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율화의 더 팬] 장종훈·정민철, 그들이 영웅일 수밖에 없는 이유

  • 스포츠동아
  • 입력 2011년 3월 25일 07시 00분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한화 이글스의 장종훈, 정민철 코치와 식사를 하게 되었다. 레전드 중의 레전드, 이글스의 자랑이자 한국 프로야구사의 산 증인. ‘나는 야구 선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당장 섭외 1순위일 두 분과 함께 한 시간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귀한 추억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내게 있어 한낱 응원팀의 야구 선수가 아니었다. 살아오는 동안 삶의 갈피갈피마다 참으로 많은 영향을 내게 주었으니 말이다.

학창 시절, 선생님 말씀은 귓등으로 흘려들어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오빠’의 말씀은 가슴속 깊이 박히는 금과옥조였으며, 서울에 올라와 마음 둘 곳 하나 없을 때, 드넓은 잠실구장에서 누구보다도 빛나던 그들은 내 자부심과 긍지 자체였다. 길다면 긴 20여 년 동안 수많은 추억을 공유했으니, 어쩌면 그들과 나 사이에는 어지간한 동창생보다도 더 공통분모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들이 찬란한 영광을 누린 것만은 아니다. 기록의 사나이, 연습생 신화의 영웅이자 원조 홈런왕인 장종훈은 수해의 부진 끝에 은퇴하여 이제는 추억의 이름이 되었다. 호리호리한 어깨에 이글스를 다 짊어지다시피 했던 고독한 에이스 정민철도 영원히 자신의 땅인줄 알았던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세상에 무서울 것 없던 내 영웅들이 등을 보이며 물러나는 모습이 어찌나 서럽도록 가슴 저미던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여전히 내 영웅인 이유는 가장 찬란했던 순간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안 될 것 같은 순간에도, 분명 예전 같지 않은 기량일 때에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의 자리를 지켰다. 1999년에 이글스의 우승을 결정짓는 결승 희생 플라이는 4번 타자가 아닌 5번 타자 장종훈의 방망이에서 뿜어져 나왔고, 정민철은 한때 최고라 불렸던 직구를 잃은 후에도 노련한 변화구(일명 백팔번뇌 커브)로 타자들을 돌려세웠다.

누구라도 언제도록 영광의 정점에 서 있을 수는 없는 법. 잘나갈 때가 아닌 어려운 시기가 닥쳐왔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그리고 그 어떤 때라도 용기를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음을 그들은 내게 직접 보여주었다. 어쩌면 그들이 정상일 때 은퇴해 버렸다면 내가 알지 못했을 부진과 재기, 패기와 여유, 좌절과 극복. 그 모든 것을 다 보았기에 난 그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나의 영웅이다.

구율화 변호사

야구선수들의 인권 보장을 위한 법과 제도 마련에 관심이 많다. 야구계 변방에서 꾸준히 팬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스포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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