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2010|스타가 말하는 2010 그때 그 순간] 허정무 감독 "골대 맞은 나이지리아 강슛…가슴이 철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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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2월 29일 07시 00분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허정무 감독, 스포츠동아DB
선제골 내주고 찾아온 한국팀 최대 위기
선수들 슬기롭게 대처 마침내 원정 16강
유쾌한 결실…세계무대 자신감 큰 수확

2007년 12월, 허정무 감독은 중책을 맡았다. 외국인 감독이 이어왔던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0년 거스 히딩크 감독부터 시작된 8년간의 외국인 사령탑에 종지부를 찍었다.

결과도 좋았다. 그는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루어냈다. 1승1무1패로 아르헨티나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오른 한국은 우루과이에 패해 8강 진출에 실패했다. 국내 감독도 월드컵에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허 감독으로부터 월드컵 뒷얘기를 들어봤다.
○16강보다 한국축구의 나갈 길 제시

허 감독은 원정 16강 진출보다 월드컵을 통해 한국축구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는 점에 더 큰 의미를 뒀다. 월드컵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준비를 해야 세계무대에서 통할 수 있는가’에 대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았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억압된 축구를 했던 게 사실이다. 학원축구에서 비롯된 경직된 훈련과 지도방법이 창의적인 플레이를 저해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는 유쾌한 도전을 통해 즐기면서 맘껏 플레이했다. 이를 통해 성적이 났다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허 감독은 마무리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월드컵 4경기를 통해 한국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마무리의 정확도가 더 발전해야한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가 경기는 잘 했지만 결정을 해줘야 할 때 결정짓지 못하면서 흐름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경기가 아르헨티나전과 우루과이전이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반드시 결정력을 높여야 한다.”
○위기를 느꼈던 나이지리아전 선제골

월드컵 치르면서 한국은 그리스 전 2-0의 완승을 거두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다.

“그리스전을 앞두고 편하게 해주려고 일부러 미팅을 안 했다. 그런데 선수들이 따로 모여 스스로 전술 미팅을 하면서 경기를 준비했다. 그게 승리의 밑거름이 됐다.”

출발은 순조로웠으나 아르헨티나에 일격을 당했다. 1-4의 충격적인 패배. 당시는 선수 뿐 아니라 감독들의 신경전도 뜨거웠다. 아르헨티나 마라도나 감독이 한국 벤치를 향해 도발을 했고, 허 감독도 맞불을 놓았다.

“마라도나가 일종의 심리전을 펼쳤다. 그래서 대응을 좀 강하게 했다. 벤치 기 싸움에서 밀리고 싶지 않았다. 마라도나 감독이 이끄는 아르헨티나와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다.”

1승1패의 한국은 나이지리아와 최종전을 벌였다. 비기면 사실상 16강 확정이었다. 그러나 출발은 좋지 않았다. 나이지리아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월드컵을 치르면서 가장 위기였다. 골을 허용한 뒤 나이지리아가 우리 골대를 한 번 맞췄다. 그게 골이 됐다면 사실상 16강은 힘들었다. 선수들이 슬기롭게 위기를 잘 넘겨줬다.”

한국은 1골을 먼저 내주고 2-1로 경기를 뒤집는 힘을 과시했다. 결국 2-2 무승부를 거두긴 했지만 한국은 16강에 안착했다.


○8강 상대 가나도 분석


허 감독은 8강전도 준비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우루과이전에서 승리할 경우를 대비해 다음 경기 상대가 될 수 있는 팀의 경기를 분석했다. 그러나 우루과이전에서 패하면서 그 준비는 수포로 돌아갔다.

“8강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었던 가나와 미국의 조별리그 경기 비디오를 봤다. 우루과이가 강팀이긴 했지만 해 볼만 했다. 토너먼트 대회 특성상 우리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러나 우루과이 전에서 한국은 경기종료 10분여를 남기고 수아레스에게 결승골을 내줘 1-2로 패했다. 8강 진출은 좌절됐다.

“우루과이전에서 밀리긴 했지만 득점 찬스가 많았다. 지성이가 좋은 패스를 2번 연결했는데 모두 골이 되지 않았다. 둘 중에 하나만 들어갔으면 승부는 몰랐다.”

우루과이전을 떠올리면서 허 감독이 또 하나 안타깝게 생각하는 부분은 김보경과 이승렬이다. 조커로 고려했지만 투입하지 못했다. ‘그들이 나갔더라면 어떻게 상황이 바뀌었을까’라는 궁금증이 남아있다. “김보경과 이승렬은 충분히 경기를 뛸 능력이 있다. 그런데 내가 과감하게 그들을 기용하지 못했다. 생각은 있었지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결과론이지만 그들을 내보냈더라면 상황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최용석 기자 gt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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