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6월 26일, 잔뜩 찌푸린 날씨에 간간히 비 예보가 들리는 가운데 컬럼비아 필드테스터들은 예정대로 7시30분에 잠실역을 출발, 설악산 십이선녀탕계곡으로 향했다. 버스는 춘천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려, 오전 9시40분 내설악 인제군 북면 남교리에 도착했다.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경유해 접근하니 설악산도 한결 가까워졌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10시 산행에 들어갔다.
산행 코스는 십이선녀탕-대승령-장수대를 잇는 약12km의 거리다. 십이선녀탕계곡은 폭포와 탕(암반 계곡이 항아리처럼 파여 물이 고인 곳)이 어우러져 특이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담소들이 많아 주변 경관이 아주 뛰어난 곳이다. 십이선녀탕계곡이란 12선녀가 노닐었다는 얘기지 탕이 12개란 의미는 아니다. 실제론 8폭8탕이란 사람도 있고 5폭10탕이란 사람도 있다. 이것은 물이 많을 때와 적을 때, 암반을 흐르는 와폭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탕에 붙여진 이름도 애매하다. 첫탕을 독탕, 둘째를 북탕, 셋째가 무지개탕이라 하지만 옹탕, 음탕, 복숭아탕, 용탕, 막탕 등 이름은 있어도 그 위치가 확실치 않다. 다만 복숭아를 빼낸 모습의 복숭아탕과 그 위에 있는 용탕은 생김새와 웅장한 규모로 보아 확실한 명칭이라 하겠다. 복숭아 탕은 마치 선녀가 주저앉았다가 일어난 자리 같아서 학창시절 우리 산악부에선 일명 ‘히프탕’ 이라고 불렀다.
가파른 절벽엔 철제로 기둥을 세우고 목재 데크로 견고한 등산로를 조성했다. 걸으면서 계곡을 조망할 수 있어 편리하긴 하지만 십이선녀탕계곡의 산행 묘미인 수려하게 펼쳐진 계곡과 담소를 따라 오르는 ‘암반계곡 걷기’를 할 수 없어 아쉽다. 이 데크들은 2006년 7월 15일 설악산 일대를 급습한 집중호우의 피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설악산 일대 곳곳에 설치된 데크가 이때의 복구예산으로 설치된 것인데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데크를 제외하고는 설악산의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당시 설악산 일대는 상상을 초월하여 참담하게 파괴되어 차마 목불인견 이었다. 이훈태 회장, 국립공원설악산사무소장 등과 같이 파괴 현장을 취재했던 당시의 추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한계령을 넘는 도로와 교량이 처참하게 파괴되어 한계령으로의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언론사로는 처음으로 오색을 출발, 한계령-장수대-한계3리까지 25km를 걸어서 현장 취재를 하여 그 참담함을 사회에 알렸다. 당시 각 언론사, TV매체가 한계3리에 집결하여 취재 중이었지만 도로가 마디마디 끊기는 바람에 접근이 불가능 했었다. 십이선녀탕계곡도 당시에 큰 피해가 발생했다. 산사태로 인해 복숭아탕, 용탕 등에 흘러내린 돌들이 아직까지 모든 탕을 메우고 있었다.
치유되지 않은 그때의 상처가 여기저기에서 목격되었다. 소나무 껍질이 벗겨진 부위의 흔적은 당시 갑자기 불어난 계곡물이 얼마나 높이 차올랐던가를 나타내고 있었고, 맑고 깊었던 탕 안에는 돌멩이가 가득 채워져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재해도 자연현상의 일부이므로 치우지 않는다는 뜻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설악산 탕을 메운 돌멩이는 경관을 해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복구되어야 할 재해의 흔적이므로 치우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동을 받았던 절경은 사라지고 불쾌하기만 하다. 선녀탕이 아니라 돌탕이 돼버렸다.
