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티시오픈이 낳은 2009 명승부] 왓슨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투혼

  • 입력 2009년 7월 20일 08시 42분


1977년, 스코틀랜드 턴베리에서 ‘일요일의 결투’가 벌어졌다.

톰 왓슨이 당대 최고의 스타 잭 니클로스(이상 미국)를 상대로 브리티시오픈 역사상 가장 멋진 명승부를 연출했다.

3라운드까지 나란히 68-70-65타를 기록하며 공동 선두를 달린 두 사람은 최종 라운드 마지막 18번홀에서 운명이 갈렸다. 왓슨이 버디 퍼트를 성공시키며 니클로스의 세 번째 브리티시오픈 제패에 제동을 걸었다.

이들이 펼친 승부는 뒷날 ‘일요일의 결투’로 불렸고, 149년 역사의 브리티시오픈에서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9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에어셔의 턴베리 골프장에서 열린 제138회 브리티시오픈(총상금 830만 달러)에서 또 한번의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주인공은 이번에도 톰 왓슨이다.

우리 나이로 환갑인 베테랑 톰 왓슨(59세 10개월 15일)이 3라운드까지 4언더파 206타로 1타차 단독 선두에 나서는 맹활약을 펼쳤다. 쭈글쭈글한 얼굴에 자그마한 체구. 선하게 생긴 할아버지가 거친 바람을 뚫고 또박또박 공을 치며 보여주는 활약은 누가 봐도 놀랄 일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도 턴베리에 무릎을 꿇고 중도 탈락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간 마당에 노장의 활약은 상상 이상이다. 그는 1970∼80년대 세계 골프계를 풍미한 역사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잭 니클로스, 아널드 파머, 리 트레비노(미국), 개리 플레이어(남아공) 등과 함께 PGA 투어를 주름잡았다.

1971년 프로에 입문한 왓슨은 1974년 웨스턴오픈을 시작으로, 1998년 마스터카드 콜로니얼 우승까지 통산 39승을 거머쥐었다. 1999년부터 챔피언스 투어(시니어투어)로 무대를 옮긴 왓슨은 통산 12승을 기록 중이다.

1978년부터 1982년까지 세계랭킹 1위를 지켜왔고, 5차례 상금왕과 6차례 ‘올해의 선수’에 뽑히는 등 당대 최고의 골퍼로 명성을 날렸다.

그렇지만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었다. 왓슨도 차오르는 후배들에게 밀려 이제는 추억속의 스타로 사라져가던 중이지만 올해 기적을 만들고 있다. 도박사는 물론 전 세계 골프팬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왓슨의 질주 뒤엔 경험이 숨어 있다. 8차례 메이저대회 우승 기록을 갖고 있는 왓슨은 브리티시오픈에서만 5차례 우승을 차지한 베테랑이다. 1975년 첫 우승을 차지한 이후, 1977년 니클로스를 제물로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1980년과 1982년, 1983년까지 총 5차례 클라렛저그를 품에 안았다.

그의 이름 앞에 ‘최고의 링크스 플레이어’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타이거 우즈도 3차례 브리티시오픈 우승 경험을 갖고 있지만 이번에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바로 나이가 주는 지혜의 차이다.

왓슨은 날씨가 화창했던 이번 대회 첫날에만 5타를 줄였다. 보기 없이 버디만 5개 골라냈다. 드라이브 샷 거리도 짧고, 아이언 샷에 힘이 실려 있지도 않았지만 정확하게 쳤다. 우즈는 코스를 상대로 이기려고 했지만 왓슨은 코스를 달래가며 많은 장애물을 친구처럼 다뤘다.

우즈는 2라운드까지 보기 7개에 더블보기 2개를 쏟아내고 컷 탈락했다. 2라운드에서 강한 바람을 이기려는 무리한 공략을 시도하다 스스로 무너졌다. 반면 왓슨은 2라운드부터 바람이 많이 불자 방어적인 플레이로 전략을 바꿨다. 그 결과 2,3라운드를 1오버파로 막아내며 단독 선두까지 올라섰다.

왓슨은 3라운드가 끝난 뒤 “사람들이 첫날 65타에 깜짝 놀라고, 둘째 날은 그런가보다고 생각하더니, 3라운드가 끝나자 우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겠나. 샷 감각이 좋고, 모든 샷이 계획대로 되고 있다.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역사적인 기록 탄생을 시사했다. 만일 왓슨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할 경우, 142년 만에 이 대회 최고령 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게 된다. 지금까지 최고령 우승은 1867년 톰 모리스(스코틀랜드)가 세운 46세99일이다. 특이한 점은 모리스의 아들 모리스 주니어가 이듬해인 1868년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기록(17세5개월8일)을 세웠다. 부자가 최고령과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운 것이다.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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