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인물탐구] 공 던지는 법 깨달은 배영수 “난, 3년동안 투수가 아닌 로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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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일 07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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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대접합 수술후 구속 늘리기 급급
집착버리고 힘 빼니 리듬감 살아나
변화구 개발 등 타자 이기는법 터득
2년연속 10승 찍고 日진출 해야죠

삼성 배영수는 2007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후 지난해까지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깨달음도 얻은 소중한 시간. 그는 “지난 3년간 난 로봇처럼 던졌다”면서 “이젠 나만의 야구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 DB
삼성 배영수는 2007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후 지난해까지 힘든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깨달음도 얻은 소중한 시간. 그는 “지난 3년간 난 로봇처럼 던졌다”면서 “이젠 나만의 야구를 하고싶다”고 말했다. 스포츠동아 DB
2006년까지는 오르막길만 있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로 리그를 지배했다. 그러나 2007년 1월,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 후 곧바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재활 후 2008년 다시 마운드에 섰지만 지난해까지 이렇다할 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삼성 배영수(30)는 수술 이전과 이후 완전히 다른 투수로 살아왔다. 그러나 그는 “힘겨운 도전 속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 야구를 우습게 봤다

배영수는 수술 후 1년 만에 마운드에 섰다.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하면 보통 1년 반에서 2년 정도는 재활을 해야 하지만, 그는 2008년 실전 마운드에서 재활훈련을 한다는 생각으로 공을 뿌렸다.

그런데 그해 9승(8패)을 해버렸다. 방어율은 4점대(4.55)로 좋지 않았지만 예상을 웃도는 훌륭한(?) 성적이었다.

“수술 후 처음 마운드에 섰는데, 첫해에 9승을 하다보니 야구가 쉬워 보이더라고요. 당연히 다음해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줄 알았죠. 예전 성적까지 가는 데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건방진 생각이었죠.”

그는 스스로를 향한 비웃음을 던졌다. 그리고는 긴 한숨을 토해냈다. 과거에 집착한 지난 4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 구속에만 집착했다

그가 마운드에만 서면 주눅이 들던 상대타자들도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었다. “배영수, 이젠 끝났다”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다. 힘들었다. “힘내라”며 연민의 정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초라했다.

그는 다시 정상에 서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허우적거렸다. 그러나 그럴수록 정상은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과거에는 마음만 먹으면 현실로 만들 수 있었지만, 이젠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수술 후 구속을 늘리기 위해 안 해본 게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아요. 구속에만 집착했어요. 조급하게 힘으로만 던지려고 했죠. 결국은 리듬이 중요한데, 난 최근 3년간 로봇처럼 던지고 있었던 거죠.”

그는 “난 투수가 아니라 로봇이었다”고 계속 되뇌었다. 구속에만 매달리면서 투수의 기본을 잊고 지냈다는 자책이었다.

● 아팠던 기간,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다

집착을 버리니 길이 보였다. 힘을 빼고 던졌더니 리듬이 생겼다. 구속도 살아나고, 공끝에도 힘이 붙었다. 최근 몇 년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존재감. 그러나 지난해 가을잔치에서 배영수는 상대팀마저 신경쓰는 존재로 다시 떠올랐다.

“작년 페넌트레이스 막판에 ‘감’이 왔어요. 그 느낌이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지더라고요. 작년 포스트시즌, 정말 오랜 만에 즐겁게 야구를 했어요. 비록 삼성이 한국시리즈에서 SK에 패해 준우승에 머문 아쉬움은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운드에서 내 공을 던지고 있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어요.

남들도 나이 들면 언젠가는 구속이 떨어지잖아요. 그래서 저도 생각을 바꿨어요. 난 먼저 경험했다고…. 다시 올리면 된다고….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죠. 팔꿈치가 아팠던 기간 알고 보면 마음이 더 아팠던 것 같아요. 그러나 그 아팠던 기간에 잃은 것도 많지만 얻은 것도 많았어요.”

● 이젠 내 야구를 하고 싶다

그는 “투수는 결국 타자를 이기는 게 중요하다”며 웃었다. 한때 직구와 슬라이더, 포크볼 단 3개의 공만 가지고도 타자를 갖고 놀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구속이 떨어졌던 시기에, 그는 타자를 이기기 위해 다양한 구종을 개발했다. 투심패스트볼과 체인지업을 추가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미에 직구는 140km 후반대까지 회복됐다. 무엇보다 이젠 공을 던져도 팔꿈치가 아프지 않다.

“수술 후에 항상 팔이 묵직했어요. 그런데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공을 던져보니 팔이 편해요. 작년 막판에 찾았던 느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는 지난해 말 FA 자격을 얻은 뒤 일본프로야구 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야쿠르트와 계약에 합의하고도 간수치 이상을 이유로 계약이 불발되는 아픔을 겪었다. 처음에는 화도 났고, 의욕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스파이크 끈을 묶었다.

“일단 2년 후 일본에 재도전 해봐야죠. 그러기 위해 2년 동안 10승 이상을 거둬야죠. 예전만큼 하고 싶은 게 솔직한 욕심이지만, 일단 2006년 이후 한번도 못한 10승부터 찍어야죠. 이제 내 야구를 하고 싶어요. 수술 전의 배영수도, 수술 후의 배영수도 아닌, 새로운 배영수의 야구 말입니다.”

최근 수년간 잃어버렸던, 그래서 팬들이 더욱 보고 싶은 배영수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오키나와에서 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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