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 기자의 가을이야기] 삼성 곽동훈의 해뜰날

  • 입력 2008년 10월 11일 08시 10분


“지금은 베팅볼 던지지만 내이름 석자 언젠간 뜬다”

“포스트시즌 때 네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삼성 김태한 투수코치는 이렇게 말하면서 곽동훈(27)의 눈을 피했습니다. 엔트리에 들지 못한 곽동훈이 줄 수 있는 ‘도움’이란 하나뿐입니다. 타자들을 위해 배팅볼을 던져주는 것.

섭섭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불과 3개월이었지만, 그도 1군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던 투수니까요. 엔트리에서 탈락한 아쉬움에 배팅볼 투수가 된 서러움까지 겹겹이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미안해하는 김 코치를 향해 애써 “괜찮습니다” 하며 웃습니다. ‘한 때는 이런 일조차 상상할 수 없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부산공고를 졸업하던 2000년, 프로에도 대학에도 그의 자리는 없었습니다. 1년 간 야구를 쉬면서 월급 70만원을 받고 주유소에서 일했습니다. ‘앞으로 뭘 해서 먹고 사나.’ 고민하는 아들에게 어머니 김점순(53) 씨가 말했습니다. “대학 졸업장은 따야하지 않겠나. 뒷바라지는 다 해줄게.”

지인의 소개로 대불대를 찾아갔습니다. 마지막 4년이라 생각하니 소원은 풀고 싶었습니다. “야수 말고 투수를 하고 싶습니다.”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힘들 땐 생선을 팔아 아들의 등록금과 야구장비를 대주는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지성이면 감천. 그는 결국 삼성 스카우트의 눈에 띕니다. 2차 5번으로 지명 받던 날, 아버지 곽해석(55) 씨는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그나마 계약금 5000만원 중 3500만원은 병역비리로 고스란히 날렸습니다. 집에 돈조차 많이 못 드린 건 아직도 속이 상합니다. 그래도 현역 포병 생활을 묵묵히 견뎌낸 아들을 부모는 여전히 대견해합니다. 그래서 곽동훈은 꿈을 꿉니다. 이름 석 자를 세상에 알리는 그 날을요. 부모님이 ‘우리 아들이 곽동훈’이라고 자랑했을 때 누구나 ‘아, 그 삼성 투수?’라고 말하는 날이 온다면 그걸로 만족한답니다.

곽동훈의 배팅볼로 훈련한 삼성 타선은 준PO 1·2차전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았습니다. 벤치에서 지켜보는 그의 입가에도 슬며시 미소가 번집니다. “팀이 이기니까 기분 좋고, 타자들이 잘 쳐서 이기니까 더 뿌듯하고….” 뿌듯해 할 자격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을잔치는 직접 뛰는 선수들만의 것이 아니니까요.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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