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신 "은퇴? 10월 올림픽 예선까진 뛰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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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8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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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핸드볼 분데스리가의 추억

통산 최다득점…13년간 50억원 벌어
한국인 자존심 지키려 귀화 권유 거절

두산 윤경신. 스포츠동아DB
두산 윤경신. 스포츠동아DB
핸드볼코리아컵 3년 연속 득점왕
윤·경·신

한국 구기종목 사상 이 정도 위상의 선수는 없었다. 윤경신(38·두산)은 경희대 졸업 직전인 1995년 12월, 세계 최고의 핸드볼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다. 그리고 13년간 득점에 대한 분데스리가의 거의 모든 기록을 갈아 치운 뒤, 2008년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3년간은 그 명성 그대로였다. 2월 소속팀 두산은 SK핸드볼코리아컵을 3연패했고, 윤경신은 3년 연속 득점왕에 올랐다. 4일‘월드스타’ 윤경신을 만났다. 자신의 단골집이라고 소개한 서울 월계동의 참치회집에서였다. 식당 벽면에는 윤경신의 유니폼이 걸려있었다. 인터뷰 중간, 그를 알아본 팬들이 소주 한잔씩을 권하며 한국 핸드볼을 응원했다.

○분데스리가 역사상 최고의 골게터

- 독일에서의 인기는 더 대단하지 않았나? 광저우아시안게임 중에는 독일 언론과 인터뷰도 했는데….


"어디선가 독일어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독일 모 언론사의 중국특파원이었다. 2006도하아시안게임 때 한국이 편파판정에 당한 것이 독일에서도 이슈가 된 모양이었다.(당시 윤경신은 ‘신(神)이 와도 못 이길 경기’라는 말을 남겼다.) 그 점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물어보더라. 독일에 있을 때는 아내와 쇼핑을 가도 많은 분들이 나를 알아봤다. 국제대회 때면 자비를 들여 찾아와, 태극기를 들고 응원해주는 독일 팬도 있다.”

-아직도 분데스리가 개인통산 최다득점(2905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어서일까?

“하지만 무섭게 추격하는 선수가 있었다. 최근까지 100골차 이내였는데….”

-통산기록 2위(2875골) 라스 크리스티얀센(39·덴마크)과 불과 30골 차이다. 하지만 그 선수도 2010∼2011시즌부터 자국리그로 돌아갔다.

“다시 크리스티얀센이 (독일로) 돌아올 수도 있고…. 나이는 그가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통산최다득점 뿐만 아니라 6회 연속(1996·1997시즌∼2001·2002시즌)득점왕, 통산8회 득점왕, 한 시즌 324득점(2000·2001시즌)도 모두 분데스리가 기록이다. 어떤 것이 가장 깨지기 힘들까?

“아마 시즌 최다득점(324골)이 가장 어려울 것이다. 38경기에서 세운 기록(경기당 약 8.5골)이다.” (분데스리가가 단일리그로 운영된 1977년 이후 한 시즌 300골을 넘긴 선수는 윤경신이 유일하다.)

○귀화제의? ‘자존심’과 ‘아리랑의 눈물’로 뿌리치다

-분데스리가 시절, 코트 안팎에서 리더십을 잘 발휘했다고 들었다.


“독일진출 5년 만에 Vfl굼머스바흐의 주장이 됐다. 소통하기 위해서 운동뿐 아니라 독일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파티 때는 한국의 주도(酒道)와 폭탄주를 가르쳐주기도 했다. 러시아 선수들도 같은 팀에 있었는데, 걔네가 보드카는 잘 마셔도 폭탄에는 좀 약했다.(웃음)”

-주량은 얼마나 되나?

“독일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맥주는 잘 마신다. 맥주로는 주량을 잘 모르겠다. 예전에는 술로도 무서운 게 없었다. 여전히 후배들이 나랑 술 마시는 것은 꺼리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독일에 있을 때 많이 못 마셔봐서인지’ 소주는 좀 약해진 것 같다. 요즘은 소주를 마시면 좀 ‘알딸딸한’ 정도다.”

-당신을 보면 라이언 긱스(웨일즈)나 조지 웨아(라이베리아)가 떠오른다. 그들은 당대 최고의 축구선수였지만,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했다. 선수 윤경신도 올림픽메달이 없다. 그 점이 아쉽지는 않은가?

“사실 독일에서 귀화 얘기도 있었다. 내가 있으면 세계최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돈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독일 교민 분들과 가끔 자리를 함께 하곤 했다. 그 분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하셨다.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시던 이민 1세대 분들이었다. 함께 아리랑을 부르고, 또 애국가를 부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차범근 선배님을 독일진출 직전에 태릉에서 잠시 뵌 적이 있었다. 그 때 ‘외롭고 힘들겠지만 열심히 하라’며 나를 격려해 주셨던 기억이 난다. 타국에 있으면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짙어지는 법이다.”

