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굿모닝 MLB] 이언 데스먼드 헐값 계약·외야수 전향… 텍사스 ‘최고의 잭팟’

  • 스포츠동아
  • 입력 2016년 6월 27일 05시 45분


텍사스 레인저스 이언 데스먼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텍사스 레인저스 이언 데스먼드.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7년 1억달러 계약 뿌리친 데스먼드
텍사스와 1년 800만달러 헐값계약

5월 중견수 변경 이후 공수 맹활약
추신수와 공포의 테이블세터 구축

야구에서 ‘도박’이라는 단어는 유난히 많이 사용된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릴 것 없이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왕왕 펼쳐지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도박으로 9900만 달러(약 1160억 원)를 1년여 만에 날린다면 어떤 기분일까. 여기 자신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신하다 시쳇말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선수가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추신수(34)와 함께 메이저리그 최고의 ‘테이블 세터’로 불리는 이언 데스먼드(31)가 주인공이다.

사상 최악의 계약

올해 2월, 텍사스는 데스먼드와 1년 800만 달러(약 94억원)에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격 발표했다. 불과 1년여 전 워싱턴 내셔널스가 제안한 7년 1억 달러(약 1173억 원) 계약 연장을 단칼에 자르고 FA(프리에이전트) 시장을 노크했던 터라 그 충격은 매우 컸다. 게다가 ‘퀄리파잉 오퍼’로 1년 1580만 달러의 조건마저 코웃음을 쳤던 그였다.

그러나 잭 그레인키, 데이빗 프라이스, 조던 짐머먼 등 특급투수 위주로 요동을 친 스토브리그에서 데스먼드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오퍼를 하는 구단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은 점점 흐르고 스프링캠프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데스먼드는 텍사스의 헐값(?) 계약에 동의를 해야만 했다.

워싱턴의 단장을 역임한 짐 보든은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울분을 참지 못했다. “도대체 하위 켄드릭이 2년 20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는데 데스몬드가 800만 달러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정말 충격적인 금액이다. 레인저스 존 대니얼스 단장의 수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불과 12달 사이에 9900만 달러를 잃은 셈 아닌가? 내가 지금까지 본 사례 중 최악의 계약이다.”

내야에서 외야로 포지션 전향

돈도 돈이지만 왜 하필 텍사스로 행선지를 정했는지도 많은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아드리안 벨트레를 위시해 엘비스 안드루스, 루그네드 오도어, 프린스 필더, 미치 모어랜드 등으로 이뤄진 레인저스 내야진에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 데스먼드의 자리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고 유망주 주릭슨 프로파마저 수년간 마이너리그를 전전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대니얼스 단장은 “데스먼드가 레인저스에서 내야수가 아닌 외야수로 뛰게 될 것”이라 천명했다. 루키 시즌인 2009년 2루수로 5경기, 우익수로 1경기에 나선 것을 제외하고 데스먼드는 유격수로만 913경기에 나섰다. 사실상 유격수로만 출전한 선수에게 외야수로 포지션을 전향시킨다는 것은 대니얼스 단장과 데스먼드 모두에게 큰 도박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실책 많은 좌익수

시즌 초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근본적으로 내야와 외야는 그라운드 볼을 처리할 때 발의 위치부터 차이가 난다. 스프링캠프 때 경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29경기에 좌익수로 출전해 3개의 실책을 저질렀다. 에러로 기록되지 않은 타구 판단 미스도 많았다. 수비율은 0.929에 그쳤다. 유격수 시절 수비율 0.962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 것이다. 수비에서 안정을 찾지 못하다 보니 자신 있던 방망이마저 주춤거렸다. 4월 타율은 고작 0.229. 일부 팬들과 언론은 800만 달러의 연봉도 아깝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혼돈의 시간을 보내던 중 변화가 생겼다. 주전 중견수로 뛰던 딜라이노 디실즈(23)가 성적 부진으로 5월11일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바로 다음 날부터 좌익수에서 중견수로 보직을 변경하자 거짓말처럼 데스먼드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중견수로 나선 47경기에서 저지른 에러는 단 2개. 수비율 0.984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감을 찾았다. 5월을 0.345, 4홈런, 22타점으로 마친 데스먼드의 방망이는 작열하는 텍사스의 태양처럼 식을 줄 몰랐다. 특히 추신수가 부상에서 복귀한 6월 성적은 더욱 놀랍다. 26일(한국시간)까지 타율 0.378에 6홈런, 17타점을 쓸어 담고 있다.

쪽박이 잭팟으로

추신수가 부상자명단(DL)에서 돌아온 후 데스먼드는 44타수 16안타(0.363)를 기록했다. 시즌 성적도 타율 0.322, 13홈런, 49타점으로 고공행진 중이다.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팀 내 타율 1위, 홈런 2위, 타점 1위에 도루도 13개로 가장 많다.

팀의 1번타자로 나서고 있는 추신수는 타율이 0.237에 그치고 있지만 출루율 0.400, 장타율 0.407를 기록하며 맹위를 떨치고 있다. 홈런도 3개를 쳤는데 모두 좌완투수를 상대로 기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처럼 추신수와 데스먼드로 이어지는 레인저스의 테이블세터는 다른 팀에는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주포 프린스 필더가 사상 최악의 부진(타율 0.210·6홈런·37타점)을 보이고 있음에도 레인저스가 아메리칸리그 승률 1위이자 전체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데스먼드의 역할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레인저스는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만약 데스먼드가 팀의 염원인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게 된다면 날려버린 9900만 달러를 훨씬 뛰어넘는 돈을 품에 넣을 수 있다. 현재까지 데스먼드와 대니얼스 단장의 도박은 잭팟이나 다름없다.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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