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의 가을이야기] “가을악몽서 가을잔치로”…이승화의 새옹지마

  • 입력 2009년 10월 1일 0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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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시작되는 ‘가을 야구’였습니다. 지난해 10월. 온 부산이 축제 분위기 속에 들썩였죠. 사직구장을 가득 메운 관중과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부산 갈매기’. 롯데 이승화(27·사진)의 가슴도 함께 뛰었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2001년에 입단한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설렘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 하던 선발 출장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계속 꿈꿔왔던 기회였어요. 그런데….” 여기서부터 말끝이 잦아듭니다.

3회초였습니다. 삼성 박한이의 타구가 큰 포물선을 그리며 머리 뒤로 날아왔습니다. 득달같이 달려가 타구를 잡으려고 뛰어올랐는데, 눈앞이 아찔해옵니다. 펜스에 부딪친 겁니다. 시큰거리는 왼쪽 발목. ‘이제 아웃카운트 하나만 잡아내면 첫 타석이 돌아오는데….’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듭니다. 결국 부축을 받으며 그라운드를 떠납니다. 그리고 지켜봅니다. 중견수가 교체되고 자신의 차례에 대타가 들어서는 모습을. “마음이 너무 안 좋았어요. 진심으로 뛰고 싶었거든요.” 그러면서도 그는 그 때 “플레이오프를 준비하겠다”고 했었습니다. 목발을 짚은 채로, 그리고 농담 속에 간절함을 담아서 말입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준플레이오프. 이번엔 잠실입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기 전 라인업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쥡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선발 2번 중견수, 이승화입니다.

늘 밟던 외야의 푸른 잔디마저 느낌이 남다릅니다. 어깨엔 힘이 들어가고, 헛스윙을 연발하기도 합니다. “앞뒤에서 다들 잘 하니까 저도 잘 하고 싶어가지고…. 없던 욕심이 자꾸 생기네요.” 배시시 웃으며 털어놓는 속마음입니다. 다행히 도전정신이 앞섭니다. 롯데에겐 ‘한’으로 남았던 지난해의 가을잔치. 직접 뛴 선수들이 몸으로 경험했다면, 이승화는 눈과 귀와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하루가 지났습니다. 2차전입니다. 다시 라인업을 훑어봅니다. 선발 2번 중견수. 오늘도 이승화입니다. 이래서 인생은 살 만한가 봅니다. 야구선수 이승화는 또다시 가을의 열기가 물씬 느껴지는 그라운드로 달려 나갑니다.

살아온 인생도, 걸어온 야구인생도 순탄하지는 못 했지만 그는 이렇게 생각한답니다. “인생은 어렵지만 살 만하고, 야구도 어렵지만 잘 선택한 것 같아요. 곧 저도 팀에 도움이 되는 날이 오겠죠.”

잠실|스포츠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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