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추남일기] 허프는 왜 양상문 감독의 방문을 두드렸을까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26일 05시 30분


LG 허프. 잠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LG 허프. 잠실|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용병’을 극도로 혐오했다. 14세기 동방무역으로 부를 축적한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은 용병을 고용해 국방을 맡겼다. 그러나 용병은 언제든지 더 많은 돈을 받고 창끝을 뒤로 돌리기 일쑤였다. 마키아벨리의 주장은 ‘용병은 최악의 선택이다. 유능할 경우 왕의 지위를 위협하며 무능할 경우 재력을 축내고 결국 안보를 위협한다’고 요약할 수 있다.

서양사의 가장 유명하고 의미 있는 장면 중 하나인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에는 오스만 제국의 공성전을 훌륭하게 방어하던 용병 대장 주스티니아니의 도주가 있었다.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외국인 선수는 얼마 전까지, 아니 지금도 ‘용병’으로 종종 불린다. ‘외국인선수’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역사적으로 부정적인 의미가 훨씬 큰 용병으로 칭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 역시 가장 큰 목적은 어쩔 수 없이 돈벌이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인인 국내 선수도 돈벌이는 매우 중요하다. 차이점은 외국인 선수는 언제든지 훌쩍 떠나버릴 수 있다는 점이다. KBO리그 역사를 돌이켜보면 ‘용병’처럼 행동한 외국인 선수의 사례는 수 없이 많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더 높은 보수를 요구하며 미국으로 가버린 전 삼성 갈베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용병이 아닌 진짜 프로의 면모를 보여준 외국선수도 많다. 2016년 가을야구 LG의 에이스로 활약한 데이비드 허프는 24일 플레이오프(PO) 3차전을 앞두고 잠실구장 양상문 감독의 방을 두드렸다. 하고 싶은 말은 명료했다. “몸 상태가 충분하다. 오늘 던지게 해 달라. 오늘이 팀의 올해 마지막 경기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지만 힘을 보태고 싶다.”

허프는 22일 마산 2차전에서 7이닝 동안 97개의 공을 던졌다. 팀의 시리즈 탈락 위기에 몰리자 허프는 선발 등판 후 단 하루가 지났지만 감독에게 찾아가 등판이 가능하다는 뜻을 전했다. 허프는 이미 올 시즌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내년 LG와 재계약이 유력하다. 메이저리그에서 8시즌을 뛰었기 때문에 미국 복귀나 일본 진출도 노려볼 수 있다. 그러나 24일 허프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팀이 우선이었다. 양상문 감독은 이날 허프의 청을 마다했다. 그러나 25이 4차전에서 5회 투입한 허프를 7회까지 끌고 가다 홈런 2방을 맞는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비록 허프의 투입은 결과적으로 실패다. 그러나 사전 속 ‘용병’이라는 단어는 이제 허프에게서 완전히 지워야 할 것 같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