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인은 산에 가야 산악인이죠” 박영석 마지막 동영상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3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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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원정대의 영결식은 애도와 다짐이 뒤섞여 눈물바다를 이뤘다.

3일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 대원의 합동영결식이 열린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박 대장이 베이스캠프에서 남긴 마지막 동영상이 식장에 설치된 대형 텔레비전을 통해 흘러나오자 산악인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흐느낌을 쏟아냈다.

"살아 있는 것이 감사하지요. 나랑 같이 등반하다가 다른 곳으로 멀리 간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만 산악인은 산으로 가야 산악인이라고 생각해요. 탐험가는 탐험을 가야 탐험가이고요. 도시에 있는 산악인은 산악인이 아니라고 봐요. 야성을 잃은 호랑이. 들판에서 뛰며 사냥을 해야 호랑이가 호랑이이지요. 나는 죽는 그날까지 탐험을 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면서요."

숙연해진 영결식장에서는 박영석 대장과 두 대원의 실종을 애도하고 박 대장의 정신을 기리는 추도가 이어졌다.

이인정 대한산악연맹 회장은 "우리의 만남이 비록 비극으로 끝났지만 지구상에 인간이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박영석의 정신은 우리 마음에 살아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강 대원과 신 대원은 우리의 보배이자 희망이었으며 그들이 추구한 가치, 도전과 개척 정신은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동력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기학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은 "역경과 일시적 불운에 지치지 않고 다시 도전과 탐험으로 돌아가던 모습, 후배를 양성하고 위해 헌신하던 열정은 우리에게 도전의 참 의미를 깨우쳐 준다"고 말했다.

그는 "대장 박영석은 우리 사회에 정직과 성실의 등불이 됐다"며 "박 대장과 대원들은 갔지만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병구 한국산악회 회장은 "박영석은 제자리에 머무는 것을 참지 못하는 진보의 화신이었다"며 "산악인은 산에서 잠들지만 그들의 발길은 산에 있기에 그들의 도전과 열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옥 동국대 총장은 "오늘 성취하면 내일 또 아무도 가지 않은 다른 곳을 찾아가는 무한도전의 사나이가 박영석"이라며 "그가 등정한 높이는 인류 정신의 높이였고 그가 뚫은 길은 인류역사의 이정표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배경미 대한산악연맹 이사는 "한 사람이 개척한 길이 모두에게 나침반이 된다"며 "당신의 꿈은 모두의 꿈이었고 당신은 우리의 꿈을 힘겹게 홀로 지고 갔다"고 자작한 헌시를 낭독했다.

알파인 코러스팀의 '악우가(岳友歌)'와 이춘애 소프라노와 팝페라그룹 디 카포가 함께한 '그리운 금강산'이 울려 퍼져 떠난 이들의 넋을 달랬다.

유가족들은 영결식을 찾아준 조문객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원정대의 '불굴의 도전 정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지난 18일 박영석 원정대가 실종되고 나서 급하게 장비를 꾸려 안나푸르나로 떠나 구조·수색 작업을 하다가 돌아온 이들도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

이날 새벽에 귀국한 진재창 대원은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오열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수색대를 진두지휘한 김재봉 대한산악연맹 전무도 박 대장이 생명의 은인이었다는 사실을 회고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 전무는 "10년 전에 시샤팡마에서 고소증으로 죽어갈 때 박영석이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올라온 덕분에 살았다"며 "그때를 생각하며 나는 헬리콥터를 타고 박영석에게 날아갔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헌화가 시작되자 유족들과 산악인들, 추모하러 온 일반인들이 백합을 손에 들고 영정 사진 앞에 줄을 지었다.

영결식장을 찾은 유인촌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도 헌화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엄홍길 대장은 북받치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박 대장의 사진 앞에 무릎을 꿇고 오열하며 안나푸르나의 신을 불렀다.

엄 대장은 "이들의 영혼을 거둬달라"고 되뇌다 "왜 제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라며 슬퍼했다.

흐느낌과 추모의 물결은 영결식이 끝난 후에도 계속 이어져 영결식장을 가득 메웠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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