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소년’, 꿈에 그리던 교수되고 ‘잘 놀아보세’ 운동 이끄는 사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4일 11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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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노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위성식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회장

위성식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회장
위성식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회장

섬소년, 교수가 되다

섬 소년은 ‘그날’의 감동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날,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뭍이란 델 나왔다. 그의 나이 열세 살. 전남 완도중 2학년 때 제39회 전국체육대회 연식정구 전남대표로 뽑힌 덕분이다. 그날따라 파도는 왜 그리 나룻배를 흔들어대던지. 하지만 소년은 “섬놈이 서울 구경 가는 데만 정신이 팔렸다”고 했다. 2회전 탈락.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흰색 유니폼에 흰색 운동화를 신어야 하는 데 그런 규정조차 몰라 연습조차 못하고 쫓겨났으니. 그렇지만 소년은 성적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여인숙과 운동장(동대문운동장)만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서울 구경을 제대로 못한 게 더 아쉬웠다. ‘까짓, 우승이야 다음에 하면 되지.’

소년은 정말이지 다음해 전국체육대회 중등부에서 우승한다. 내친김에 고등부 우승(1962년)과 대학부 우승(1965년), 일반부까지 휩쓴다(1967,1968년).

순탄하기만 했던 선수로서의 그의 삶은 실업팀 전매청에서 또 한번 전환점을 맞는다. 잘해봤자 선수생활은 30~35세면 끝나는 게 아닌가라는 회의가 문득 찾아들었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1969년 중앙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새벽 6시에 파트너랑 연습하고 오전 8시에 학교에 갔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훈련을 하고, 밤이면 리포트를 쓰고…. 동료들에게 미안해 더 열심히 학업에 매달렸다. 그 결과 등록금보다 많은 5·16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1981년 꿈에도 그리던 고려대 문리대 교수가 된다. 이후 한국사회체육학회 회장을 18년간 지내며 ‘사회체육의 학문 및 현장의 발전’이라는 또 다른 영역을 개척했다.

2011년 2월 고려대 체육위원장을 마친 그는 오늘날과 같은 일중독 사회는 희망이 없다며 ‘잘 놀아보세’ 운동에 여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참, 하나 빼먹을 뻔한 게 있다. 2010년 8월 정년이 됐지만 고려대는 그가 체육위원장을 마칠 때까지 정년을 6개월 연장해주었다. 고려대 105년 역사상 정년을 연장한 유일한 경우란다. (사)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KLRA) 위성식 회장(70)이 그 ‘섬 소년’이다.

지난달 30일 노란 은행잎이 알맞추 익은 올림픽 공원 체조경기장 120호에서 그를 만났다. 한눈에 봐도 훤칠한 키에 단단한 몸매(173cm 72kg)의 멋쟁이 노신사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이 맑다. 자리에 앉으니 ‘10월 중 행사 및 계획표’가 눈에 들어온다. 빼곡하다. ‘중랑구청 페스티벌, 김제 옥천(노인), 태안 장수 양양(다문화)…’ 등등. 하는 일이 더욱 궁금해졌다.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를 소개해 달라.

“인생의 의미를 ‘잘 노는 데서 찾아보자’는 목표를 내걸고 1960년 12월 창립한 단체다. 27년 뒤인 1987년 2월 한국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창립 6년 만인 1966년에 제1회 전국레크리에이션 대회를 열었으나 초기엔 그저 그런 단체였다고 할 수 있다. 55년이 지난 지금,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여가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국민소득 수준 향상과 삶의 질 향상을 추구하는 사회분위기 덕분이다. 여가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곧 개인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여가중심사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협회는 국민의 건전한 여가 선용에 필요한 레크리에이션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 지도자 양성, 학술대회와 국제교류를 통한 이론적 기틀 마련 등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가만, 얘기를 듣다보니 뭔가 이상하다. 1960년에 창립해 1966년에 제1회 전국 레크리에이션 대회를 열었다고 했다. 그때는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혀 우리 힘으로 부자마을을 만들자’는 새마을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기 불과 몇 년 전 아닌가.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잘살아보세’를 외치던 그때 ‘잘 놀아보세’를 외쳤다는 얘기가 된다.

“맞다. 초기엔 ‘별 희한한, 좀 더 정확히는 정신 나간 단체 취급을 받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협회를 운영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금도 할일을 다한 뒤 갖는 ’자투리 시간‘이 여가(레저)라고들 생각하는데 오죽 했겠는가.”(웃음)

-여가나 레크리에이션을 단순히 ’논다‘라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지금도 많은 것 같다.

“우리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건 아니잖은가. 놀기도 일하듯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여가가 개인적 활동이라면 레크리에이션은 함께 어우러져 하는 것이다. 즉 창의적이고 활기찬 삶의 밑바탕에는 여가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자리한다. 한국인 근로시간이 멕시코에 이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아직도 우리 사회는 일중독에 빠져 있다. 그런 우리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 ’일벌레에게 저녁이 있는 삶을‘ 돌려주자는 캠페인도 있잖은가.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즐거운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여가나 레크리에이션이 우리 사회에서 왜 중요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본인의 활동을 중심으로 얘기해 달라.

