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조성환 “믿음엔 믿음으로 때려서 다 갚는다”

  • 입력 2008년 9월 24일 08시 48분


롯데 주장 조성환(32)은 “이 인터뷰의 주제는 결국 ‘믿음’이라는 단어 하나”라고 스스로 정리했다.

가족의 믿음과 코칭스태프의 믿음이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고 여러 번 강조한 참이었다.

2차 8번으로 간신히 롯데에 입단한 그가 2003년 첫 3할을 치며 날아오르기까지, 또 병역비리에 연루돼 6개월 복역한뒤 공익근무를 마친 그가 3년 공백을 딛고 롯데의 주축으로 자리 잡기까지, 그를 지탱해온 건 바로 ‘믿음’덕분에 생겨난 의지였다.

○3년 전 아픔 딛고 ‘사직 영웅’으로 우뚝

조성환은 3년 전 감옥에 있었다. 2001년 결혼한 아내 박안나(32) 씨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들 영준(6), 그리고 모처럼 내 것이 된 그라운드. 떠나기 싫다는 절박한 마음이 순간적인 실수를 불러왔고, 그 대가는 너무 썼다. 하루하루 암담한 나날들. 아들의 얼굴이 꿈에서도 그리웠지만 “우리 아이는 경찰서나 교도소 근처에 얼씬도 해선 안 된다”며 절대 오지 못하게 했다. 대신 그는 마음을 다해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아내를 울리고, 부모를 울리고, 롯데를 울렸다.

“한편으로는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또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야구를 할 수만 있다면 후회 없이 모든 걸 쏟아내고 유니폼을 벗겠다는 각오가 있었어요.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날 믿고 기다려준 가족을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살겠다고요.”

그로부터 3년 후. 그는 다시 그라운드에 섰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3만 관중의 합창. ‘롯데 조! 성! 환! 오오오 오오오∼.’ 그는 “사직구장에 ‘내 노래’가 울려 퍼질 때 타석에 서 있는 그 기분은 당사자가 아니면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믿음’ 속에 성공한 첫 3할

학창시절 그는 몸이 약한 선수였다. 웬만한 프로 선수는 한번씩 해봤다는 국가대표 경험도 없다. 원광대를 졸업하면서 롯데에 지명됐을 때는 스스로도 의아했을 정도. 하지만 그가 데뷔하던 1999년의 롯데에는 박정태, 공필성 등 허슬플레이로 유명한 선배들이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1군에 머문 단 열흘 동안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나도 2군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유명한 스타들이 야간 경기가 끝나고 개인 훈련을 또 하는 거예요.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고 나를 채찍질했죠.”

주전으로 자리 잡는 건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네 시즌이 흐른 2003년에야 마침내 1군 붙박이가 됐다. 당시 코칭스태프는 조성환을 ‘발만 빠른 선수’가 아닌 ‘타격도 잘 할 수 있는 선수’로 분류했다. “그 때 처음 알았어요.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생기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걸.” 조성환은 타율 0.307로 시즌을 끝냈다. 팔꿈치 부상과 병역비리가 발목을 잡기 직전이었다.

○새 몸, 새 마음으로 다시 ‘스타트’

롯데는 3년 간 조성환을 기다려줬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보장하진 않았다. 전역을 앞둔 조성환에게 전달된 유니폼 뒷면에는 등번호가 없었다. 이름 석 자만 덩그러니 박힌 유니폼. 멍하니 바라보던 그는 문득 현실을 깨달았다. 한 때 잘 나가는 선수였다는 자존심은 거기서 모두 버렸다.

그래도 빛은 보였다. 아껴둔 휴가를 모아 간신히 참가했던 마무리 훈련. 공도 안 보이고, 몸도 무겁고, 발마저 느려진 듯 했다. 그 때 김무관 타격코치가 그를 불렀다. “네가 너 자신을 얼마나 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너를 안다. 내가 너를 기억한다. 날 믿어봐라.” 가슴이 뭉클했다. 그래서 믿었다. 한 때 3할을 쳤던 30대 타자가 타격폼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토 한번 달지 않고 김 코치가 하자는 대로 했다. 서로 마음을 연 코치와 선수.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가 따랐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해결사’

주변에서 3년 공백을 건너뛴 비결을 물을 때면 그는 “남들보다 더 절박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대답한다. 공익근무 시절, 퇴근 후에는 야구를 보는 게 일과였다. 사직구장 관중석에 몸을 묻은 채 새로운 등장한 투수들을 거듭 연구했다. 약하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 죽도록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체격이 커지고 장타가 늘어난 건 그 때 파워를 키운 덕분이다.

믿음이 조성환을 살렸듯, 그도 동료들을 믿고 뛴다. “이대호-가르시아-강민호가 뒤에 있는데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마음 편히 치고 달리다보니 성적은 점점 좋아졌다. 올 시즌 타격 4위(0.326)에 최다안타 2위(142개). 도루(29개)와 타점(78점)은 각각 6위다. 그는 또 팀 내에서 가장 많은 결승타(14개)를 때려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성과 하나. ‘군기반장’이 돌아온 롯데는 8년 만에 4강을 확정했다.

사직 |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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