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 대구 육상]<2>본보 유근형 기자, 창 던져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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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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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세계육상선수권 D-15

《고대 로마시대의 검투사 글래디에이터를 상상하며 필드에 섰다. 갑옷도 뚫는다는 창의 파괴력을 체감해 보고 싶었다. 경기용 창의 끝은 날카로움이 덜했지만 기자의 비장함은 글래디에이터를 능가했다. 온몸에 기운을 모으고 달려 나가려는 찰나. 기자의 일일체험 코치로 나선 대표팀 김기훈 코치가 불호령을 내린다. “정신 차려요. 창 거꾸로 잡았습니다. 그러다간 기자님이 먼저 죽어요.”》

본보 유근형 기자가 11일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운동장에서 창던지기 체험을 하고 있다. 스텝이 꼬여 여러 차례 넘어지고 무게가 가벼운 여자용 창으로 바꿔 들고 나서야 하늘로 창을 날릴 수 있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1일 대표팀의 훈련장인 서울 송파구 한국체대 운동장에서 맞닥뜨린 창던지기는 생각처럼 간단치 않았다. 공터에서 막대기 던지듯 자연스럽게 던지면 될 거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창던지기는 총 3단계로 나뉜다. 앞으로 뛰며 속도를 높이는 약 20m의 어프로치(Approach), 옆으로 달리며 활시위를 당기듯 창을 뒤로 젖히는 크로스오버 스텝(Crossover step), 던지기 단계인 딜리버리(Delivery).

기자에게 첫 번째 굴욕을 안긴 것은 크로스오버 스텝이다. 옆으로 스텝을 밟다 다리가 엉켜서 고꾸라지기 일쑤였다. 수차례 넘어지기를 거듭하며 스텝에 익숙해지니 이번엔 팔이 말을 듣지 않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 던질 때 창의 궤적이 머리에서 최대한 가까운 지점을 통과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면 창에 머리를 찔리게 된다.

익숙지 않은 스텝과 두려움을 떨쳐내고 20여 분이 지나서야 하늘을 나는 창을 처음 볼 수 있었다. 기록은 14.70m. 드디어 던졌다는 안도감도 잠시, 코치는 연방 고개를 저었다. “창이 꼬리부터 땅에 닿았기 때문에 파울입니다. 차라리 가벼운 여자 창으로 해야겠습니다.” 남자는 800g, 여자는 600g의 창을 쓴다.

기자 옆에서 몸을 풀던 여자 대표 김경애(23·포항시청)가 피식 웃으며 첫 도전에 나섰다. 몸 풀기 차원에서 던졌는데 기자의 세 곱절가량 나갔다. ‘저 정도 힘이라면 진짜 갑옷도 뚫을 수 있겠구나.’ 첫 도전부터 기록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창던지기는 ‘힘 좋은 사람들이 하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출발선에 섰을 때 풍향, 도움닫기 스텝 횟수, 투사각까지 고려해야 하는 과학적 운동이다.

트랙 종목과는 달리 초속 2.0m 이상의 뒤바람이 불어도 기록이 인정되는 것도 이색적이다. 실제로 얀 젤레즈니(체코)가 1996년 수립한 세계기록(98.48m)은 강한 뒤바람 덕택에 작성됐고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창던지기 선수들은 야구의 선발투수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단계별로 훈련한다. 투수 못지않게 체력 소모가 많고 근육에 무리가 가기 때문이다. 창을 던지는 순간 자기 체중 3배의 무게가 다리에 쏠린다. 김 코치는 “창 10번 던지는 게 선발투수가 공 100개 던지는 것과 비슷할 만큼 힘든 운동이다”라고 말했다.

30여 차례 온 힘을 다해 창을 던지고 나니 기자의 체력도 바닥을 드러냈다. 600g밖에 안 되는 여자 선수용 창이 군 시절 들던 K2 소총(약 3.26kg)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마지막 시도를 앞두고 ‘창이 화살이라면 내 몸은 활이 되어야 해’라고 다짐했다. 어둑어둑해진 서쪽 하늘로 떠난 마지막 창은 26.40m 지점에 꽂혔다. 초보 치고는 나쁘지 않은, 금일 최고 기록이 작성되자 김 코치는 기자에게 박수와 함께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미쳐야 신기록이 나와요. 전 아직 통장 비밀번호가 8000입니다. 현역 시절 못 넘긴 80.00m가 한이 돼서…. 오늘 기자님처럼 대구에서 선수들이 미쳐주겠지요. 그래야 국민이 박수를 쳐주실 테니까요.”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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