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46) LG 퓨처스(2군) 감독은 벌써 15년이나 지난 그해 겨울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1999년 한국프로야구는 FA(프리에이전트)제도를 도입했다. LG유니폼을 입고 있던 리그 최고의 포수 김동수, 10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한 해태 투수 이강철이 프로야구 첫 FA시장 최대 카드였다.
김 감독은 “구단도 선수도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협상을 해야 할지 몰랐던 시절이었다. 주위에서 조언을 해서 ‘10년을 뛰었으니 1년에 1000만원씩 1억원을 계약금’으로 해달라고 요청하고 또 한 가지 등번호를 은퇴 후에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달라는 부탁을 했었다”며 웃었다.
수십억 원의 계약금이 오가는 최근 시장 환경을 생각하면 ‘순수’했던 시절이었다. 김 감독은 LG와 협상이 결렬됐고 삼성과 3년 8억원에 계약했다. 최근 배영수를 떠나보낸 삼성 팬들처럼 15년 전 LG 팬들도 큰 상념에 젖었었다. 해태가 이강철 현 넥센 수석코치를 잡지 못한 것은 기울어가는 구단 살림살이 때문이었지만 LG는 삼성과 전자 라이벌이자 손꼽히는 부자구단이었기 때문에 그 아쉬움이 더 컸다.
김 감독은 “그때 받은 연봉과 계약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마련했다. 삼성에서 기대만큼 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쉽다”고 말했다.
2001년까지 삼성 유니폼을 입은 김 감독은 2002년 SK로 트레이드됐고 2003년 다시 현대로 옮긴 뒤 2009년 히어로즈에서 은퇴했다. 모두가 ‘김동수 시대는 끝났다’고 했지만 2003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3할 타율을 쳤고 최고 포수 박경완을 제치고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는 등 제2의 전성기도 맞았다. 은퇴 후 넥센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고 올해 15년 만에 친정 LG로 돌아왔다.
LG가 팀을 인수 한 뒤 처음으로 배출한 신인왕이자 1990년, 1994년 우승 주역이었던 트윈스 프랜차이즈 스타는 그렇게 15년 만에 다시 줄무늬 유니폼을 입었다.
김 감독은 “일본 마무리캠프에서 다시 LG 줄무늬 유니폼을 입는데 무척 감동스러웠다. 매니저 불러서 사진도 한 장 찍어달라고 했다”며 “LG 퓨처스 훈련장인 이천 챔피언스파크에 갔는데 큰 벽면에 구단 역사가 사진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LG 유니폼을 입은 신인시절 제 모습이 있어 또 한번 뭉클했다”고 말했다.
‘푸른 피의 에이스’로 불린, 2000년대 삼성 르네상스의 주역 배영수(33)가 한화로 이적했다. 배영수의 동기 윤성환을 잡는데 80억원을 투자한 삼성이지만 옛 에이스에게는 냉정했고 현실적이었다.
팬들은 자신의 팔꿈치 인대와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맞바꾼 투수와의 작별을 크게 아쉬워하고 있다. 14시즌 동안 124승. 배영수는 삼성 투수 중에서 가장 많은 승리를 팀에 안긴 주인공이다. 일부에서는 삼성이 더 진심어린 예우를 했다면 배영수가 푸른색 유니폼을 벗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배영수는 124승과 함께 한화에서 팀을 옮길 한 명의 유망주(보상선수)를 삼성에 선물하며 떠난다.
15년 후 배영수는 2014년 겨울을 어떻게 기억할까. 현대에서 재기에 성공한 후 지도자로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김동수 LG 퓨처스 감독처럼 웃으며 오늘을 떠올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