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김 패션쇼라도 나가 씨름 알리고 싶어”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 ‘재기와 씨름 중’ 이태현

10월 추석장사씨름대회를 며칠 앞둔 어느 날. 이태현(33·구미시체육회)의 부인 이윤정 씨는 네 살 된 아들 승준이에게 아빠 경기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승준이는 아빠를 한 번 쳐다보더니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 또 질 거잖아.”

모래판의 황태자로 불렸던 이태현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아빠가 제일 힘세잖아. 아빠가 이기는 모습 보여줄게”라며 아들을 꾀었다. 그래도 아들의 표정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아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버지의 심정은 비참했다.

승준이의 기억 속에는 화려했던 씨름왕 아빠의 모습은 없다. 지난해 말 씨름판 복귀를 선언한 이태현은 올해 추석대회 전까지 3개 대회에 출전했다. 1월 설날장사와 4월 용인체급별장사 대회에서 5품에 머물렀다. 6월 문경 대회에서는 예선 탈락의 수모를 겪었다. 한창 커가는 아들이 본 아빠는 사각의 링에서 펀치를 맞고 쓰러진 모습 그리고 모래판에서 자꾸만 무릎 꿇는 모습이었다.

이태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급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관중석은 “이태현”을 외치는 함성으로 가득했다. 승준이는 경기가 끝난 뒤 어디서 구해왔는지 아빠의 목에 줄을 걸어주며 “아빠 최고”라고 말했다.

승준이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누군가 이태현에게 사인을 부탁하면 괜히 아빠의 손을 잡아당기곤 했다. 하지만 추석 이후로는 아빠보다 앞서 걸으며 “씨름선수 이태현! 천하장사 이태현!”을 외친다.

천하장사 출신 감독은 유명
관중들 요즘 선수는 잘 몰라

가족 떠올리며 훈련 버텨
“내달 꼭 천하장사 등극”

‘돌아온 황태자’ 이태현이 다음 달 열리는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앞두고 구미시청 연습장에서 팀 동료 서강원을 모래판에 눕히고 있다. 구미=한우신 기자
‘돌아온 황태자’ 이태현이 다음 달 열리는 천하장사 씨름대회를 앞두고 구미시청 연습장에서 팀 동료 서강원을 모래판에 눕히고 있다. 구미=한우신 기자
이태현에게 가족은 씨름을 하는 이유다. 지난해 11월 복귀를 선언한 뒤 고된 훈련을 견딘 것도 가족이 눈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그는 예전에 비해 체격, 체력 모든 게 부족했다. 어린 선수들에게 밀려 쓰러질 때면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다. 함께 복귀했던 전 천하장사 김경수는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설날대회에만 출전한 뒤 다시 모래판을 떠났다.

이태현은 흔들릴 때마다 가족을 생각했다. 그는 내년 2월에 태어나는 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한 방울의 땀이라도 더 흘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예전에는 대회가 끝나면 며칠씩 쉬곤 했지만 올해는 추석대회 직후에도 산을 오르내리며 몸만들기를 계속했다.

17일 경북 구미시 사곡동 구미시청 씨름연습장에서 만난 이태현은 전성기에 비해 70% 정도 몸이라고 했다. 9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윤정수 유승록 등 160kg이 넘는 후배들을 상대하기 위해 체중을 140kg대 중반으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체력 훈련과 함께 다양한 기술 연마에도 힘쓰고 있다. 그는 “무거운 선수들은 많은 움직임과 기술로 꺾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현은 씨름의 열악한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과거와 달리 체급별 우승자를 알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복귀한 이태현을 알아보는 경우가 더 많다. 천하장사 출신 감독은 알아봐도 소속 선수가 누군지는 모르는 게 한국 씨름의 현실이다.

이태현은 씨름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각오로 씨름판에 돌아왔다. 씨름의 인기를 되찾기 위해 선수들이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고 평소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주목을 끌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씨름 선수들이 패션쇼에 서도 재밌을 것 같다. 앙드레 김 선생님을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며 웃었다.

그는 다음 달 7∼13일 경주에서 천하장사에 오르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은퇴 전에 이만기 인제대 교수와 함께 갖고 있는 최다 백두장사(18회) 기록을 깨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태현은 “주위에서 새로운 목표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분이 많다”며 “씨름에 많은 지원을 해준 남유진 구미시장께 감사드린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구미=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 이태현은 누구?

△1976년 1월 17일 경북 김천 출생
△키 196cm, 몸무게 141kg
△구미초교 - 의성중 - 의성고 - 용인대 대학원 체육교육학 박사
△경력: 1993년 청구씨름단 입단. 천하장사 3회(1994, 2000, 2002년), 백두장사 18회, 2006년 7월 종합격투기 진출(1승 2패), 2008년 11월 씨름판 복귀 선언. 2009년 10월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급 준우승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