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여자오픈 한국인 5번째 우승 유소연… “우승 비결? 엄마표 밥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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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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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꿈꿨던 그녀

“엄마, 밥맛이 이상해.”

과년한 딸의 때아닌 투정에 어머니는 잠시 의아해했다. 12일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의 브로드무어골프장 동코스(파71·7047야드)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유소연(21)과 어머니 조광자 씨(55) 사이에 며칠 전 일어난 일이었다.

조 씨는 딸이 해외 대회에 나갈 때마다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뒷바라지에 나섰다. 이번 US여자오픈에도 취사도구와 딸이 좋아하는 오징어채 무침, 김 등 밑반찬을 한 짐 싸갖고 왔다. 호텔에서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김치는 냄새가 안 나게 볶아서 가져왔다. 숙소도 취사가 가능한 데로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밥이 설익었다. 알고 보니 해발 1800m가 넘는 고지대여서 기압이 낮은 영향이었다. “예전에 등산 가서 밥을 해먹으면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조 씨는 밥을 지을 때면 책이나 무거운 컵 등을 밥 짓는 코펠 위에 올려 집에서 딸에게 해주던 밥맛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번 대회는 천둥 번개와 폭풍우 등 잦은 악천후로 경기가 시도 때도 없이 중단되면서 선수들은 제때 식사하기가 힘들었다. 조 씨는 멸치를 넣은 미니 김밥을 말아 출출할 때마다 딸이 먹도록 했다.

이런 정성에 보답하듯 유소연은 메이저 챔피언에 등극해 반짝이는 은제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어머니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유소연은 “밥심인가 보다. 잘 먹어 좋은 결과를 냈다. 앞으로 LPGA투어에 진출할 텐데 엄마도 미리 영어 공부를 하셔야겠다”며 웃었다.

어머니는 늘 어리게만 보였던 딸이 대견하기만 했다. 조 씨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소연이를 낳았을 때 예정일보다 3주 늦었는데도 3kg이 채 안 돼 걱정했는데 잘 자랐다. 늘 밝고 당찼다”고 칭찬했다.

유소연이 어려서부터 골프클럽을 잡은 건 아니었다. 고사리손에는 바이올린이 들려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던 5세 때였다. 골프는 서울 세종초교 2학년 때 시작했다. 유소연은 “골프를 시작한 게 수요일이었는데 며칠 후 화요일에 박세리 언니가 US여자오픈에서 처음 우승하는 걸 TV로 보면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유소연은 여전히 바이올린 연주가를 꿈꿨다. “바이올린뿐 아니라 플루트,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어요. 연주회에 참가도 하고요. 골프는 방과후 취미 활동이었죠.”

골프와 음악을 병행하던 그는 서울 오륜중 2학년 때 한 우물을 파기로 결심했다. “바이올린은 듣는 사람마다 다른 평가가 나오잖아요. 반면 골프는 스코어가 모든 걸 말해줘요. 내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유소연은 여전히 틈나면 피아노를 치며 운동으로 지친 심신을 달랬다.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잘 쳐보려고 연습하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언제 한번 들려드릴게요.” 어려서부터 접했던 음악적 소양은 골프에도 도움이 된다. 코스에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섬세한 쇼트 게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단다.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열로 유소연은 초등학교 때 2년 동안 서울 용산의 미군 부대에서 토요일마다 영어 수업을 받았다. 조 씨는 “소연이가 외국인들을 접하면서 두려움을 없앴다. 입이 일찍 터졌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는 LPGA투어 진출에 대비하려고 본격적으로 영어 레슨을 받았다. 재미교포와 캐나다 출신 교사를 고용해 일대일 대화와 화상 강의로 영어 실력을 키웠다.

유소연은 대회 기간 미국 방송사 NBC, ESPN을 비롯한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 우승 기자회견 등에서 통역을 거의 쓰지 않았다. LPGA투어의 한 관계자는 “조금 실수하더라도 당당하게 영어로 얘기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지닌 것 같다”고 칭찬했다.

유소연은 이번 우승으로 58만5000달러(약 6억2000만 원)의 상금에 소속사 한화의 보너스로 3억 원 이상을 받게 돼 10억 원 정도를 벌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쓰고 싶을까.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자신을 대신해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여동생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은 미국에서 바이올린 유학에 앞서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 “동생이 가려는 학교의 학비가 무척 비싼가 봐요. 평소 운동하느라 언니 노릇도 제대로 못했는데 제대로 한번 쏴야죠.”

콜로라도스프링스=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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