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바리니 감독 “김연경은 특별하고 놀라운 선수…잊을 수 없을 것”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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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랠리마다 그가 보여준 ‘원더풀 쇼’에 대해 감사하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김연경은 특별하고(unique)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unbelievable) 선수였습니다. 잊을 수 없을 겁니다.”

눈부신 시간을 함께 건너 온 동료애가 느껴졌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배구 4강 역사를 이끈 스테파노 라바리니 대표팀 감독(42·이탈리아)은 최근 대표팀 공식 은퇴를 선언한 배구여제 김연경(33·상하이 광밍)에게 감사인사를 전했다. 대회 직후 일본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간 라바리니 감독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김연경의 대표팀 은퇴 발표는) 나를 비롯한 모든 배구팬들에게 감동적(touching)이고 슬픈(sad) 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9년 1월 한국 대표팀 사상 첫 외국인 감독으로 선임된 그에게 지난 2년은 곧 김연경과의 동행을 의미하기도 했다. 과거 수년 전부터 네트 너머로 김연경을 봐왔던 라바리니 감독은 “처음 본 김연경은 매우 숙련돼 있고, 또 혼자서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인상을 줬다. 동료, 상대팀, 코치, 심판, 관중 너나할 것 없이 경기장 위 모두가 그를 존경한다는 사실에 또한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선수 경험 없는 지도자’라는 이색 경력을 가진 라바리니 감독에게도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올림픽 무대에 선다는 건 색다른 도전이었다. 어렸을 때 본 한 배구 코치의 열정과 선수와의 관계에 매료돼 지도자 꿈을 꿨다는 그는 “나는 감독의 모든 역할을 매우 좋아한다. 기술을 가르치고, 전술을 세우고, 전략을 선택하고, 선수들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그들의 모든 재능, 열망, 노력을 전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했다.

“감독은 리더이자, 보스, 선생, 아버지, 큰 형이기도 하지만 또한 선수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며 자신만의 지도관을 설명하기도 했다. 평소 “훈련은 누구보다 철저히 하고, 훈련이 끝나면 허물없이 친구처럼 지낸다”는 대표팀 선수들의 설명과 일맥상통했다. 앞서 김연경도 “라바리니 감독의 지도 스타일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럽다”며 믿음을 드러내왔다.

4강 진출의 성과는 라바리니 감독에게도 각별했다. 가장 인상적인 경기로 일본과의 A조 조별예선(3-2 승리)을 꼽은 라바리니 감독은 “무엇보다 우리의 목표였던 8강 진출을 달성한 경기였고 한국 선수들에게 일본과의 경기란 더 강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특별했다”고 말했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으로 과거 자신이 보좌한 바 있는 조반니 귀데티 터키 대표팀 감독(49)과의 8강 맞대결(3-2 승리)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라바리니 감독은 “우리는 친한 친구인 동시에 이전까지 그를 이겨본 적이 없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배구 감독 중 한 명이며 터키도 국제무대에서 가장 발전하는 팀이었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모든 감정이 사라졌고 그저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물론 이 모든 난관을 뚫고 세계 4강에 선 한국 대표팀과의 동행이 가장 큰 의미였다. 라바리니 감독은 “한국에 온 첫 날부터 한국인들이 어떻게 단합되고 서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지 느꼈다. 우리 팀의 단결은 한국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동시에 김연경의 은퇴 이후 앞으로 한국 여자배구가 안게 될 과제도 진단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 올림픽은 한국 배구와 국제배구의 간극을 보여준 대회라고 생각한다. 여자배구는 더 격렬하고 빨라지고 있다. 한국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기 위해선 그들의 선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끝으로 공식 임기를 마친 라바리니 감독은 현재 대한민국배구협회의 재계약 제안을 받고 고민하고 있다. 향후 거취에 대해서는 “(재계약 제안에 대해) 우리가 열심히 해왔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인 만큼 고맙게 생각한다”고 즉답을 피했다. 가족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그러나 한국 팬을 향한 고마움만은 잊지 않았다.

“한국 대표팀과 함께한 2년은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 훌륭한 경험이었습니다. 존경스러운 많은 이들과 함께 걸었고 또 온 나라의 따스함도 느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멋진 팀과 함께 야심 찬 성과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그가 보여준 환한 웃음을 떠올리게 하는 인사말이었다.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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