38.4%)은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섰고, 975번(30.6%)은 두 선수가 전부 후위에 있었습니다.

두 선수가 나란히 전위에 있는 동안에는 673점을 올리는 동안 551점을 내줘 122점 이득을 봤습니다.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있을 때는 478득점, 497실점으로 19점 손해입니다.

‘전-전’ 이득이 ‘후-후’ 손해보다 훨씬 큽니다.
‘전-전’ 이득이 ‘후-후’ 손해보다 훨씬 큽니다.
전체적으로 흥국생명은 이 3186번 가운데 52.3%(1667번)에서 점수를 따냈습니다.

15점제로 진행하는 5세트를 빼면 세트당 랠리는 평균 46.3번입니다.

이 중 52.3%에서 득점한다는 건 평균 24.2점을 올린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두 선수가 대각에 섰을 때 그러니까 두 선수 중 한 명은 반드시 전위에 있을 때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때는 전체 580랠리 중 300득점으로 51.7%였습니다. 평균 23.9점입니다.

어느 로테이션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지만 ‘전-전’ 이득은 작습니다.
어느 로테이션에서도 손해를 보지 않지만 ‘전-전’ 이득은 작습니다.
결과가 가장 좋았던 건 두 선수가 한 칸을 띄우고 서는 방식입니다.

이 때는 전체 랠리 483번 가운데 55.7%(269번)이 흥국생명 득점으로 끝났습니다.

이러면 평균 25.8점으로 이미 세트가 끝나게 됩니다.

이 로테이션이 효과적인 건 두 선수 모두 후위에 서는 랠리가 16.8%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앞서 보신 것처럼 12세트 가운데 11세트 승리입니다.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에 선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김연경과 옐레나 사이에 선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김연경이 말한 것처럼 로테이션에 정답은 없습니다.

또 같은 경기를 서로 다른 로테이션으로 치르는 건 ‘이론적으로만’ 가능한 일이라 다른 경기에서 이 로테이션을 꺼냈다고 결과가 같았으리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과가 좋은 로테이션을 이렇게 적게 쓰고 있는 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오늘(23일)은 새로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게 된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53)이 데뷔전을 치르는 날입니다.

구단에서 ‘세계적인 명장’이라고 소개한 아본단자 감독이 어떤 로테이션 카드를 들고 나올지도 관심있게 지켜봐 주세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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