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계의 핵이빨 ‘강해’를 아시나요?

  • 스포츠동아
  • 입력 2015년 4월 17일 05시 45분


4월11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제 10경주에서 결승점을 100m 남겨두고 ‘강해’(맨앞 오른쪽)가 경쟁마인 ‘더블샤이닝’(맨앞 왼쪽)의 엉덩이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강해’의 고개가 갑자기 돌아가자 기수는 중심을 잃어 자세가 흐트러졌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4월11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열린 제 10경주에서 결승점을 100m 남겨두고 ‘강해’(맨앞 오른쪽)가 경쟁마인 ‘더블샤이닝’(맨앞 왼쪽)의 엉덩이를 물어뜯으려 하고 있다. ‘강해’의 고개가 갑자기 돌아가자 기수는 중심을 잃어 자세가 흐트러졌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11일 경주서 추월당하자 상대마 엉덩이 물어
기행 불구 투지·근성 팬들에게 큰 인상 남겨

권투에 ‘마이크 타이슨’이 있고 축구에 ‘루이스 수아레스’가 있다면 경주로에는 ‘강해’가 있다.

타이슨과 수아레스의 공통점은 물어뜯기. 이른바 ‘핵이빨’이다. 타이슨은 1997년 6월28일 에반더 홀리필드와 WBA 헤비급 타이트전 경기 도중 홀리필드의 귀를 수차례 물어 뜯어 파장을 일으켰다. 수아레스는 2014브라질월드컵에서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수비수 조르지오 키엘리니를 물어뜯어 화제가 됐다.

지난 4월11일 렛츠런파크 서울에서 ‘경마계 핵이빨’ 해프닝이 있었다. 경주마 ‘강해’(한국, 수, 4세)가 결승선 100미터 전에서 상대마에게 추월당하자 앞선 말의 엉덩이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워낙 희귀한 사건이라 이번 주 내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 경주서 추월당하자 상대마 엉덩이 물어뜯으려 해

그날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지난 토요일 렛츠런파크 서울 제10경주(1등급, 1800M, 레이팅 101-115). 하늘을 맑았고 벚꽃은 수줍은 몽우리를 터트려 활짝 웃고 있었다. 모래먼지를 뒤로하며 출발한 경주. 결승점을 불과 100여 미터 남겨두고 ‘강해’(문세영 기수)의 평범하지 않은 고갯짓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문세영 기수는 잠깐 중심을 잃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이래?” “어?” 곳곳에서 웅성웅성 거렸다. 이날 우승한 ‘더블샤이닝’(장추열 기수)이 ‘강해’를 추월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중계를 지켜본 팬들은 의혹을 제기했다.

한국마사회는 재빨리 심의에 들어갔다. 심의를 위해 사용되는 정면영상을 공개하고 사건의 전말을 설명했다. 해프닝의 핵심은 ‘강해’의 ‘핵이빨’이었다. 영상 속에서 ‘강해’와 ‘더블샤이닝’은 결승점을 앞두고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더블샤이닝’이 앞서나가기 시작하자 ‘강해’는 분을 이기지 못 하고 앞선 말의 엉덩이를 물려고 했다. 경주마의 고개가 갑자기 돌아가니 기수가 잠시 중심을 잃었던 것이다

한국마사회 홈페이지를 통해 경주마다 심판위원이 작성하는 보고서가 공개됐는데, ‘결승선 통과 직전 ⑥“강해”(문세영 기수)는 ⑧“더블샤이닝”(장추열 기수)과 경합 중에 “더블샤이닝”의 엉덩이 쪽을 갑자기 물려고 한 상황에서 기승기수 문세영이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었음.’이라고 기술됐다.

● 심판들도 “처음 보는 광경”…“근성 마음에 든다”

이렇게 한국경마계에 ‘핵이빨’이 등장한 것이다. 이날 경주에서 출발이 좋았던 ‘강해’는 시종일관 선두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선두를 내주는 것이 무척이나 분했던 모양. ‘강해’에 기승했던 문세영 기수는 “‘강해’는 정말 남자다운 말인 것 같다. 자존심이 보통이 아니다.”라고 진술했다. 질 수 없다는 집념에서 비롯된 기행이지만, 투지와 근성만큼은 경마관계자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해’는 1등급 경주 출전 때마다 주목받는 강한 마필이지만 이날 이후 ‘핵이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라면 상대선수를 물어뜯는 행위를 ‘기행’이라고 치부할 만하지만, 동물이 선수인 경마에서는 경주마의 재밌는 행동으로 팬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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