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인터뷰] ‘오뚝이’ 여정호와 눈물 젖은 공…“더 이상의 좌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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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21일 14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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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훈련캠프에서 부쩍 성장한 NC 다이노스의 좌완투수 여정호. 애리조나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미국 애리조나 훈련캠프에서 부쩍 성장한 NC 다이노스의 좌완투수 여정호. 애리조나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젊은 공룡’ NC 다이노스에는 인생의 쓴맛을 본 선수들이 많다. 기량 부족으로 방출된 선수와 부상으로 팀에서 이탈된 선수들이 상당수다.

좌완투수 여정호(28)도 마찬가지. NC의 유니폼을 입기까지 어렵고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어왔다.

여정호는 다른 선수들보다 늦은 나이인 부산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다. 부산상고(현 개성고)에 진학해 투수로 변신한 여정호는 프로팀 입단을 노렸지만 드래프트의 벽은 예상보다 높았다. 여정호는 4년 뒤 동국대 유니폼을 입고 다시 프로팀의 문을 두드렸지만 부상과 기량 부족으로 또 한 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하지만 여정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시련이 커지고 부상이 악화될수록 오기가 생겼다. ‘아들을 위해 십 수 년 동안 희생해온 부모님에게 뭔가를 보여주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일본과 미국을 떠돌며 선수생활을 이어온 여정호에게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지난해 신생팀 NC 다이노스가 주목 받지 못한 선수들에게 트라이아웃을 열어 입단 테스트 기회를 준 것.

여정호는 다시 찾은 기회에서 인상적인 피칭을 선보였고, NC 다이노스의 유니폼을 입는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빠른 공을 뿌리는 좌완투수는 많지 않기 때문에 NC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여정호를 지난주 애리조나 투산 전지훈련 캠프에서 만났다. 인터뷰 중 눈물을 보였을 만큼 험난한 길을 걸어온 여정호였다. 특히 마운드에서 던진 눈물에 젖은 공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은 여정호와의 일문일답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동국) 때도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실망이 컸을 텐데

-한 동안 많이 방황했다. 정말 힘들었다. 그러다 대학 감독님 추천으로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인 우리 히어로즈에서 배팅볼 투수로 일하게 됐다.

재능이 있었다면 배팅볼 투수로 일하면서 인정받을 기회가 있었을 것 같다.

-말이 좋아 투수지 배팅볼 투수는 사실 정식선수가 아닌 단순 일용직 노동자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던졌다. 당시 장채근, 정명원 코치님이 인정을 해주셔서 감독님 앞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결과도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구단 프런트의 반대로 또 다시 좌절을 맛봐야 했다.

충격이 컸을 것 같다. 그 후 어떻게 됐나?

-2009년 1월 지인의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가 지바 롯데 구단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1차 테스트를 통과해 바비 발렌타인 감독 앞에서 2차 테스트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식한 탓인지 투구 중 팔꿈치 인대가 파열되는 부상을 당했다. 다음날 귀국해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또다시 시련이 찾아왔다. 긴 재활과정을 마칠 무렵이었던 9월 달리기를 하다 넘어져 발목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듣기만 해도 끔찍하다. 프로 입단 실패와 거듭된 부상으로 야구를 포기하고 싶었을 것 같다.

-당연히 포기하고 싶었다. (전)병두처럼 프로에 입단해 잘 나가는 동기들을 보니 ‘내 인생은 왜 이리 꼬이는 걸까’라는 생각에 긴 밤을 한숨으로 지센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포기할 수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부상에서 벗어난 이후의 과정을 알려달라.

-2011년 1월, 알고 지내던 에이전트가 미국에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받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솔깃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고맙게도 부모님께서 뒷바라지 해줄 테니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라고 하셨다. 미국으로 건너가 입단 테스트를 받았는데 구속은 괜찮았으나 제구가 문제였다.

그럼, 또 좌절인가?

