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칼럼]아픈 선수 리그 출전 못하게 선수-구단 변해야 신화 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3월 17일 03시 00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가시와 레이솔 시절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1년 앞둔 2001년 8월 왼쪽 정강이에 피로골절이 왔다. 2000년 시즌이 끝난 뒤 2001년 1월 거스 히딩크 감독이 부임하면서 대표팀 훈련을 바로 시작하는 바람에 제대로 쉬지 못해 생긴 부상이었다. 큰 통증은 없어 뛸 수도 있었지만 의사가 “쉬어야 한다”고 진단하자 구단은 훈련조차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약 3개월을 쉬었다. 그해 말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하게 돼 가시와엔 미안했지만 선수를 배려하는 가시와 구단의 원칙이 없었다면 이듬해 월드컵 출전은 불가능했을 수도 있었다.

과연 당시 국내에서 뛰었어도 이런 배려가 가능했을까. 당시만 해도 국내에선 ‘부상 중에 약을 먹고서라도 팀을 위해 뛴다’는 게 미덕인 시대였다.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되다 보니 구단과 지도자 측에서 보면 부상을 당했더라도 좋은 선수를 쓰고 싶어 한다. 선수로서도 주전 자리를 놓칠까봐 아픈 데도 출전을 자청하게 된다. 일부 감독은 “뛸 수 있는데도 안 뛴다”며 정신력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훈련과 경기 출전보다 휴식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통증을 참고 뛰면 선수 생명은 짧아진다. 이는 선수나 구단 모두에게 손해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관리에서 구단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2002년 때처럼 대표팀 훈련에만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비 대표 선수들은 구단 훈련과 리그 출전을 계속하다 본선 개막 한 달을 앞두고 소집된다. 결국 이번 월드컵의 성공 여부는 구단의 선수 관리에 달려 있는 셈이다. 구단들이 변해야 하는 이유다. 국가적인 대사인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국내 리그도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을 무리하게 투입하는 나쁜 관행을 버려야 한다. 남은 기간 대표급 선수의 부상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선수들도 변해야 한다. 아픈 데도 “괜찮습니다. 뛸 수 있어요”라고 하는 선수는 멍청이나 마찬가지다. 절대 참고 뛰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2001년 부상 당시 필자도 국내 분위기에 익숙해 있어 몸이 근질근질했던 기억이 있다. “뛸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했지만 구단의 강력한 반대로 쉬었다. 결과적으로 그때 휴식이 4강 신화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2001년 말 포항으로 돌아왔을 때 당시 최순호 감독도 큰 도움을 줬다. 부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안 됐지만 맏형으로서 후배들을 챙겨야 한다는 부담이 컸는데 “아픈 데 참고 하지 마라. 네가 알아서 몸 상태를 체크해 가면서 훈련해라”고 말씀해 한결 여유 있게 몸을 만들 수 있었다.

선수는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이다. 자기와 똑같은 인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멋진 플레이를 보이기 때문에 팬들이 월드컵에 열광하는 것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 작은 것을 탐하면 큰 것을 놓친다는 평범한 진리는 언제나 유효하다.

<홍명보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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