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WBC 스펙트럼] 장관님, 야구장 화장실 가보셨나요?

  • 입력 2009년 3월 20일 07시 58분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이 18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진출을 확정했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에 이어 야구대표팀의 선전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저력을 또한번 일깨워주고, 목표를 갖고 도전하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줬습니다.

4강을 확정한 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김인식 감독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고 하더군요.

유 장관은 “일본을 이기고 4강에 올라 정말 통쾌하다.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야구대표팀이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줬다”며 감사의 뜻을 전한 뒤 “남은 경기에서도 최선을 다해 더 좋은 성과를 올려주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답니다.

물론 관심의 눈길조차 보내지 않는 것보다야 백번, 천번 좋은 일이겠지만 이번에는 과거처럼 시류에 편승한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유 장관의 말처럼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야구대표팀이 이번에도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전해줬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를 위해 가슴에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고 혼신의 힘을 다해 싸운 태극전사들에게 국가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대한민국의 야구는 열악한 조건을 딛고 4강의 신화를 썼습니다. 고교야구팀만 비교해 50여개에 불과한 한국이 4000개가 넘는 일본을 꺾은 것은 어쩌면 기적에 가깝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의 야구장 시설은 일본의 그것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라운드는 낡을 대로 낡았고, 관중석은 허물어질 지경입니다.

펫코파크에 선 우리 선수들은 메이저리그 선수처럼 멋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선수들이 한국에서는 라커룸도 없이 복도에서, 화장실에서 유니폼을 갈아입습니다. 팬들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수십 미터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셨는지요.

지난해에만 500만명의 국민들이 프로야구를 즐겼습니다. 선수는 부상 위험이 도사리는 그라운드에서 기량을 갈고닦고, 국민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야구장을 찾아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이번 WBC 4강신화는 그런 악조건 속에서 달성된 것입니다.

정부는 4대강 정비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고용이 창출되고 어마어마한 부가가치가 파생된다고 역설합니다.

그럴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야구장 정비사업은 어떨까요. 고용이 창출되고 부가가치가 생산되는 사업이 아닌가요?

야구선수와 야구팬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세계적 기량을 갖춘 우리 선수들이 신명나게 플레이를 하고, 5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이 즐겁게 야구를 관람할 수 있도록 야구장 정비사업을 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일일까요.

야구는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데 그 인프라는 여전히 새마을 운동 시대에 머물고 있습니다.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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