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축구선수, 퍼거슨의 마음을 빼앗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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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시설 전전하던 부랑자,작년 유럽 길거리 대회 참가 6경기 40골로 축구계 입소문
프로입단 1년만에 명문팀 눈독, 맨유감독 경기도 안보고 영입

■ 맨유 입단 포르투갈 베베의 ‘동화 같은 인생역전’

포르투갈 리스본의 뒷골목에서 공을 차던 베베(본명 티아구 마누엘 디아스 코헤이아·20·사진)가 최근 유럽 빅리그의 최고 명문 팀에 입성한 스토리가 화제다.

베베가 12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입단 계약을 한 과정은 ‘극적’이라는 표현으로 모자란다. 카보베르데(북대서양에 있는 섬나라)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나 리스본 북쪽 로레스의 뒷골목에 형과 함께 버려진 베베는 거리의 부랑자로 노숙자 시설을 전전했다. 친구들과 골목에서 공을 차는 것을 낙으로 삼았던 그의 뛰어난 축구 재능이 입소문을 탔고 지난해 보스니아에서 열린 유럽 길거리축구대회에 출전해 6경기에 40골을 넣으며 이름을 알렸다.

이때부터 그의 새로운 인생이 빠르게 펼쳐졌다. 대회가 끝난 뒤 그에게 정규 축구 선수로의 길을 처음 열어준 것은 포르투갈 축구 3부 리그 팀인 에스트렐라 아마도라. 하지만 팀이 그에게 급여를 줄 여력이 없자 올해 6월 1부 리그의 비토리아 기마랑스가 이적료 없이 그를 영입했다. 불과 5주 전 얘기다. 베베는 정규 시즌 전 6경기의 시범 경기에 출전해 왼쪽 측면 공격수로 뛰면서 5골을 넣었다.

그러자 이번엔 유럽 빅리그 스카우트들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도 포르투갈 스카우트로부터 베베의 얘기를 전해 들었다. 맨유 수석코치를 지낸 카를루스 케이로스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도 그를 추천했다.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가 눈독을 들인다는 얘기도 들렸다. 11일 퍼거슨 감독은 포르투갈로 급히 날아갔고 다음 날 이적료 740만 파운드(약 135억 원)에 계약을 매듭지었다.

퍼거슨 감독은 선수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 영입한 선수는 베베가 처음이라고 밝혔다. 베베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일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에스트렐라에서 1년간 그를 지도했던 호르헤 파이자우 감독의 말에 그 실마리가 있다. “요즘 선수들은 유소년 클럽에서 축구를 배운다. 하지만 베베는 거리에서 축구를 깨우쳤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창의적인 플레이를 한다. 또 베베는 선수로 갖춰야 하는 자질을 모두 갖췄다. 큰 키(190cm)에 공중 볼에 능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빠르면서 강하다.”

퍼거슨 감독은 “그가 자라온 배경을 알게 되면 동화 같겠지만 그 선수의 잠재력을 알아본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원석이고 우리는 그걸 보석으로 만들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아직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베베는 포르투갈어로 홈 팬들에게 “호날두, 루이스 나니 같은 포르투갈 출신 선수가 이곳에서 뛰었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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