정오가 되자 우리 일행은 비가 뿌리는 가운데, 복숭아탕 부근에 자리를 잡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처럼 불편한 바위 사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몇 몇 대원들은 가져온 펀초로 비를 막았고, 우산을 이용하기도 했고, 아니면 비를 그대로 맞으며 식사하는 모습이 태연자약하게 보이기도. 우중 점심식사를 끝내고, 출발에 앞서 대원들을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A팀은 예정대로 용탕, 두문폭포를 거쳐 대승령-대승폭포-장수대로 향했고, B팀 6명은 오던 길을 되돌아 남교리로 하산하기로 했다.
대승령에 오르는 등산로엔 한국 특산의 금마타리, 산꿩의다리, 다래, 산목련(함박꽃나무)이 얼굴을 드러내 보이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함박꽃나무는 전국의 산골짜기에 자라며 은은한 향이 향기롭다. 북한에서는 ‘목란’이라 부르며 그들 국화로 지정하고 있다. 흉하게 메워진 용탕을 지나 절벽 아래를 지나는데 만병초 꽃잎이 하나 떨어져 있다.
“왜 여기에 만병초 꽃이 떨어져 있지?” 하고 절벽 위를 유심히 살피니 과연 분홍색 만병초가 아름답게 피어있질 않는가! 진달래과 식물인 만병초는 지리산 이북의 높은 산에 드물게 자라는 상록 작은키나무다.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독성이 강하다. 연한 분홍색 또는 흰색 꽃을 피우는데 이날 우리는 만병초 꽃이 피는 시기가 잘 맞았는지 여러 개체를 보았고, 두 색의 꽃을 모두 보는 행운이 있었다. 오늘은 만병초 꽃을 본 것만으로도 흡족한 산행이다.
십이선녀탕계곡은 계류를 여러 번 횡단하면서 올라야하기 때문에 장마철엔 특히 주의를 요한다. 계곡이 끝나갈 무렵, 40년 전 내가 이 계곡을 처음 등반했을 때 비박했던 장소를 지나면서 바로 그 전 해의 카톨릭의대산악부 조난이 생각났다. 이들 산악부원 9명은 1968년 10월 23일 십이선녀탕 입구 남교리를 출발, 24일 비를 맞으며 막탕까지 도달했으나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추위에 떨며 하룻밤을 지샌 후 25일 하산을 시작했다. 체력 소모와 저체온증으로 리더가 먼저 쓰러지자 각자 하산을 시도하다가 4명이 사망, 3명은 실종되고 2명만 구조되었다. 지금도 말 없는 추모 비석만이 그때의 일을 생각나게 한다.
계곡을 뒤로하고 서북주능에서 응봉으로 갈라지는 능선에 올라서니 2시 30분이다. 조금 더 가서 서북주능선과 합류하는 안산 갈림길 삼거리에 도착했다. 1시간 정도 가니 대승령이다. 대승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안산이 나뉘는데 안산을 설악산의 일부로 볼것이냐, 아니면 별도의 산으로 볼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1578m인 귀떼기청봉은 봉이라 하고 이보다 낮은 1430m의 안산을 산이라 함을 볼 때, 별도의 산으로 봐야할 것이다. 안산 정상에서의 풍광은 가히 절경이다. 오늘 날씨가 좋았으면 안산을 거쳐서 대승령으로 올 생각이었는데 다음으로 미루었다.
대승령에서 4시경 출발하는데 장수대 쪽으로는 비가 오지 않았다. 장수대 건너 가리산과 주걱봉이 구름 사이로 들락거린다. 지루한 인공데크를 내려오는데 무릎이 몹시 아프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모두들 그렇단다. 5시에 대승폭포 전망대에 도착하여 폭포를 바라보니 물줄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 폭포는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유일하게 남한에 있는 폭포다. 수직낙차 88m의 대승폭포는 장마철에는 그야말로 장관인데 아쉽다. 끊어질듯 아파오는 무릎을 끌고서 장수대에 도착하니 B팀이 반갑게 맞아준다. B팀도 주변 관광을 하며 즐겁게 보낸 모양이다. 모두들 밝은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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