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잠망경] ‘업템포 2.0 배구’로 진화한 현대캐피탈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10월 5일 05시 30분


현대캐피탈 선수단에는 늘 밝은 분위기가 감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수평적 문화가 강하다. 현대캐피탈이 추구하는 창의적 배구의 토대는 기본에서부터 출발한다.  청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현대캐피탈 선수단에는 늘 밝은 분위기가 감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수평적 문화가 강하다. 현대캐피탈이 추구하는 창의적 배구의 토대는 기본에서부터 출발한다. 청주|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프로배구의 계절이 돌아온다. KOVO컵을 통해서 드러났듯, 올 시즌 V리그는 절대강자도, 약자도 없는 전력평준화의 춘추전국 구도가 예상된다. 게다가 트라이아웃으로 선발된 외국인선수의 가세로 더 예측하기 어려운 재미를 제공하고 있다. 프리에이전트(FA)와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 이동도 활발한 편이었다. 장기 레이스인 V리그에서 각 팀 사령탑들의 고뇌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럴수록 팬들은 즐겁다. 스포츠동아는 15일 개막하는 V리그 개막에 맞춰 KOVO에서 주목할만할 변화를 추구한 구단들의 전력을 심층 분석하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로 지난 시즌 새로운 배구 트렌드를 창출하며 최고의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던 현대캐피탈을 다룬다.


● 스피드배구의 업그레이드는 가능할까?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은 9월 일본 오사카 전훈에서 파나소닉과의 평가전을 마친 뒤 밖에 나가 담배를 입에 물었다. 멀리서 이를 지켜본 김성우 사무국장이 “저러면 안 되는데…”라며 걱정을 드러냈다. 갑상선암과 싸워 완치된 뒤, 최 감독은 담배를 멀리 했다. “괜찮다”고 씩 웃었지만 현대캐피탈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직면한 최 감독이 받는 중압감은 상상 이상인 듯했다.

현대캐피탈은 2015~2016시즌의 팀이었다. 우승만 빼고 많은 것을 얻었다. ‘V리그에서 이기려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여졌던 소위 ‘몰빵배구’와 결별하고도 정규시즌 1위(28승8패·승점 81점)라는 엄청난 실적을 냈다. 특히 후반기는 전 경기 무실세트 승리였다.

메시지에서 강렬했던 업템포 1.0 배구는 성적이 뒷받침되며 시너지가 나왔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 상황이다. 가장 큰 변화는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제도 도입으로 도저히 몸값을 맞춰줄 수 없는 S급 인재 오레올이 팀을 떠난 것이다. 공수에 걸쳐 이 구멍을 어떻게 메울 것이지, 그 과정에서 현대캐피탈 배구의 에센스인 스피드를 어떻게 놓치지 않을 것인지가 과제로 남았다. 일본 전훈은 이를 보완할 방책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모색의 시간이었다.

현대캐피탈 신영석. 사진제공|현대캐피탈
현대캐피탈 신영석. 사진제공|현대캐피탈

● 국가대표 센터 신영석의 레프트 전향 실험

혁신은 틀을 깨는 데에서 비롯된다. 기득권을 배제하고 판을 다시 짜는 상상력은 곧 최 감독의 비범함이기도 하다. ‘어떤 조합이 팀 현대캐피탈에 가장 도움이 될 것인가’가 최고 가치이자 화두다. 그 생각 속에서 나온 파격이 국가대표 센터 신영석의 레프트 전향 실험이다. 일본 나고야와 오사카 평가전에서 신영석은 오로지 레프트로만 뛰었다. ‘실전만한 훈련이 없다’는 최 감독의 지론에 따른 결과다. 어느 날, 평가전이 끝난 뒤 다른 선수들은 숙소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신영석만 남아있었다. 최 감독이 손수 토스를 올려줬는데 그칠 줄을 몰랐다. 신영석은 거친 숨이 나올 때까지 스파이크를 때렸다. 현대캐피탈 선수들은 놀라지도 않았다. 예전부터 있었던 광경이었던 듯했다.