“2014년 서울 북부청소년비행센터를 방문했을 때다. 그들(재소자)은 하나같이 무표정했다.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된 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시큰둥했다. 그러다 끝날 때쯤 되니까 비로소 웃으며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눈도 맞추고. 그들을 바꾼 건 ’놀이 방식‘이었다. 댄스 노래 게임 뉴스포츠 등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대신 그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이는 치료를 위해서 노는 게 아니라 놀면서 자연스레 치료하는 방식이다. 10월 행사 계획표를 보고 짐작했겠지만 우리 협회는 소외계층(아동과 청소년, 어르신)에게 레크리에이션의 활력과 가치를 알려오고 있다. 올해엔 어르신 단체 16회, 아동·청소년 단체 11군데, 다문화 단체 20군데 등 50여 곳을 찾았다. 전국 복지시설과 보육원, 아동시설 등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은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을 마음껏 도울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사회통합 차원에서 소외계층 보듬어야

-예산상 문제 때문인가.

“(잠시 망설이다) 지난해보다 예산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신청단체의 평균 경쟁률이 4 대 1이나 된다. 이 바람에 교정기관과 장애인 단체는 올해 한 차례도 방문하지 못했다. 일회성 행사에 초점을 두지 말고 ’사회통합‘이라는 큰 틀에서 바라봤으면 좋겠다. 소외계층일수록 놀 때 잘 놀아야 행복감을 느낀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정부지원금이 얼마에서 얼마로 깎였냐고 기자가 재차 물었지만 멋쩍게 웃기만 할뿐 끝내 입을 다물었다.

-내년에 우선적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재소자와 장애인, 다문화가정 어린이 등을 위한 레크리에이션 활성화에 주력할 생각이다. 이들에게 스스로 잘 놀 수 있는 방식을 알려주고자 한다. 누구든 흥이 나야 잘 노는 법이다. 국방부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군인 레크리에이션 활성화를 위해 애써줬으면 한다. 학군장교(ROTC) 후보생들이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규율 이전에 인간적으로 사병들과 어울리는 것이야말로 군 전력 향상을 위한 지름길이다.”

-협회에 연수교육과 지도자 양성과정 같은 게 있나.

“레크리에이션 1, 2급 지도자 연수과정과 교사 레크리에이션 전문가 양성과정, 기업 행사·야외활동 전문가 양성과정 등이 있다. 올해 5월 기준으로 레크리에이션 1급 지도자는 1만여 명, 2급 지도자는 3만7000여 명에 이른다.”

-‘뉴스포츠’는 뭔가.
“올림픽이나 국제경기의 스포츠(축구 야구 등)가 아닌 모든 국민이 쉽게 체험할 수 있는 참가자 중심의 체험형 스포츠다. 티볼, 소프트발리볼 등이 대표적이다. 국민생활체육회 등을 통해 생활체육으로 자리매김돼 있지만 아쉽게도 외국에서 개발한 수입형의 뉴스포츠가 대부분이다. 우리에게 맞는 종목을 발굴해 생활체육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인천아시아경기에서 우리나라 정구 팀이 7개 전 종목 금메달을 석권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만감이 교차하는 듯 잠시 천장을 응시하다) 우연히 초등학교 6학년 때 라켓을 잡았다. 운 좋게도 우리 집 앞 병원 공터에 정구장 1면이 있었다. 알다시피 정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거기에 자주 오던 어르신 한 분이 함께 칠 사람이 없자 내게 헌 라켓을 쥐여주며 ’이렇게 넘겨!‘라고 알려줬다. 볼보이하다 정구를 익힌 셈이다. 중 3때 우승한 건 순전히 ’게임 운영‘능력 덕분이었다. 키가 작아 라켓을 거의 끌고 다니다시피 했는데도 이겼으니.(웃음) 정구는 일본에서 발전한 스포츠여서인지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하지만 공이 물렁물렁하고 회전량이 많아 변화무쌍하다. 어느 종목 못지않게 긴장되고 재미있다.”

-선수 시절 감동의 순간과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은데….

“1959년 완도중 3년 때 제40회 전국체육대회 중등부에서 우승하자 전교생이 4km 밖까지 도열해 축하해준 걸 잊을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웃픈‘ 기억도 있다. 1971년 일본 전매청과의 친선교환 경기를 마치고 저녁을 먹을 때의 일이다. 난생처음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우리는 양식 순서나 먹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처음에 주는 빵을 실컷 먹다 보니 메인 요리는 제대로 먹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디저트로 먹는 과일을 깎기 전에 손을 씻으라고 준 물을 양껏 먹고 더 시켰다.”(웃음)

-여가레크리에이션협회 회장은 여가를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하다.

“틈날 때마다 꽃과 나무를 키우고 분재 가꾸기를 한다. 그리고 누가 봐도 깨끗한 집을 만들려 품을 들인다.” (어라, 정구를 비롯한 운동 종목을 꼽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다.)

기자의 속내를 알아챈 것일까. “테니스를 하다 오래전 그만뒀다. 경쟁심을 내려놓기 위해서였다. 친구든 젊은이든 지금도 맞붙게 되면 지기 싫을 것 같다. 그리고 프로들은 젊을 때 매일 8~10시간 이상 투자했으므로 늦게까지 운동하지 않는다. 아 참, 운동이랄 건 없지만 눈뜨자마자 40분에서 1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한다. 이를 통해 잠자던 모든 기관을 깨운다. 운동으로도 손색없고 건강도 챙겨주는 ’나만의 운동‘이다.”

몸과 마음이 지친 일중독 사회를 놀이로 치유하기 위해 위 회장은 오늘도 새벽같이 사무실에 출근한다. 회장님이야말로 일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고 슬쩍 건네자, “동료직원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노는 것을 비생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놀기도 일하듯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손진호 전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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