-그렇다. 이번에도 좌절을 맛봤다. 다시 진로를 놓고 고민하던 중 미국행을 주선한 에이전트가 하와이 독립리그 팀과 계약이 됐다며 당장 하와이로 가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네가 가라 하와이’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만큼 그의 일 처리가 부실하고 믿음이 없었다. 그는 또 하와이에 도착하면 구단직원이 마중 나와 모든걸 처리해줄 거라고 했다. 또 다시 없는 살림에 어렵게 돈을 마련해 하와이로 건너갔다.

많은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난 NC 다이노스의 좌완투수 여정호. 동아닷컴 DB
많은 좌절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난 NC 다이노스의 좌완투수 여정호. 동아닷컴 DB


연이은 좌절 후에 드디어 희망이 찾아온 건가?

-아니다. 하와이 공항에 도착했으나 나를 기다릴 것이라는 구단직원은 없었고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수중에 돈도 없어 결국, 공항 바닥에서 자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물어 물어 구단을 찾아갔다. 그러자 감독은 늦게 왔다고 화를 내며 당장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던지라고 했다. 몸도 못 풀고 부랴부랴 마운드에 올라 공을 잡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여정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내 처지가 서럽기도 했고, 못난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고생만 하는 부모님 생각에 눈물에 젖은 공을 던지기 시작했다. 부모님 덕인지 그날따라 공을 잘 던져 바로 구단과 계약했다.

독립리그 성적은 어땠나?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하며 1승1패12홀드에 자책점 2.80을 기록했다.

좋은 성적이다. 선택의 폭이 조금 넓어졌을 것 같은데.

-독립리그 시즌이 끝난 2011년 8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최근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한 최은철 선배와 새벽까지 운동하며 진로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 운명을 바꾼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현 SK 코치인 김경태 선배에게 걸려온 전화였는데 이틀 후 NC 다이노스의 입단 테스트가 있으니 도전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틀 후면 시간이 촉박했을 텐데.

-시간도 시간이지만 내 공에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이 앞섰다. 운이 좋았는지 같이 훈련한 최은철 선배가 큰 도움이 됐다. 최은철 선배가 야구를 참 잘 가르친다. 내 투구폼 수정을 위해 거의 하루를 돌봐주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면서 ‘이제 가도 되겠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또 급하게 비행기표를 마련해 귀국하자 마자 바로 마산구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또 생각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번엔 또 무슨 문제인가?

-구단 측에서 입단 테스트 명단에 내 이름이 없기 때문에 테스트에 참가할 수 없다고 하더라. 실망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아는 지인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고, 간신히 테스트를 받을 수 있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이고 너무 간절해 팔이 빠져라 던졌다.

결과는 좋았나?

-(웃으며) 그렇다. 그날 구속이 146km까지 나와 1차 테스트를 무난히 통과하고 다음날 2차 테스트를 받았다. 2차 테스트에는 평소 존경하던 김경문 감독님이 계시더라. 갑자기 밀려든 긴장감 때문에 생전 안 먹던 청심환까지 먹고 던졌다. 2차 테스트를 통과하고 마지막 3차 테스트를 받았다. 연습게임으로 진행됐는데 2이닝을 던지는 동안 안타 하나 맞고 삼진 4개를 잡았다. 결국 최종합격자 명단에 내 이름을 올리게 됐다.

먼 길을 돌고 돌아 드디어 프로선수가 됐다. 당시 기분은 어땠나?

-테스트를 받는 동안 부모님이 부산에서 마산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셨다. 최종합격자 명단을 확인한 후 부모님 앞에서는 웃었으나 갑자기 그 동안 겪었던 서러움이 밀려와 아무도 없는 곳에 가 기쁨과 서러움이 담긴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프로선수가 된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먼저, 여정호의 가능성을 믿고 뽑아준 구단에 감사한다. 어렵고 힘들게 온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내게 더 이상의 좌절은 없다. 반드시 NC 구단에 소금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많이 응원해 주고 지켜봐 달라.

애리조나 | 동아닷컴 이상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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