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카브레라 독주막을 자 류현진 괴롭힌 그 남자

  • 스포츠동아
  • 입력 2013년 6월 19일 07시 00분


타율·타점 AL 2위…홈런 24개 ML 1위 질주
개막 후 4연속경기 홈런 등 진기록도 쏟아내
카브레라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 등극 위협
드래프트 3수 끝에 데뷔…ML 첫 타석서 안타
이젠 AL 동부 선두 다툼 앞장 ‘레드삭스 킬러’
지난 4월 류현진과 대결선 팀 역전승 이끌어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미겔 카브레라는 2012시즌 타율 0.330, 44홈런, 139타점으로 아메리칸리그(AL) 타격 부문 트리플 크라운의 위업을 달성했다. 올 시즌에도 카브레라는 절정의 타격감을 유지하며 현역 최고의 타자임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향해 거침없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카브레라에게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다. 주인공은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5번타자 크리스 데이비스(27)다.

18일(한국시간) 현재 데이비스는 타율 0.337로 AL 2위에 올라있다. 카브레라(0.358)와는 2푼1리차다. 타점에서도 선두 카브레라(71개)에 10개 뒤진 2위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홈런은 24개로 메이저리그(ML) 전체 1위를 달리며 카브레라보다 5개나 더 치고 있다. 지금 페이스가 그대로 이어진다면 산술적으로는 올 시즌 52홈런도 가능하다. ML에서 50홈런 이상을 친 타자는 2010년 미겔 바티스타(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마지막이었다.

6월 6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 데이비스는 시즌 20번째 2루타를 때렸다. 올 시즌 58경기 만에 홈런과 2루타를 나란히 20개 이상씩 친 것이다. 종전 기록은 1929년 멜 오트와 2000년 이반 로드리게스가 60경기 만에 작성한 것이다.

데이비스의 맹활약을 앞세운 오리올스는 ‘죽음의 지구’로 불리는 AL 동부지구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와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고 있다. 최근 데이비스는 ‘레드삭스 킬러’다운 면모를 뽐내며 이틀 연속 팀 승리를 이끌었다. 14일 캠든야즈에서 열린 두 팀의 맞대결은 연장 13회 승부가 갈렸다. 13회말 2사 1·2루서 데이비스는 끝내기 좌전적시타를 날려 5-4 승리에 앞장섰다. 바로 다음날에도 데이비스는 2회말 레드삭스 선발 크리스 틸먼으로부터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결승 솔로홈런을 쳐 2-0 승리에 수훈갑이 됐다.

지난 시즌에도 데이비스는 레드삭스를 상대로 진기록을 수립했다. 5월 7일 펜웨이파크 원정경기서 오리올스가 9-6으로 힘겹게 승리했는데, 데이비스는 8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타격의 부진을 마운드에서 만회했다. 불펜투수진이 모두 소진되자, 벅 쇼월터 감독이 이날 경기에 지명타자로 출전한 데이비스에게 연장 16회부터 마운드를 맡겼다. 데이비스는 2이닝 동안 삼진을 2개나 잡아내며 무실점으로 호투해 승리투수의 영예를 안았다. AL에서 포지션 플레이어가 승리투수가 된 것은 1968년 8월 26일 로키 콜라비토 이후 처음이었다.

이 경기에서 레드삭스 역시 투수가 다 떨어져 고육지책으로 다넬 맥도널드를 등판시켰는데, 연장 17회초 3실점하며 패전을 기록했다. 투수가 아닌 포지션 플레이어가 승리와 패배를 동시에 기록한 것은 1902년 9월 29일 샘 머키스와 제시 버켓, 1925년 10월 5일 타이 콥과 조지 시슬러 이후 3번째였다.

올 시즌에도 데이비스는 진기록들을 연이어 수립했다. 시즌 개막 후 첫 4경기에서 무려 16타점을 쓸어 담아 ML 신기록을 세웠다. 또 윌리 메이스, 마크 맥과이어, 넬슨 크루스(텍사스 레인저스)에 이어 4번째로 개막 후 4연속경기 홈런포를 가동했다. 그 중 4월 6일 미네소타 트윈스전에서 친 홈런은 그랜드슬램이었다.

한국 팬들에게도 데이비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4월 21일 오리올스와의 원정경기에 등판해 6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다. 팀 타선이 1회 3점, 2회 1점을 뽑아내며 4점차 리드를 선물했지만 좌타자 데이비스와의 대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해 경기를 그르쳤다. 데이비스는 0-4로 뒤진 2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우전안타를 때린 뒤 JJ 하디의 좌월2점홈런 때 득점했다. 3회말에는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지만, 3-4로 추격한 6회말 무사 1루서 중견수 키를 넘기는 2루타를 터뜨려 류현진을 곤경에 빠트렸다. 결국 류현진은 하디에게 희생플라이를 내준 뒤 스티브 피어스에게 좌전적시타를 허용해 데이비스가 홈을 밟으며 5점째를 내줬다. 그나마 7회초 공격에서 상대의 폭투로 마크 엘리스가 득점한 덕에 간신히 패전을 면했지만, 다저스는 5-7로 오리올스에게 역전패를 당했다. 데이비스는 다저스와의 홈 3연전에서 무려 11타수 7안타(타율 0.636)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 중 홈런이 1개, 2루타가 3개나 됐다.



1986년 3월 17일 텍사스주 롱뷰에서 태어난 데이비스는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선수였다. 200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50라운드 1496번째로 뉴욕 양키스에 지명됐지만 계약하지 않았고, 이듬해에도 LA 에인절스와 입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결국 2006년 5라운드에서 지명한 고향팀 레인저스의 품에 안겨 3수 끝에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마이너리그 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08년 6월 27일 빅리그로 승격돼 첫 타석에서 안타를 때렸다. 바로 다음날 주전 1루수로 선발 출전한 데이비스는 2연속경기 홈런을 터뜨려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레인저스 역사상 루키가 선발로 나선 두 경기에서 모두 홈런포를 가동한 것은 데이비스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레인저스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못했다. 2008년 기록한 타수 중 삼진의 비율이 무려 30%나 됐다. 2009년에도 고작 219타수 만에 삼진 100개를 채우기도 했다. 툭하면 마이너리그로 강등되기 일쑤였던 데이비스는 조시 해밀턴(현 에인절스)이 부상을 당했을 때나 빅리그로 호출되는 파트타임 선수였다.

결국 데이비스는 2011년 7월 31일 일본인투수 우에하라 고지와의 트레이드로 투수 토미 헌터와 함께 오리올스로 이적했다. 그의 파워를 눈여겨본 쇼월터 감독은 2012시즌부터 데이비스를 주전으로 중용하기 시작했다. 8월 1일 양키스전에서 생애 첫 만루홈런을 터뜨렸고, 8월 25일 블루제이스와의 경기에선 홈런 3방을 때렸다. 플레이오프 진출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던 9월 말에는 6연속경기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팀 내 최다인 33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선 홈런 없이 타율 0.208, 2타점, 9삼진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해 팀을 AL 챔피언십시리즈로 이끌지는 못했다.

올 시즌 데이비스는 타율, 홈런, 타점, 출루율에서 모두 팀 내 1위를 달리며 오리올스의 2년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레인저스에선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해 미운 오리 신세였지만, 오리올스로 이적한 뒤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로 발돋움하고 있다. 과연 데이비스가 카브레라의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 등극을 저지할 수 있을까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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