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 은 색깔 바꾼 ‘1mm’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박경모가 15일 베이징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신중하게 시위를 놓은 뒤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을 좇고 있다. 박경모는 결승에 올라 이 종목에서 한국의 사상 첫 금메달을 노렸으나 아쉽게 1점 차로 은메달에 그쳤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박경모가 15일 베이징 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신중하게 시위를 놓은 뒤 날아가는 화살의 궤적을 좇고 있다. 박경모는 결승에 올라 이 종목에서 한국의 사상 첫 금메달을 노렸으나 아쉽게 1점 차로 은메달에 그쳤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 박경모, 남자양궁 개인전 1점차로 은메달

‘1mm 차’가 메달 색깔을 바꿔놓았다.

한국 남자 양궁 대표팀의 맏형 박경모(33)가 15일 베이징 올림픽삼림공원 양궁경기장에서 열린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에게 112-113(120점 만점)으로 졌다. 전날 여자 개인 결승전에서 박성현(25)이 장쥐안쥐안(중국)에게 1점차로 진 데 이은 은메달이다. 이로써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남녀 양궁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놓쳤다.

○ 8점짜리 한 발로 놓친 금메달

11번째 화살이 문제였다. 95-94로 앞선 4엔드 두 번째 활시위에서 루반은 9점을 쐈고 박경모가 쏜 화살은 8점과 9점 경계에 꽂혔다. 장내 아나운서는 “8점 혹은 9점으로 경기가 끝난 후 확인한다”고 말했다.

화살 12발을 모두 쏜 상황에서 루반은 113점, 박경모는 112점. 그러나 경기 직후 심판들이 박경모의 표적을 조사한 결과는 8점. 9점에 1mm 남짓 모자라 금메달을 놓치는 순간이었다.

박경모는 “하늘이 금메달을 점찍었다가 말았다”며 “아버지 생전에 한 개인전 금메달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했다.

충북 옥천 이원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한 그는 이번 대회를 끝으로 은퇴할 예정이다. 2001년과 2003, 2005년 세계선수권 단체전 우승에 이어 올림픽 양궁 단체전 3연패를 이끌었지만 베이징 올림픽 개인전에서 은메달에 머문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선수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금메달리스트를 키우는 게 그의 바람이다.

○ 남자 양궁 개인전 올림픽 수난사

양궁 남자 개인전은 올림픽에서 한 번도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여자 양궁이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서향순부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박성현까지 개인전 6연패를 하는 동안 남자 양궁은 정상 주변만 맴돌았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인전에서 박성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정재헌이 은메달을 딴 게 최고 성적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오교문이 동메달을 딴 뒤에는 메달권에서마저 멀어졌다.

그나마 박경모가 베이징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면서 12년 만에 개인전 노메달의 한은 풀었다.

○ 남자 양궁, 굳은 심지를 키워라

박경모는 전날 64강전부터 이날 결승까지 6명과 대결을 했다. 그는 “보는 사람은 즐겁지만 활을 쏘는 사람은 피가 마른다”고 털어놓았다.

“결승전에서 루반이 먼저 활시위를 당기는 게 부담스러웠다. 상대방이 먼저 10점과 9점을 맞히면서 조급해졌다. 10점을 쏴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잠시 집중력을 놓친 게 8점이 됐다.”

결정적인 순간에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게 남자 양궁의 고질병이다.

양궁 남자 대표팀은 그동안 강심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특수부대에서 극기 훈련,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는 담력 훈련, 소음 견디기 훈련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우승후보 1순위였던 세계랭킹 1위 임동현(22)과 이창환(26)이 16강에서 탈락했다.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압박감을 이기지 못한 탓이다.

남자 양궁 장영술 대표팀 감독은 “남자 양궁은 한국과 미국 우크라이나 등이 실력차가 거의 없다”며 “심리훈련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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