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궁후배 응원하러 런던서 왔어요”

  • 입력 2008년 8월 9일 03시 01분


양궁 국제심판 박영숙 씨

“임대 아파트 구해 3주간 봉사활동”

중국 베이징 올림픽삼림공원 양궁경기장 옆 기자실. 곱상한 얼굴의 한 동양 여성이 “안녕하세요”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양궁 국제심판 박영숙(49) 씨는 자원봉사자 옷을 입고 있었다. 심판이 아닌 통역 자원봉사를 위해 베이징에 머물고 있는 것. 하루 12시간씩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통역을 하는 고된 일과임에도 표정은 밝았다. 다양한 나라의 양궁인을 만나고 한국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는 보람이 크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난해 12월부터 영국 런던의 아트런던대에서 어학연수를 해 왔다. 이 학교는 12주 공부를 해야 일주일 휴가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3주간의 올림픽 자원봉사를 위해 지난 8개월간 휴가 없이 공부를 계속했다.

“올림픽 자원봉사를 하며 한국양궁대표팀에 작은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자비를 들여 베이징행 비행기표와 아파트 임차료를 마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그는 1970년대 ‘얼짱’ 양궁 국가대표 출신. 1979년과 1983년 세계선수권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선 여자개인전에 출전했지만 서향순(금메달)과 김진호(동메달)가 시상대에 오르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이후 박 씨는 초중고교 양궁팀을 가르치며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활시위를 당기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늘 텅 빈 느낌이었다. 국제심판이 되자고 결심한 것도 그때였다.

“마흔 살에 영어공부를 시작했어요. 학원에 하루 종일 머물며 영어에만 매달렸죠. 처음에는 단어 한 개 외우기가 힘들었지만 이제는 외국 사람과 농담도 주고받죠.”

박 씨는 2005년 국제심판 자격을 얻었고 지난해에는 독일 라이프치히 세계선수권에서 심판을 맡으며 제2의 양궁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올림픽 자원봉사에서 얻은 경험과 영국 연수의 추억을 후배들에게 돌려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베이징=황태훈 기자 beetlez@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