2m3cm 신장, 핸드볼 안했더라면?
태릉 첫 입촌 때 "배구 해볼래?" 제의
야구 제대로 배웠다면 140km는 거뜬

○독일에서 총수입은 50억 이상, 연봉 7억 받기도

-독일에서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50억 이상 벌었다”는 얘기도 있던데….


“13년 간 수입을 합치면, 50억 이상은 되는 것 같다. 독일에 처음 갔을 때 연봉이 1억2000만원이었다. 아파트와 자가용도 나왔다. 매달 통장에 900만원씩 찍히는데, 놀라울 따름이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내가 생각해도 몸이 너무 좋았다. 세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 때는 인센티브와 수당 등을 모두 합쳐서 연간 7억원 이상 벌었다. 나이키 등 굴지의 스포츠용품회사 광고까지 찍었으니….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현재 프로야구 최고연봉이 7억원으로 알고 있다.

나는 그래서 자부심이 있고, 핸드볼을 무시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그가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어도 할 말을 한다. 후배들에게도 핸드볼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핸드볼 선수로서 자존심을 지켜도 좋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현재 유럽무대의 최고선수는 연봉 10억 이상을 받는다.”

-그래도 다른 운동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큰 키(203cm)에도 균형 잡힌 몸매와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고 있다.

“내 키가 203cm로 알려져 있는데 그것보다 조금 더 크다. 한 204∼205cm 정도?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키가 너무 커도 부끄러워했다. 게다가 난 농구선수도, 배구선수도 아니었으니…. 100m는 13초F에 뛴다. 한창 때는 그보다 더 빨랐던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간 게 고등학교 2학년 때다. 그 때 배구감독님께서 ‘너 배구 한번 해 볼래?’라고 농담 섞인 말씀을 하셨다. 그 때는 하도 대표팀에서 혼이 많이 나서 ‘옮길까?’ 고민해보기도 했다.

야구는 시구를 한 번 해봤는데 어렵더라. 한 번 쯤 시속120km 가까이는 던져본 것 같다. 아마 제대로 배웠으면 시속140km는 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난 핸드볼이 가장 잘 어울린다.”

○핸드볼전용경기장에서 은퇴경기 하고 싶어

-한국에 온 지 3년이 됐다. 어려운 점도 많았을 텐데….


“처음에는 안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 ‘꼭 뛰어야 하냐? 후배들 죽이려고 하냐?’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핸드볼에도 기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음을 더 독하게 먹었다. 내가 얼마나 잘 할 수 있는지, 후배들이 얼마나 나를 따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후배들에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얼마 전 관중석에서 참 안타까운 경기를 봤다. 전력이 약한 팀이라면 악착같은 면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오기조차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 내 후배인 그 팀 관계자에게 한 소리를 했다. 한국 선수들의 기술은 이미 뛰어나다. 난 오히려 정신적인 부분을 말하고 싶다.”

어느덧 서른여덟, 마지막 꿈은?
9월 완공 전용 경기장서 뛰어보고 은퇴
박사 과정 시작…모교 강단에 서고 싶어

-시스템 상으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한국핸드볼이 후반에 약하다고 한다. 체력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만큼 체력 좋은 나라도 없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선수저변의 문제다. 선수간의 실력 차가 크다는 얘기다. 당장의 능력이 좀 부족하더라도 유망주 3∼4명을 대표팀에 넣어서 키울 필요가 있다.”

-윤경신 이후의 한국남자핸드볼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당신의 후계자를 꼽아 달라.

“정수영(26·웰컴론코로사)도 잘 하고, 박중규(28·두산)도 이미 세계적 반열에 있다. 유럽에 가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욕심을 가져야 한다.”

-은퇴는 언제쯤으로 생각하고 있나?

“10월 서울에서 열리는 2012런던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까지는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 9월 완공되는 핸드볼전용경기장에서 열리는 대회다. 전용경기장에서는 꼭 한 번 뛰어보고,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다.

솔직히 올림픽본선 때까지 내 체력이 받쳐줄 지는 모르겠다. 또 선수 이후의 삶도 준비해야 할 나이이지 않나.”(두산과 윤경신의 3년 계약은 6월로 만료된다. 두산 김진 사장은 “재계약 문제는 선수 본인의 의사가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 이후라면?

“2월 모교인 경희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이제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이다. 8일부터는 ‘전문실기핸드볼’이라는 학부과목의 강의도 맡았다. 모교에서 교수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꿈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 윤경신은?
▲학교=고려고∼경희대
▲신장= 203cm
▲경력=1995년 Vfl 굼머스바흐∼ 2006년 함부르크SV ∼2008년 두산
▲분데스리가 주요기록=개인통산 2905골(1위), 6회 연속(1996·1997시즌∼2001·2002시즌)득점왕, 통산8회 득점왕(1위), 한 시즌 324득점(2000·2001시즌)
▲주요수상내역=1990·1994·1998·2002·2010아시안게임금메달
▲생년월일=1973년7월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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