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복서-12> 투지와 근성 최고였던 인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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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3일 18시 50분



▲동영상=<영광의 복서-12> 투지와 근성 최고였던 인파이터

70, 80년대 영광의 시절을 보낸 한국 복싱은 90년대 들어 침체의 길을 걷게 된다. 장정구, 유명우 등 한국 복싱의 대표 스타들이 떠난 공백은 매우 컸다. 방송과 언론의 시선은 싸늘하게 바뀌었고 복싱팬들도 링을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 때 화끈한 파이팅으로 복싱팬들의 식어버린 열정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인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최용수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 챔피언 길로
최용수가 복싱을 처음 시작한 것은 18세부터다. 늦은 나이에 취미로 시작했지만 타고난 승부근성과 악바리 기질로 프로에서도 준수한 성적을 거뒀다. 그러던 중 유일한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형님이 돌아가셨다.

“형님한테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복싱을 했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는데 형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세계 챔피언이 돼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목표가 생기자 거칠 것이 없었다. 최용수는 그의 파이팅 스타일 저돌적이고 빠르게 목표를 챔피언 타이틀을 향해 나아갔다. 1993년 한국챔피언이 됐고 그 후 3개월만에 동양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2년만에 챔피언 타이틀 결정전을 위해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날아갔다.

“사람들은 다 질거라고 했어요. 심지어 제 주변 관장님, 코칭스태프들도 다 진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전 자신있었어요.”

최용수는 보란 듯이 적지에서 빅토르 우고 파즈를 10회 KO로 누르고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랐다.

IMF에 빼앗긴 챔피언 벨트
“원정경기가 더 좋았어요. 파이트 머니를 2~3배는 더 받을 수 있었고, 다른 나라가면 신기한 것도 보고 좋잖아요. 시차적응도 힘들지 않았어요”
전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
전 WBA 주니어 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


최용수는 원정에 강했던 챔피언이었다. 8번의 방어전 중 4번을 적지에서 치렀고 그 중 세 번을 방어했다. 하다케야마 다카노리와는 일본에서만 두 번 싸웠다. 첫 번째 대결은 무승부, 하다케야마의 영리한 경기운영에 최용수는 제 기량을 펼치지 못했다. 고전 끝에 심판판정 결과 무승부를 거뒀다. 두 번째 대결은 잘 싸우고도 패했다, 하다케야마는 불리해질 때마다 고의로 마우스피스를 뱉어내 시간을 벌었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했던 최용수는 후반에 힘을 쓰지 못했다. 로블로로 인한 감점도 받았다. 결과는 0-2 판정패. 홈에서 했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그러나 어려웠던 국내 경제상황 때문에 스폰서를 구하지 못했던 챔피언은 눈물을 머금고 적지로 뛰어들어야했다. 복싱 팬들은 ‘챔피언벨트를 IMF가 빼앗아갔다’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K-1에 도전한 복싱 챔피언
타이틀 상실 후 3차례 재기전을 모두 KO로 장식했지만 더 이상의 기회는 없었다. 글러브를 내려놓고 3년이 지났을 때 일본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다. 최용수는 일본으로 건너가 자신의 주먹이 무뎌지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그러자 다시 챔피언에 도전할 기회가 생겼다.

“이길 방법이 없었어요. 아웃복서인 시리몽콜이 철저하게 도망다니더라구요. 저도 저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경기를 했고. 지금 생각하면 더 과감하게 할 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타이틀도전에 실패한 최용수는 국내 복귀를 추진했지만 일본인 매니저가 그를 풀어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은퇴하게 됐다. 다시 글러브를 놓은지 4년. 이번에는 당시 인기를 누리던 입식 격투기 대회 K-1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던 최용수지만 프로모터의 삼고초려에 생각이 바뀌었다. 새로운 영역에서 다시 한번 도전을 해보고 싶어진 것. 그런데 K-1은 최용수가 데뷔한지 불과 1년 만에 세계적인 킥복서 마사토와 대결을 추진했다.

“손만 쓰는 운동을 하다가 발도 같이 쓰려니 적응이 안되더라구요. 그러니까 K-1에 정이 안 갔어요. 그러다보니 운동도 소홀히 하게 되고, 운동도 소홀히 하게 되고. 이미 나이도 있는데다 은퇴한지 4년이나 지나서 몸상태도 말이 아니었죠.”

펀치스킬로 싸우겠다고 떠벌리고 다녔던 마사토는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킥 위주로 공격을 풀어나갔다. 결국 최용수는 예견됐던대로 패배를 당했다. 일각에서는 챔피언의 위상이 떨어졌다고 비난했지만 최용수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싱 바보’ 최용수
K-1을 은퇴한 최용수는 경기도 시흥에 복싱 체육관을 차렸다. “여러 가지 해보려했지만 역시 복싱만한 것이 없더라”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자신을 바보 같다고 말한다. 바보 같이 복싱을 시작했고 바보같이 K-1으로 외도했지만 다시 바보 같이 복싱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란다. 복싱 스타일에서도 그는 바보 같았다. 맞을 것을 알면서도 바보같이 들어갔고 결국에는 상대를 뚫어냈다. 최용수는 말한다.

“약지 못했어요. 오로지 인생도 경기도 그냥 들어가서 주먹 뻗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지금도 많이 기억하시지 않나싶습니다.”

백완종 동아닷컴 기자 100p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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