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 소녀의 꿈, 날개 달다… 제주 출신 첫 체조 올림픽 대표 허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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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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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허선미가 평균대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9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허선미가 평균대 위에서 멋진 포즈를 취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물구나무 소녀’로 통하던 제주 아라초등학교 3학년 시절, 교회 전도사님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제주 도리초등학교 체육관은 무척이나 추웠다. 10명 남짓한 또래 여자 아이들은 소리를 지르며 다리를 찢고 있었다. 당시 도리초등학교 박선영 코치(현 제주도체육회 순회코치)는 “제주에서 유일한 체조 선수들”이라고 했다. 8살 제주 소녀 허선미(17·남녕고 3년)는 말했다. “저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인데…. 저도 전학 가면 선수 할 수 있나요?” 그 소녀가 9년 뒤 제주 출신 첫 체조 올림픽 대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당시 제주 체조계는 ‘암흑기’였다. 외환위기 이후 유일한 체조 실업팀이던 제주은행이 해체됐다. 선수들이 뛸 터전이 없어졌다. 체조 엘리트 선수를 찾기도 어려웠다. 도리초등학교 시절부터 허선미를 지도한 박 코치는 “(허)선미는 체조를 위한 몸을 타고난 유망주였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허선미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성적을 낸 건 아니었다. 전국대회 상위권에 오르긴 했지만 1등은 항상 비제주권 선수들의 차지였다. 허선미는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제주도를 벗어난 적이 없어 전국대회에 참가할 때면 항상 위축돼 제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그때의 실수를 딛고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허선미는 2010년 전국체전 4관왕, 지난해는 3관왕에 오르며 제주 체육계의 스타가 됐다. 전국체전에서 만년 꼴찌였던 제주가 평균 20여 개의 금메달을 얻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활약은 더 돋보였다. 제주도체육회는 그런 허선미의 현역생활을 위해 ‘삼다수’ 체조팀 창단까지 추진하고 있다.

제주도민의 성원을 받은 허선미는 제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12년 런던 올림픽 체조 대표가 됐다. 4월 8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런던 올림픽 기계체조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에서 차세대 에이스로 손꼽히던 성지혜(대구체고 1)를 꺾고 종합 1위에 오른 것이다. 허선미는 “우승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기뻤다. ‘어중간한 선수’라는 시선을 깨서 더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 여자 체조는 런던 올림픽 단체전 출전이 좌절됐다. 이 때문에 개인 종합에 단 1명만 출전이 가능하다. 그 자리를 차지한 허선미의 각오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체조#올림픽#허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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