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착한 사나이, 독한 방망이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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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 나서도 겸손함 잃지 않는 스타 꼽아보라면 0순위는 단연 이승엽
최고령 30홈런 달성… 실력도 여전
3년연속 홈런왕 예약한 박병호도 예의 바르고 모난데 없는 ‘상남자’

이승엽(오른쪽)과 박병호는 홈런왕으로서의 걸출한 실력만큼이나 변함없는 겸손함과 배려심에서도 닮은 꼴이다. 동아일보DB
이승엽(오른쪽)과 박병호는 홈런왕으로서의 걸출한 실력만큼이나 변함없는 겸손함과 배려심에서도 닮은 꼴이다. 동아일보DB
야구 선수에게 ‘착하다’란 말은 칭찬이 아니다. “얘는 참 착한데∼”라는 말 뒤엔 “그런데 야구를 못해”라는 말이 숨어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감독으로 2008승을 거둔 리오 듀로셔 감독(1991년 사망)의 명언은 이를 한마디로 정리해 준다. “사람 좋으면 꼴찌다(Nice guys finish last).” 듀로셔 감독은 이기기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판과 멱살잡이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투수들에게는 수시로 빈볼을 지시했다. 통산 95차례나 퇴장을 당했지만 2000승 감독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사실 야구 선수가 착할 필요는 없다. 착하지 않아도 야구만 잘하면 환영 받는다. 그래서인지 좀 모질고 독한 선수 중에 야구를 잘하는 선수가 많은 편이다.

그러면 착하면서 야구도 잘하는 선수는 없는 것일까. 얼마 전 야구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착한 선수’가 화제가 됐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다. 바로 착하고 못됨의 기준이다. 알고 보면 안 착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여기서는 착한 선수를 스타가 된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알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 선수로 정했다. 이 기준에 따를 때 착한 선수로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린 선수는 왕년의 홈런 타자 이승엽(38·삼성)이었다.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로서 이승엽을 알고 지낸 지가 10년이 넘었다. 그런데 이승엽은 정말 한결같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군림할 때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단맛 쓴맛을 다 봤을 때나, 2012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나 이승엽은 언제나 겸손하고 착실한 사람이다. 최고 스타이면서도 배려심이 남다르다는 게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평가였다.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에서 뛸 때 그곳으로 연수를 갔던 한 프런트 직원은 “개인적으로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이승엽이 ‘한국 최고의 전문가가 왔다’고 선전을 해 놨더라. 덕분에 1군 작전회의에까지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10일 NC전에서 시즌 30호 홈런을 때려내면서 최고령 30홈런(38세 23일)의 주인공이 되는 등 실력도 여전하다.

최근 뜨고 있는 착한 선수의 대표 주자는 넥센의 홈런 타자 박병호다. 2년 연속 홈런왕을 차지한 박병호는 10일 현재 48홈런을 기록하며 홈런왕 3연패를 눈앞에 두고 있다. 박병호는 2003년 이승엽(56개)과 심정수(53개) 이후 11년 만에 50홈런 고지에 오를 게 유력하다.

이쯤 되면 사람이 변할 만도 하다. 주변에 잘해주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박병호는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모난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쓴다. 경기 후 구장을 빠져나가다 팬들의 사인 공세를 받으면 최선을 다해 사인을 해준다. 어쩌다 머리가 복잡해 사인을 해주기 힘들 것 같으면 아예 팬들이 다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른 쪽 문으로 조용히 나간다. 넥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심성이 착한 선수다. 주변에 유혹이 적지 않을 텐데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 정말 대선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착한 마음과 근성은 별개의 문제다. 1999년 54홈런을 친 이승엽은 타격 폼을 바꿔 2003년 56개의 홈런을 쳤다. 박병호도 자신을 채찍질하며 매년 개인 홈런 기록을 새롭게 써 가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 전현직 홈런왕인 이들이 주는 메시지는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착한 사람도 최고가 될 수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이승엽#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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