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 걸’ 김자인 “아시아가 좁다”

  • 입력 2009년 8월 28일 20시 25분


춘천국제레저PRE경기가 열린 26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인공암벽경기장. 자그마한 체격의 한 여성이 몸을 풀더니 자일(등산에 사용되는 줄)에 몸을 묶고 인공 암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구경하던 100여명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됐다. 외국 선수들도 "Go! Go!"라고 외치며 응원했다.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그에게 아시아 무대는 좁다"고 말했다. 여성 스포츠클라이머(인공암벽등반가) 김자인(21·고려대) 얘기다. 그는 현재 아시아 1위, 세계 3위의 정상급 선수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월드컵에서 메달을 땄고 올해 세계선수권서는 준우승을 차지했다. 빼어난 실력과 귀여운 외모까지 갖춰 클라이밍계의 김연아(19·고려대)로 불린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한 말레이시아 선수는 "외국에도 김자인의 팬이 많다. 선수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전했다.

김자인의 뛰어난 실력은 타고났다. 가족 모두가 스포츠 클라이머다. 어머니 이승형 씨(51)는 대한산악연맹 심판이고 오빠인 자하(25·노스페이스), 자비(23·군인)는 현역 클라이머다. 아버지 김학은 씨(53)도 클라이밍 마니아다.

김자인의 부모님은 산에서 만나 결혼했다. 자하는 2년 전 대한산악연맹 직원과 결혼했다. 자하, 자비, 자인의 돌림자인 '자'는 '자일'의 첫 글자다. 김자인의 '인'자는 인수봉을 뜻한다고 했다. 자하의 두 살 난 아들도 이름이 '락(Rock·바위)'이다.

김자인은 "가족이 모일 때면 클라이밍 관련 얘기만 한다"며 웃었다. 이들 가족은 자비가 군에서 제대하는 11월 태국으로 클라이밍 여행을 계획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승형 씨는 "큰 아들이 클라이밍을 시작한 뒤 자빈과 자인이는 공부를 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함께 클라이밍을 하는 게 즐겁기만 하다"고 말했다.

김자인은 한 때 클라이밍을 한 것을 후회한 적도 있다. "사춘기 때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클라이밍을 하면서 넓어진 어깨 때문에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많이 받았거든요. 왜 나는 여자다워 보이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죠."

김자인은 산악인 고(故) 고미영 씨와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가 중학생일 때 일반부 경기에 나서자 주위에서는 '건방지다'는 말이 나왔다. 이때 고 씨가 그를 감싸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국내 1인자였던 고 씨는 2004년 김자인에게 1위 자리를 내주었을 때도 "드디어 나를 넘어섰구나"라며 축하해줬다.

김자인은 "미영이 언니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듯 후배 클라이머에게 힘이 되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춘천=김동욱기자 creating@donga.com

▽김자인은 누구?

△생년월일=1988년 9월 11일 △학력=일산동중-일산동고-고려대 체육교육학과 3학년 재학 중 △키 153cm, 몸무게 45kg △혈액형=A형 △취미=클라이밍 △주요 경력=2002년 아시아 주니어 X게임 우승, 아시아 유스챔피언십 우승, 2003~2009년 노스페이스컵 스포츠클라이밍대회 우승, 2004~2008년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IFSC) 아시아 챔피언십 우승, 2007년 IFSC 클라이밍 월드컵 3위, 2009년 IFSC 클라이밍 월드컵 2위, 세계선수권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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