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한일전 짜릿한 ‘8회의 기적’

  • 입력 2009년 3월 2일 14시 05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국제 대회에 출전하는 한국 국가대표 선수의 가슴속에는 일본만은 꼭 이기겠다는 굳은 의지가 새겨져있다.

이는 제 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이하 WBC)에 출전하게 될 한국 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금메달의 영광’을 안았던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 우승 주역들도 “일본만은 꼭 이기고 싶었다. 그 목표를 이뤄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다” 라는 말을 했을 정도로 일본은 우리가 꼭 꺾어야만 할 상대이다.

제 2회 WBC에 출전하게 된 대한민국 야구 국가 대표팀은 3월 6일 비교적 상대하기 쉬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대만과 1차전을 갖은 뒤, 7일 일본(일본이 중국에게 승리할 경우)과 예선 두 번째 경기를 치르게 된다.

일본은 객관적인 전력과 저변 등에서 분명 우리보다 한 수 위로 평가받고 있다. 추신수를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출신이 전무한 대한한국 국가대표팀에 비해 일본은 이치로, 마쓰자카, 후쿠도메 등 빅 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선수들을 라인업에 포진시켰다.

하지만 라이벌간의 경기는 객관적인 전력대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 특히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는 지난 1982년 이래 20년 넘게 이어온 ‘8회의 기적’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게도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본다.

한국야구대표팀을 둘러 싸고 있는 ‘8회의 기적’. 잠시 행복했던 그 순간을 되돌아보자.

한국에게는 천사의 손짓과도 같았던 8회의 기적은 1982년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으로 펼쳐졌다.

세계선수권 우승을 놓고 최종전에서 일본과 한판 대결을 펼쳤던 한국은 ‘국보급 투수’ 선동렬을 등판 시키고도 7회까지 일본 선발 스즈키의 역투에 밀려 패색이 짙었다. 하지만 8회가 되자 한국 타선은 일본의 마운드를 공략하기 시작했고, 2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야구 명장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쓰리런 홈런에 힘입어 사상 첫 야구 세계선수권을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렇게 시작된 8회의 기적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이승엽에 의해 재현됐다.

동메달을 놓고 일본과 운명의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된 대한민국 대표팀은 일본 킬러로 군림해온 구대성의 무실점 호투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괴물투수’ 마쓰자카의 역투에 밀려 7회까지 무득점에 그치며 0-0의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8회 말 공격에서 2사 2,3루의 찬스를 잡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은 앞서 세 차례나 삼진을 당했을 정도로 마쓰자카의 공에 약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앞선 세 타석 모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는 자만심 때문이었을까? 마쓰자카는 무모한 직구 승부를 계속했고, 이승엽은 6구를 통타해 좌중간을 가르는 2타점 적시타를 터뜨렸다. 후속 타자의 안타로 한 점을 더 보탠 대한민국은 9회 초 일본의 반격을 1점으로 틀어 막아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동메달의 영광을 차지했다.

2006년 제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8회의 기적은 우리대표팀을 도왔다.

지역 예선 첫 대결에서 한국은 이진영의 호수비에도 7회까지 1-2로 끌려가며 패색이 짙었다. 더구나 경기가 열리는 구장이 일본 야구의 성지라 불리는 도쿄돔이었기에 한국이 역전승을 거둘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하지만 시드니에서 마쓰자카의 공을 받아쳐 동메달을 안겨준 이승엽은 8회초 공격에서 우측 담장을 넘기는 극적인 역전 투런 아치를 그려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다.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의 기적은 한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본선 8강에서 다시 일본과 맞붙게 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은 7회까지 0-0의 팽팽한 균형을 이뤘다. 당시 대표팀에는 철벽 마무리 오승환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한 점만 얻더라도 승리를 거둘 수 있던 상황.

1사 2,3루의 황금 찬스를 잡은 대한민국의 타석에는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등장했고, 마운드에는 일본이 자랑하는 마무리 투수 후지카와가 버티고 있었다. 이종범은 전성기가 지난 상황이었고, 후지카와는 빠른공과 포크볼이 위력적인 투수였기 때문에 스퀴즈 번트를 통한 짜내기 야구를 할 법도 한 상황에서 이종범은 좌중간을 가르는 통렬한 2타점 적시타를 때려냈고, 한국과 일본의 야구 경기에서 나타나는 ‘8회의 사건’은 한국에게 승리를 일본에게 패배를 안겨주는 하나의 공식처럼 되어버렸다.

‘8회 득점=일본 전 승리’ 이러한 ‘8회의 기적’이 절정을 이룬 것은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일본과의 준결승 경기였다.

초반 수비 실수와 新 일본 킬러로 등장한 김광현이 아오키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으며 0-2로 끌려갔을 때만 해도 한국에겐 승산이 적어 보였다. 하지만, 7회 공격에서 대타로 나선 이진영이 2006 WBC에서 이종범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은 후지카와를 상대로 1-2루 간을 통과하는 동점 적시타를 날렸고, 이후 경기의 분위기는 한국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무언가 터질 것만 같은 운명의 8회. 2-2 동점 상황에서 일본의 호시노 감독은 애제자라 할 수 있는 이와세를 마운드에 올렸다. 후일 우리 선수들의 인터뷰에서 밝혀졌지만, 한국 타자들은 이미 이와세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위축되지 않게 배팅을 할 수 있었다.

이용규가 3-유간을 통과하는 좌전 안타를 때려내 1사 1루의 찬스를 잡은 한국은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던 이승엽을 교체하지 않고 그대로 타석에 올려 보냈다. ‘국민타자’의 명예로운 애칭을 갖고 있던 이승엽 이지만 손 부상 때문에 배트를 제대로 휘두르기 조차 버거웠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할 수 없었던 상황.

하지만 이승엽은 이와세의 몸쪽 공을 받아쳐 우측 펜스 쪽으로 큰 타구를 때렸고, 잡힐 것만 같았던 타구는 일장기를 들고 일본을 응원하던 관중이 있는 곳에 떨어져 역전 투런홈런이 됐다. 이후 타선이 살아난 대한민국은 고영민과 강민호의 2루타에 힘입어 스코어를 6-2까지 벌리며 2년 전 1회 WBC 4강전에서 패배했던 아픔을 통쾌하게 설욕하는데 성공했다.

야구 계에는 ‘야구는 9회말 투 아웃부터’ 라는 명언이 있지만, 이쯤 되면 한일전에서 만큼은 ‘야구는 8회부터’라는 말이 어울릴법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야구팬들은 3월 7일에 있을 제 2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일전에서도 8회의 기적을 기대하고 있다.

27년 전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역전 쓰리런 홈런으로부터 시작된 8회의 기적은 한국 대표팀이 ‘일본에게 만큼은 질 수 없다’ 라는 정신력을 갖고 있는 한 언제 어디서든 발휘 될 것이다.

-엠엘비파크 조성운 기자

[화보]승리를 위한 첫걸음! WBC 대표팀 도쿄입성 현장

[관련기사]추신수 “홈런 욕심보다 타점에 중점”

[관련기사]김광현 “몸상태 최고, 日반드시 잡는다”

[관련기사]김인식 감독 日 공략해법 “이치로-아오키 봉쇄하라”

[관련기사]도쿄 입성 류현진 “선취점 절대 내주지 않겠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