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에서 기록이 좋지 못해 생각이 많아졌지만 다른 생각은 다 털어내고 내게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생각만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항상 침착하고 달변인 장미란(27·고양시청)도 이 대목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간신히 추스르는 게 역력했다. 역도 여자 최중량급(75kg급 이상) 세계선수권 4연패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장미란에게 올해는 1월 교통사고를 당하는 등 유독 힘든 한 해였다. 하지만 장미란은 19일 중국 둥관체육관에서 아시아경기대회 세 번째 도전 만에 마침내 금빛 바벨을 들어올렸다.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에서 은메달에 그쳐 유독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던 아시아경기 징크스를 떨쳐냈다.
이날 장미란은 인상에서 세 번의 시기 중 한 차례만 성공하며 130kg을 기록해 중국의 멍쑤핑과 카자흐스탄의 마리야 그라보베츠카야(이상 135kg)에게 뒤졌다. 하지만 용상 2차 시기에서 181kg을 드는 데 성공해 멍쑤핑을 제치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다. 장미란은 합계에서 311kg으로 멍쑤핑과 같았지만 체중이 적게 나가 금메달을 안았다.
장미란은 시상식 후 경기장에 와 있던 아버지 장호철 씨(56)와 부둥켜안고 우승의 감격을 나눴다. 그는 “2년 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모든 게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면서 준비가 수월했는데 올해는 참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1월에 교통사고로 겨울훈련을 거의 하지 못했고 몸이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대회 출전을 강행하다 보니 잔부상이 많았던 것.
올 9월 터키 세계선수권대회도 출전하기 힘든 몸 상태였지만 5연패 욕심에 출전을 강행했고 자신의 최고기록보다 17kg 적은 합계 309kg으로 동메달에 머물렀다. 이후 재활에 전념했지만 이번 대회를 앞두고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장미란은 “몸이 좋지 않은 가운데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에 큰 자신감을 갖고 2012년 런던 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심리전에서 게임 끝 ▼
장미란의 강력한 금메달 경쟁자였던 멍쑤핑은 불과 50여 일 전인 9월 말 장미란에게 터키 세계선수권에서 패배를 안겨줬던 상대였다. 그러나 장미란은 이날 짜릿한 막판 뒤집기를 성공시키면서 경험과 심리전에서 우위에 있음을 보여줬다.
장미란은 인상 첫 시기부터 위기에 몰렸다. 130kg의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올렸지만 심판 3명 중 2명이 살짝 구부러진 왼쪽 손목 때문에 성공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멍쑤핑은 1차 시기에서 130kg을 가볍게 들어올렸고 장미란이 2차 시기에서 130kg을 들며 따라오자 3차 시기에서 135kg을 들어올리며 달아났다. 장미란은 3차 시기에 134kg에 도전했지만 실패해 인상 기록이 130kg으로 확정됐다.
5kg의 중량 열세를 안고 들어간 용상에서 장미란은 1차 시기 175kg을 거뜬히 들어올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멍쑤핑은 처음 신청했던 1차 시기 중량을 170kg에서 175kg으로 바꿔 심리전을 폈지만 먼저 도전에 나선 장미란이 175kg을 성공시킨 뒤 2차 시기 신청 무게를 183kg으로 크게 올리며 멍쑤핑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장미란은 멍쑤핑이 2차 시기에서 176kg을 들자 2차 시기 무게를 멍쑤핑의 합계 무게인 311kg과 같아지게 181kg으로 낮춰 들어올리며 다시 멍쑤핑을 압박했다. 합계가 같을 경우 체중이 적은 장미란이 우승한다. 멍쑤핑은 결국 3차 시기에서 182kg으로 중량을 올려 시도하다 실패하면서 스스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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