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계 흔드는 ‘얼굴 없는 제보자’…“제보센터가 없는데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의문스럽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4일 05시 45분


미국의 렉시 톰슨은 시청자 제보로 벌타를 받았고, 결국 LPGA투어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을 놓쳤다. 골프에서는 시청자 뿐 아니라 갤러리의 제보로 선수들에게 벌타가 부과되기도 한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미국의 렉시 톰슨은 시청자 제보로 벌타를 받았고, 결국 LPGA투어 ANA 인스퍼레이션 우승을 놓쳤다. 골프에서는 시청자 뿐 아니라 갤러리의 제보로 선수들에게 벌타가 부과되기도 한다.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렉시 톰슨 사건으로 본 시청자 경기 개입

ANA 3R 퍼트지점 옮겨 4벌타 우승 놓쳐
시청자 제보에 의해 뒤늦은 벌타 도마위
우즈·매킬로이 등 골프스타들 유감 표시
경기위원 출신 C씨 “제보 모두 반영 안돼”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렉시 톰슨(미국)의 시청자 제보에 의한 벌타 사건과 관련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마이크 완 커미셔너가 “답답하고 부끄럽다”고 심경을 밝혔다.

지난 4월 3일(한국시간)의 일이다. 렉시 톰슨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랜초미라지의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ANA 인스퍼레이션 마지막 날 4라운드 12번 홀까지 3타 차 선두를 달렸다. 당일 톰슨의 경기력 등을 감안했을 때 거의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톰슨이 리더보드 맨 위에서 사라졌다. 경기 중이던 톰슨은 경기위원회로부터 4벌타를 받았고, 그 바람에 유소연(27)과 연장까지 치렀지만 결국 우승을 놓쳤다.

톰슨이 4벌타를 받게 된 사연은 전날 경기에서 발생한 일 때문이다. 3라운드 17번 홀에서 50cm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의 파 퍼트를 하려다가 머뭇거리더니 마크를 하고 공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원래 지점보다 1∼2cm 옆쪽에 공을 놓고 퍼트했다. 당시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뒤늦게 시청자 제보에 의해 이 사실이 알려졌다. 그로 인해 톰슨은 오소플레이 2벌타에 스코어카드 오기로 인해 추가 2벌타를 부과 받아 한번에 4타를 까먹었다. 이후 골프계에서는 시청자 제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선수들도 찬반이 분분한 가운데 대부분은 “시청자가 경기에 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많다. 타이거 우즈는 “시청자가 경기위원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유감을 표했고, 필 미켈슨과 로리 매킬로이도 시청자 제보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대로 넘어갈 듯했던 사건이 13일(한국시간) 재차 불거졌다. 미국 하와이 주 코올리나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다시 회자됐다. 마이크 완 커미셔너는 “실수에 대한 벌칙이 제대로 산정되지 않은 건 아쉽다. 하지만 LPGA는 67년 동안 골프 규정을 준수해왔다”며 변화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못 박았다. 반면 미셸 위는 “시청자들이 어디에 전화를 거는지 궁금하다”고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많은 스포츠가 TV로 중계되지만, 시청자 제보가 판정에 영향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셸 위는 2005년 데뷔전이던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현장을 취재하던 기자의 제보로 실격당한 적이 있다.

● 시청자 제보는 언제부터?

골프대회에서 시청자 또는 관중(갤러리)을 코스 밖의 경기위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인해 판정이 바뀌거나 벌타를 받은 사건은 부지기수다. 타이거 우즈도 시청자 제보에 의해 벌타를 받은 적이 있다. 2013년 마스터스 2라운드 때 시청자 제보에 의해 드롭을 잘못한 일이 알려졌다. 경기위원회는 뒤늦게 사실을 확인했고, 결국 우즈는 오소플레이로 벌타를 받았다.

골프대회에서 최초의 시청자(관중) 제보는 195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브리티시오픈 마지막 날 18번홀 경기에서 바비 로크는 우승을 앞에 뒀다. 그린에 올라와 마크를 한 뒤 공을 집어 들었지만, 상대의 퍼트라인에 걸려 마크를 옮겼다. 그러고는 자신의 차례가 와 퍼트를 했지만, 공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놓지 않고 옮겨 둔 곳에서 플레이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 났지만 이를 본 관중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대회를 주관한 R&A는 오소플레이에 의해 2벌타를 부과해도 로크의 우승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은 골프대회에서 발생한 최초의 시청자 또는 관중의 제보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시청자와 관중들의 제보가 활발해졌으며 경기위원회도 이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골프에서 시청자 제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가 있다. 다른 스포츠와 달리 골프는 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진다. 골프장의 넓이는 18홀 기준 약 30만 평(99만m²)으로 잠실야구장(약 8000평)의 37배에 달한다.

골프는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골프규칙은 물론 매너와 에티켓까지 따진다. 하지만 드넓은 경기장에서 펼쳐지는 만큼 모든 홀에 심판(경기위원)을 배치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골프에서는 선수들(일반 플레이어 포함) 스스로 규정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즉, 선수 스스로가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한 경기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경기위원들은 선수가 판정을 내리기 애매한 상황에 관여하고, 시청자의 제보를 받아들이는 건 경기위원들이 모든 선수들의 경기를 지켜볼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가장 공정한 방식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서는 방송 중계가 더 정밀해지면서 시청자 경기위원들의 활약(?)이 점점 커지고 있다.

● 제보는 누가 받나?

국내의 골프대회에서도 시청자 제보에 의한 판정 사례는 많다. 정확한 제보도 있지만 오보도 많다. 2014년 제주삼다수여자오픈에서는 A선수가 그린 밖에 있는 공을 마크하고 집어 들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롯데칸타타여자오픈 때는 B선수가 그린 밖에서 칩샷을 하기 전 퍼터 헤드로 그린을 두르려 라이를 개선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볼 자국을 수리하는 정당한 행동으로 벌타를 받지 않았다. 실제로 경기위원으로 활동했던 C씨는 “하루에도 몇 건의 제보를 받을 때도 있다”면서 “그러나 시청자들의 제보가 모두 반영되는 건 아니다. 일부는 오보이거나 판정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이 더 많다. 제보가 들어오면 경기위원들이 사실여부를 확인한다. 그러나 상황을 잘못 보고 제보를 하거나 룰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보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청자들의 제보가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지도 궁금하다. 실제로 미셸 위의 의문처럼 시청자들이 어디에 제보를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국내의 상황을 봐도 따로 시청자 또는 관중들의 제보를 받는 곳은 없다. 대회가 열리는 현장에서도 제보센터 등은 마련돼 있지 않다. 대회를 주관하는 협회도 마찬가지다. 제보를 전담하는 직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홈페이지 등에도 별도의 공간이 없다.

시청자 제보의 대부분은 방송국을 통해 전달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 또는 직접 전화를 걸어 제보하기도 한다. 톰슨의 사건은 TV를 보던 시청자가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보가 들어오면 이런 내용이 경기위원회에 전달이 되고, 경기위원들은 당시 상황을 조사한 뒤 해당 선수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 판정을 내린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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