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청용 “전 믿어요, 아버지가 항상 지켜준다는 것을”

  • 스포츠동아

김청용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10대의 반란’을 일으켰다. 한국사격 역사상 아시안게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어려운 환경을 뚫고 금빛 총성을 울린 사실이 알려져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어머니 오세명 씨는 지금도 당시의 화면을 돌려보며 시름을 잊는다. 스포츠동아DB
김청용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에서 ‘10대의 반란’을 일으켰다. 한국사격 역사상 아시안게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어려운 환경을 뚫고 금빛 총성을 울린 사실이 알려져 더 큰 화제를 모았다. 그의 어머니 오세명 씨는 지금도 당시의 화면을 돌려보며 시름을 잊는다. 스포츠동아DB
■ 사격 국가대표 김청용의 사부곡

부상때문에 꿈 접은 태권도선수출신 아버지
사격부 있는 학교로 전학 간 다음날 의료사고
메달 딸 때마다 아버지 산소 찾아 감사 인사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남자사격에선 ‘고교생 샛별’이 탄생했다. 김청용(18·청주 흥덕고)은 10m 공기권총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2관왕에 올랐다. 한국사격 역사상 아시안게임 최연소 금메달리스트였다. 그는 2015년 대표팀에도 선발됐다. 8일부터는 진천선수촌에서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을 향한 총성을 이어갔다. 사격대표팀은 설을 맞아 16일부터 일주일 동안 잠시 쉼표를 찍는다. 이번 휴가가 끝나면 집중 강화훈련에 돌입하기 때문에 당분간 가족을 만날 시간이 없다. 김청용은 사랑하는 어머니, 누나와 함께 명절을 보낼 계획이다.

● 설 휴가 첫 날부터 사격장으로 달려간 이유는?

“또 총 쏘러 학교에 갔더라고요.” 어머니 오세명 씨의 마음은 16일 아들을 만날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진천선수촌을 나온 김청용은 집이 아닌 흥덕고등학교로 향했다. 이어 한참을 총과 씨름한 뒤에야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누나 김다정 씨는 “(김)청용이는 총을 쏠 때가 가장 행복해 보인다”며 웃었다.

김청용은 최근 오스트리아의 총기회사 스테이어(Steyr)로부터 10m 공기권총을 후원받았다. 명품 권총을 손에 얻었지만, 아직은 손에 익지 않은 상황이다. “새 총에 빨리 적응하고 싶어서….” 그것이 휴가 첫 날부터 사격장으로 달려간 이유였다. 김청용(金淸容)은 자신의 이름처럼 ‘맑은 얼굴’로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 가족의 희망을 쏜 총구, 하늘의 아버지에게 바친 메달

그의 이름을 지어준 이는 아버지 고(故) 김주훈 씨다. 태권도선수 출신인 아버지는 고교시절 불의의 부상으로 꿈을 접었다. 아들이 운동선수가 되는 것을 극렬히 반대했지만, 아들의 뜻을 꺾지 못하자 정식으로 사격에 입문시킨 이도 아버지였다. 2010년 12월 김청용이 사격부가 있는 학교로 전학을 간 다음날, 아버지는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나날이 이어졌지만, 어머니와 누나는 김청용을 위해 헌신했다. 대회마다 목에 걸고 오는 메달이 이들 가족의 위안거리였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시안게임 경기 장면을 돌려보면서 모든 시름을 잊는다. 김청용의 가족은 대회를 마친 뒤면 청주 집에서 멀지 않은 아버지의 산소로 향한다. 그는 “아버지께 메달을 보여드리고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직후에도 2개의 금메달을 들고 성묘를 다녀왔다.

김청용(가운데)의 아버지는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오세명 씨(오른쪽)와 누나 김다정 씨는 헌신적으로 그를 뒷바라지해 ‘명사수’로 성장시켰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직후 가족사진을 찍었다. 김청용은 어머니와 누나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사진제공|김다정 씨
김청용(가운데)의 아버지는 2010년 12월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오세명 씨(오른쪽)와 누나 김다정 씨는 헌신적으로 그를 뒷바라지해 ‘명사수’로 성장시켰다. 이들 가족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직후 가족사진을 찍었다. 김청용은 어머니와 누나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다. 사진제공|김다정 씨

● “행운보다는 조상의 음덕이 있다고 믿습니다!”

사격선수에게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도 기술이다. 김청용은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홀로 아버지의 산소로 향한다. 근처에는 손자를 누구보다 예뻐하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묘소도 있다. 그곳에선 부정적 생각들이 씻은 듯 사라진다. 그는 “혼자서 조용히 명상을 하다보면, 긍정의 기운들이 생긴다”며 웃었다.

총을 쏘다 보면 실수를 할 때가 있다. 마음속으로는 ‘아차’ 싶은데 탄환은 표적 정중앙을 때린다.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마다, 그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사실 그냥 행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믿어요.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저를 지켜주신다는 것을요. 그렇게 생각하면 의지가 됩니다. 이번에도 성묘가면 ‘선발전 잘 치러서 올림픽 나가게 해주세요’라고 말씀드리려고요.” 설날 아침 차례는 그에게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다. 진심을 다해 조상의 음덕(蔭德)을 느끼고 기리는 시간이다.

● “이제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고 싶어요!”

김청용의 어릴 적 꿈은 마당이 넓은 집을 사서, 아버지의 산소를 집 안에 모시는 것이었다. 한번은 어머니에게 “우리는 왜 선산이 없어요?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꼭 마련하고 싶어요”라고 말한 적도 있다. 마음씀씀이만은 이미 10대를 지난 아들을 보면, 어머니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김청용은 올해 고교 졸업반이다. 올림픽이 열리는 내년 실업팀으로 진로를 정한다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보장받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어머니께서 포장마차도 하시고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지금도 퉁퉁 부은 어머니 손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이제 어머니께서 금전적인 스트레스를 안 받으시도록 하고 싶어요. 아들이 벌어온 돈,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쓰실 수 있도록이요. 그리고 여유가 좀더 생긴다면, 저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운동하는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가 말하는 ‘돈’이란 단어에선 순수함과 따뜻함이 느껴졌다.

김청용의 총구는 가족의 희망을 쏜다. 그런 아들을 향해 어머니는 “그저 올 한해 건강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트위터 @setupman1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