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애진 기자의 주球장창]입장료… 치어리더… ‘고양 다이노스’의 유쾌한 실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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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리그 고양과 SK의 경기가 열린 21일 고양야구장 1루 쪽 더그아웃 위 다이내믹존에서 관중이 경기를즐기고 있다. 고양=주애진 기자 jaj@donga.com
퓨처스리그 고양과 SK의 경기가 열린 21일 고양야구장 1루 쪽 더그아웃 위 다이내믹존에서 관중이 경기를즐기고 있다. 고양=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거긴 가방도 다른 사람이 들어주고 배팅 연습도 흰 공으로 하지. 경기장도 으리으리하고 룸서비스가 있는 호텔만 다니고. 투수들도 상상을 초월하는 공을 던지지.”

미국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삶을 그린 영화 ‘19번째 남자’(원제 ‘Bull Durham’)의 주인공은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메이저리그에 머물렀던 21일 동안이 자기 생애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말하면서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국내 프로야구의 KBO리그(1군)와 퓨처스리그(2군)의 차이도 큽니다. 하지만 퓨처스리그가 영화 속 마이너리그 경기와 가장 다른 점은 경기를 보는 관중 수입니다.

연고 지역에 기반을 두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마이너리그와 달리 퓨처스리그는 선수 육성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경기장은 대부분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소수의 열혈 팬만 경기장을 찾아오곤 했죠. 그런데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퓨처스리그의 올해 일정표에선 연고지 이름을 딴 팀명을 2개나 볼 수 있습니다. 화성 히어로즈와 고양 다이노스입니다.

넥센은 지난해 2군 연고지를 전남 강진에서 경기 화성으로 옮기면서 팀 명칭도 지역 이름으로 바꿨습니다. 진해 포항 등을 전전하던 NC 2군도 올해 경기 고양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1군 연고지인 경남 창원(마산)에서는 멀어졌지만 지역 밀착화로 ‘보는 야구’를 추진하겠다는 큰 꿈에 맞춰 역시 이름을 고양으로 바꿨습니다.

고양과 SK의 경기가 열린 21일 고양야구장에는 평일 낮인데도 40여 명의 관중이 더그아웃 위에 설치된 다이내믹존과 스탠드석에서 경기를 지켜봤습니다. 1군 경기처럼 타석에 타자가 들어설 때 나오는 응원가나 안타가 터질 때 들리는 함성은 없었지만 따사로운 봄볕 아래서 조용히 야구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느긋해 보였습니다. 팀 점퍼를 입고 온 열혈 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근처에 사는데 그냥 야구가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습니다. 경기는 0-2로 패했지만 고양 선수들은 다이내믹존 앞으로 달려와 관중에게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고양은 이곳에서 새로운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주말 안방경기 유료화(3000원·초등학생 이하는 무료)입니다. 당장 수익을 올리기보다 장기적으로 ‘야구의 가치’를 높이고 돈을 주고도 보러 올 만큼 재미있는 야구를 보여주겠다는 취지입니다. 11일 열린 고양의 첫 안방 개막전에는 700여 명의 관중이 몰렸습니다. 다양한 이벤트와 치어리더들의 응원까지 더해 1군 경기장 못지않은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한 여성 팬은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관중이 찾아와 선수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평소보다 긴장하는 것 같았다”고 말하더군요. 그 덕분일까요. 고양은 이날 화성에 6-3으로 이겼습니다.

고양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선수들의 경기력도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 그만큼 더 열심히 뛸 동기가 생길 테니까요. 고양 관계자는 “관중 수에 따라 선수들의 집중력이 달라진다. 우리 팀뿐만 아니라 상대 팀 역시 경기할 맛이 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여건상 고양의 실험이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오긴 어렵겠죠. 하지만 퓨처스리그의 경쟁력을 높이고 프로야구의 저변을 넓히는 첫걸음이 될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고양 다이노스#19번째 남자#퓨처스리그#선수 육성#화성 히어로즈#유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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