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장현 기자의 현장출동] “아! 우리 딸이…” 골 터지자 기절

스포츠동아 입력 2010-09-27 07:00수정 2010-09-2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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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김나리·여민지 어머니의 합동응원 이정은 모친 김미자씨 실축했을때 혼절 “머릿속 하얘졌어요”
김나리 모친 김효선씨 눈물 범벅 경기 못 봐…교체된 뒤 한숨
여민지 모친 임수영씨 “딸 넘어질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어요”
한반도 전체가 축구공 하나로 들썩였던 26일 일요일 아침. 여민지, 이정은, 김나리, 김수빈 등의 부모들이 200여 주민들과 모여 “대∼한민국”을 외친 경남 창원 명서초등학교 명정당은 경기 내내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명서초에서 시작된 태극소녀들의 꿈

공동 응원을 한 명서초 명정당. 강당 겸 체육관으로 쓰는 건물이다. 명서초는 세계 첫 우승을 일군 4명의 소녀들이 기본기를 익힌 곳이다.

비록 부상으로 최종 엔트리에서 빠지긴 했지만 주축 멤버로 활약했던 곽민영까지 합치면 5명이 배출됐다. 간간이 조깅하는 주민들만 오갈 뿐, 인적이 드물었던 새벽 5시35분. 드디어 개방된 강당에 불이 환하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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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외부에는 2개의 대형 플래카드가 걸렸다. ‘세계 속 여자 축구강국 우승기원’ ‘필승, FIFA U-17 여자월드컵’ 등 우승을 염원하는 내용이었다. 30여 분이 지나자 하나 둘 씩 응원단이 도착했다. 선배들을 위한 응원을 할 명서초 여자축구부 선수들이 배성길(51) 감독의 인솔 하에 모습을 드러냈다. 배 감독은 최고로 발돋움한 태극소녀들에게 축구 선수로서의 길을 열어주고 축구일기를 쓰도록 한 은사였다. 후배들이 대형 스크린 왼편으로 이동해 북과 장구 등 응원도구들을 정렬하니 준비 완료!

○울다가 웃다가…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서든데스’로 이어진 승부차기까지 140여분간 이어진 혈투. 경기를 앞두고 부모들은 잠을 이루지 못해 눈이 충혈됐으나 서로를 격려하며 챙겨줬다.

여민지의 아버지 여창국 씨와 이정은의 아버지 이병진 씨는 함안대산고에서 또 다른 응원을 하느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정은의 어머니 김미자(51) 씨는 “가슴과 심장이 떨리다 못해 이젠 손까지 떨려온다”며 긴장감을 드러냈다. “항상 남을 배려하고, 후배들에게 ‘가장 생각나는 언니가 되라’고 말해줬다”던 김 씨는 그저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이정은은 여민지와 명서초부터 함안대산고까지 늘 함께 했다.

“오늘 우리 딸이 골을 넣을 것 같다”던 김 씨. 엄마의 느낌은 정확히 6분 만에 적중했다. “최근 딸한테 전화가 왔었는데, 자신이 골 세리머니를 준비했다며 봐도 웃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이정은은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뻐하느라 미처 세리머니를 하지 못했다. 했어도 보지 못했다. 골이 터진 순간, 엄마는 잠시 혼절했으니까.

그러나 이들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1-2로 스코어가 뒤집어지자 곳곳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프타임 직전, 김아름의 동점 골로 다시 따라붙었지만 후반 12분 가토의 재역전 골이 나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제발” “부디”를 외치던 부모들은 망연자실.

김나리의 어머니 김효선(49) 씨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 딸의 플레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김나리는 육상을 하다 배 감독의 눈에 들어 축구로 바꿨다. 후반 33분 딸은 이소담과 교체.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김 씨는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여전히 경기는 진행 중이다.

그리고 1분 뒤 이소담이 3-3 동점포를 쏘았다. 양팀 선수들이 다리에 쥐가 나 그라운드에 쓰러질 정도로 힘들었던 연장전 30분이 지나고, 승부차기.

후공으로 나선 한국의 1번 키커는 이정은. 일본 골키퍼 히라오의 선방에 막히자 엄마 김 씨는 또 기절했다. “왜 하필 네가 처음이니.”

일본 2번 키커 와다가 허공에 볼을 띄운 반면, 여민지가 침착하게 득점해 다시 원점이 됐다. 스코어 4-4에서 6번 키커로 이어졌다. 일본 무라마츠의 공은 크로스바를 때렸다. 그리고 장슬기의 골. 드라마는 해피엔딩이었다.

엄마들은 펑펑 눈물을 쏟으며 서로를 감쌌고, 아빠들은 뒤에서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모두가 챔피언!

2002한일월드컵 4강행을 확정짓는 골을 넣은 홍명보처럼 장슬기가 두 팔을 벌리고 달리는 장면이 스크린에 비치자 강당은 감동의 눈물바다가 됐다.

배 감독은 쉰 목소리로 “민지와 출국 전에 ‘우리의 진면모를 보여주고 오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다. 창의적인 정은이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이 순간은 없었다”고 감격해했다. 여민지가 명서초 시절 입었던 유니폼을 들고 기도하던 어머니 임수영(41) 씨는 “딸이 넘어질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승부차기 할 때는 뒤에서 안아주고 싶었다. MVP수상을 떠나 우리 민지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고마울 뿐”이라며 흐느꼈다.

“딸이 실축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졌다. 제발 민아가 한 골만 막아달라고, 다른 모두는 골을 넣어달라고”했던 김미자 씨는 “딸이 작년 11월 수술한 뒤 남들은 5개월 이상 걸릴 재활 기간을 3개월 만에 단축시키며 부활했는데 정말 장하다”며 감격해했다.

K리그 경남FC 김귀화 감독대행의 친 조카로 대회 직전 발목 부상으로 스페인과 4강전(2-1 승) 때 후반 30분 김나리와 교체 투입돼 10분 출전에 그친 김수빈의 아버지 김종화(46) 씨는 “딸이 몸이 아파 제대로 못했지만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역사를 만들어준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며 밝게 웃었다. 그렇게 감동의 일요일 아침은 흘러가고 있었다.

창원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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