신영석이 레프트에 서면 센터 최민호~라이트 문성민까지 V리그 최강 높이가 완성될 수 있다. 실제 평가전에서 현대캐피탈은 이 셋이 전위에 섰을 때 득점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레프트 신영석’에 대해 최 감독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긍정의 뉘앙스였다. 신영석의 센스와 노력에 대한 믿음이다. 신영석은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지만 티 내지 않고 훈련을 소화했다. 센터에서 레프트가 되면 리시브를 해야 하고, 운동량이 커지지만 감내하고 있다.

KOVO컵에서 드러났든 신영석은 언제든 본업인 센터로 돌아갈 수 있다. 최 감독은 KOVO컵에서 신영석은 라이트로도 투입됐고, 센터 최민호의 라이트 실험도 이뤄졌다. 지금 현대캐피탈에 중요한 가치는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성공이라는 시선이 아니라 최선을 찾아가는 과정의 탐색에 있다. 현대캐피탈이 아니라면 V리그에서 뛸 수 없었을 것으로 여겨질 만큼 의외의 선택인 새 외국인선수 톤 밴 랭크벨트(이하 톤)의 파괴력은 오레올과 비교할 수 없지만 팀 융화와 수비능력은 합격점이다. 톤을 대체할 토종선수 자원(송준호, 박주형)이 부족하진 않다.

현대캐피탈 문성민.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문성민. 스포츠동아DB

● 이제 현대캐피탈은 문성민의 팀이어야만 한다!

높이는 신영석, 수비는 톤이 대안 카드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공격력은? 최 감독은 당위적으로 문성민을 선택했다. 이제 문성민에게 외국인선수급 공격 성공률과 점유율을 바라고 있다. 문성민이라면 할 수 있다고 신뢰한다. 문성민도 팀을 위한 최선이 무엇인지를 공감하고 있다. 7월 인천에서 열린 한중일 클럽챔피업십에서 현대캐피탈은 외국인선수 없이, 우승을 차지했다. 이때, 문성민은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띄워주는 볼을 해결하는 능력이 더 필요해졌다.

현대캐피탈은 선수층이 두꺼운 팀에 속한다. 트레이닝 파트의 관리도 섬세하다. 연고지 천안에 건설한 복합 훈련시설인 ‘캐슬 오브 스카이워커스(이하 캐슬)’는 최고의 선수 관리 시설을 자랑한다. 그러나 긴 시즌을 치르기에는 현대캐피탈 역시 불안요소를 지니고 있다. 세터 노재욱, 신영석 등 세심한 몸 관리가 필요한 선수들이 적지 않다. 에이스 문성민의 나이도 이제 30세에 접어들었고, 리베로 여오현은 38세다.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현대캐피탈 최태웅 감독. 스포츠동아DB

● “우리는 4위 전력”이라는 말속에 담긴 지향성

최 감독에게 올 시즌 전망을 물어본 적이 있다. 이제야 말할 수 있지만 최 감독은 9월 일본 전훈 때부터 “KOVO컵은 한국전력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견했는데 정확히 맞췄다. 그렇다면 본 무대인 V리그는? 당시 최 감독은 조심스럽게 “삼성화재, 대한항공, OK 저축은행”을 꼽았다.객관적 전력 상, 우위라는 뜻이다. 현대캐피탈은 한국전력, 우리카드, KB손해보험 등과 4위를 다툴 것이란 냉정한 진단을 내렸다. 이 말은 현대캐피탈이 4위를 목표로 삼겠다는 엄살이 아니다. 4위 전력임에도 어떻게 3강을 따라잡을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목표의식이 담겨있다. 불안요소는 많다. 지난해만큼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이 추구하는 ‘남들과 다른 배구, 승리가 아닌 팬과 구성원이 행복한 배구’를 향한 도전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