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앞에 서면 왜 작아지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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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구단 대표타자들이 말하는 “이래서 무섭다”

롯데 이대호 “체인지업은 알고도 못쳐”
두산 김현수 “서 있기만 해도 타자 압도”
삼성 박석민 “마음 비우고 타석에 서야”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류현진 찬가’를 불렀다. 구위로 보나 기록으로 보나 한화 왼손 투수 류현진(23)이 현재 국내 프로야구 최고 투수라는 데 이론이 없었다. 각 구단 대표 타자들이 느끼는 류현진의 존재감은 더 커 보였다. 류현진은 14일 SK전 승리로 12승째를 따내며 다승 공동 선두에 올랐다. 평균자책(1.67)과 탈삼진(138개)도 1위다.

SK 김광현(22)과 KIA 양현종(22)도 좋은 왼손 투수인 것은 분명하다. 김광현은 류현진과 함께 12승으로 다승 공동 1위이고 양현종은 11승을 거뒀다. 이에 본보는 이들이 소속된 한화와 SK, KIA를 제외한 5개 구단의 대표 타자 10명(왼손 타자, 오른손 타자 한 명씩)에게 세 투수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결과는 류현진의 완승이었다.

○ 다승 - 평균자책 - 탈삼진 1위

질문을 받은 10명의 타자들은 모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류현진을 첫손에 꼽았다. 홈런과 타격 1위를 달리고 있는 롯데 이대호는 “볼 끝이 좋고 구질도 다양하다. 특히 체인지업은 알고도 못 친다. 타자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타격 기계로 불리는 두산 김현수는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체격도 크고 구위도 좋다. 그냥 마운드에 서 있는 자체가 타자를 압도한다”고 평했다. 삼성 채태인은 “도저히 단점을 찾을 수 없다. 전력투구를 하면서도 제구가 완벽하게 되니 타자는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같은 팀 박석민은 “못 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비운 채 타석에 들어선다”고 털어놨다. 1994년 입단한 베테랑 이숭용(넥센)은 “20년 가까이 야구를 하지만 대체 뭘 쳐야 될지 판단이 안 선다. 현역 최고의 투수가 아니라 역대 프로야구를 통틀어 최고의 투수다”라고 극찬했다.

○ 완급 조절과 명품 체인지업


류현진은 크게 직구와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네 가지의 구질로 던진다. 네 구질 모두 완벽하게 제구가 되면서 실투가 거의 없다. 모든 공에 자신감이 있으니 위기 상황에서만 전력투구를 한다. 매 경기 8이닝 정도를 소화해 내는 것도 이런 이유다.

LG 이병규는 “광현이나 현종이에 비해 완급 조절이 훨씬 뛰어나다. 체인지업이라는 결정구가 있으니까 볼 카운트가 몰리면 더욱 치기 힘들다”고 말했다. 삼성 채태인은 “현진이의 체인지업은 치면 헛스윙이고 안 치면 스트라이크다”라며 고개를 저었다.

마인드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숭용은 “보통 홈런을 맞고 나면 실투가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데 현진이는 점수를 내주면 더욱 집중해서 잘 던지니 타자들이 먹고살 게 없다”고 했다. 박석민도 “야수가 실책을 해도 인상 쓰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야수들이 더 노력하게 만든다”고 평가했다. 한 구단의 전력분석원은 “전력이 약한 한화 선수가 아니라면 20승도 거뜬할 것”이라고 말했다.

○ 슬라이더의 김광현, 직구의 양현종

류현진의 결정구가 체인지업이라면 김광현과 양현종은 각각 슬라이더와 직구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최고 시속 152km의 직구를 던지는 김광현은 141km에 이르는 빠른 슬라이더를 구사한다. 어지간한 투수의 직구 스피드다. 다만 주무기가 직구와 슬라이더 2개로 구종이 단조롭다는 게 약점으로 지적됐다. 양현종의 직구는 류현진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채태인은 “직구가 마치 바닥에 깔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 등 변화구가 약한 편이다. 10명의 타자들은 모두 “다른 두 명 모두 좋은 투수이지만 현진이에 비해서는 기복이 있고 실투도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 해외에서도 성공 예감

류현진이 아무 조건 없이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해서는 2014년까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벌써부터 류현진의 해외 진출설이 나올 정도로 그는 빼어난 구위를 보이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롯데 외국인 선수 카림 가르시아는 “동료 (라이언) 사도스키와 매일 하는 농담이 있다. 류현진과 김광현 중 누가 메이저리그에서 돈을 많이 받을까 하는 것”이라며 “굳이 한 명을 뽑는다면 류현진이다. 그 정도 완벽한 제구력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한다”고 말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3년간 뛰었던 이병규도 “세 명 모두 일본에서 충분히 통한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그렇게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괴물도 는 무서워한다

발 빠른 두산에는 힘 못써
데뷔이후 5승 7패 1세이브


5승 7패 1세이브에 평균자책 3.25.

지극히 평범한 성적이지만 이는 ‘괴물’ 류현진의 실제 기록이다. 류현진을 평범한 투수로 만들어 버린 팀은 다름 아닌 두산이다. 류현진은 2006년 데뷔한 뒤 두산을 상대로 통산 5승(7패 1세이브)밖에 거두지 못했다.

데뷔 첫해 2승을 거뒀을 뿐 지난해에는 1승 3패로 부진했다. 올해도 유일하게 두산을 상대로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4월 29일 경기에 등판해 8이닝 2실점으로 잘 던졌지만 패전의 멍에를 썼다.

가장 큰 이유는 두산 4번 타자 김동주 때문이다. 김동주는 “현진이는 스트라이크를 넣을 줄 알고 볼을 던질 줄 아는 좋은 투수이지만 개인적으론 그리 힘들지 않다”며 “다른 투수들과 달리 현진이는 정면 승부를 좋아하는데 나로선 나쁠 게 없다. 체인지업만 잘 골라낸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김동주는 올 시즌 류현진을 상대로 3타수 2안타를 친 것을 포함해 통산 상대 성적이 0.500(32타수 16안타)에 이른다. 홈런도 3개나 쳤다.

두산에 발 빠른 선수가 많다는 것도 류현진의 투구 리듬을 깨뜨리는 데 효과를 발휘한다. 몇 년 전 경기 1사 3루 상황에서 평범한 투수 앞 땅볼 때 3루 주자 이종욱이 홈으로 쇄도해 점수를 낸 적이 있다. 이후 류현진은 두산의 발 빠른 주자들이 나가기만 하면 견제구를 몇 개씩 던진다. 투구에 집중해야 하는데 주자에게 신경을 분산하다 보니 평소보다 실투가 많아지기 마련이다. 두산 관계자는 “우리 팀 선수들 중에는 류현진에게 자신감을 보이는 선수가 많다. 류현진도 못 넘을 산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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