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조에 홀린 8세 꼬마는 ‘100년 만의 천재’로 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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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우리가 간다]
작년 월드컵 마루 1위 19세 류성현

한국 기계체조 유망주 류성현이 6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안마에 올라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제체조연맹(FIG) 종목별 월드컵 마루 종목에서 1위에 오른 류성현은 7월 열릴 예정인 도쿄 올림픽으로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한다. 대한체조협회 제공
한국 기계체조 유망주 류성현이 6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안마에 올라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국제체조연맹(FIG) 종목별 월드컵 마루 종목에서 1위에 오른 류성현은 7월 열릴 예정인 도쿄 올림픽으로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한다. 대한체조협회 제공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선수예요. 운동 센스부터 순발력, 유연성, 정신력까지 필요한 모든 걸 타고났습니다.”

스포츠 선수에게 이보다 더 큰 칭찬이 있을까. 신형욱 남자기계체조 국가대표팀 감독에게 기계체조 유망주 류성현(19·한국체대 1학년)에 대해 묻자 이 같은 대답이 나왔다. 신 감독은 “류성현은 다른 체조선수들과 비교해도 기술 습득이 10배 이상 빠르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체조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가 될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11년 전 울산 양사초의 체육관 한편에는 학교 수업이 끝나고도 집에 가지 않고 벤치에 앉아 있는 2학년 학생이 있었다. 그는 체육시간에 봤던 학교 체조부 선수의 모습을 잊을 수 없어 매일 체조장을 찾았다. 점심부터 오후 5시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집에 와서는 잠자리에서 혼자 핸드스프링(제자리에서 손으로 앞이나 뒤를 짚고 도는 동작)을 연습했다. 체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한 8세 류성현이었다.

체조가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반대했다. 축구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운동선수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다. 류성현의 열망과 재능을 눈여겨본 체조 선생님이 제자의 부탁으로 아버지를 설득한 뒤 겨우 허락이 떨어졌다.



체조 인생이 순탄하진 않았다. 중학교에서 훈련량이 2배가량 늘자 체력적 한계에 부딪쳤다. 체조를 말렸던 아버지에게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 못 하겠으면 관둬도 괜찮다”던 아버지 위로에 도리어 ‘끝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다잡게 됐다.

류성현은 2018년 고1 때 국가대표에 발탁된 뒤 이듬해 주니어세계선수권 1위(마루), 지난해 종목별 월드컵 1위(마루)를 휩쓸었다. 그는 이제 도쿄 올림픽으로 생애 첫 올림픽에 도전한다.

그는 경기 때마다 하는 루틴이 있다. 연기 전 30초의 준비시간 동안 눈을 감고 “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그의 간절함은 부모님에 대한 감사에서 왔다. 아버지가 온 힘을 다해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집안 형편은 늘 어려워 친구들에게 “거지”라고 놀림 받은 적도 있다. 류성현은 “부모님께 올림픽 메달을 드리며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 정말 고생 많으셨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뜀틀에서 금메달을 딴 대학 선배 양학선(29)처럼 자신의 이름을 딴 기술을 개발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류성현은 도쿄 올림픽에서 스페인 출신의 기계체조 선수 사파타(28)가 마루 종목에서 만든 ‘사파타 기술’을 개량해 ‘류성현 기술’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제자리에서 앞으로 뛰어 몸을 540도 비트는 게 사파타 기술이었다면 여기서 반 바퀴를 더 돌아 720도 회전 후 착지하는 ‘류성현 기술’로 등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달 대학에 입학한 류성현은 진천선수촌에서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오전 8시에 일어나 원격 강의를 듣고 오후에 3시간가량 훈련을 하는 일과를 반복하고 있다. 바쁜 나날이지만 단단한 목표를 떠올리며 1분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각오다. “양학선 선배를 존경하지만 ‘제2의 양학선’으로 불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류성현이란 제 이름 그 자체로 빛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
#체조#류성현#월드컵 마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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