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엔 농구공… 한손엔 가족… 코트의 슈퍼우먼들

  • 입력 2007년 4월 12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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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한 전주원.
딸과 함께 한 전주원.
한국 농구에 유명한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코트의 대모’로 불린 고 윤덕주 여사에 얽힌 일이다.

1947년 숙명구락부에서 뛰던 윤 여사는 경전구락부와의 전국종합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전반이 끝난 뒤 관중석으로 달려가 배고파 울던 두 살 된 둘째 딸에게 젖을 줬다. 후반에 다시 코트에 선 그는 역전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그런 열정이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이어졌을까.

최근 끝난 여자프로농구 겨울리그에서는 ‘주부 선수’들의 힘겨운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내 여자농구 최고령으로 신한은행을 통합챔피언에 올려놓은 전주원(35). 석 달 가까운 시즌 동안 남편 정영렬(36) 씨와 세 살 된 딸 수빈이가 있는 집에는 두 번밖에 못 갔다.

우승 후 가족과의 반가운 재회도 잠시. 그는 10일 무릎 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출국했다. “수빈이가 ‘엄마, 가지마’라며 펑펑 울었어요. 같이 울 수는 없어 속으로만 눈물을 쏟았죠.”

시댁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사는 전주원은 “시어머니께 애를 맡기다 보니 늘 죄송스럽죠. 가족의 희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혹시 마음이 흔들리고 팀 분위기를 흐릴까 싶어 딸을 숙소에 데려간 적이 없을 만큼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

준우승한 삼성생명의 박정은(30)과 이종애(32)도 기혼녀. 박정은의 남편은 최근 인기를 모은 드라마 ‘하얀거탑’에 출연한 한상진(30) 씨다. 시즌 때 역시 거의 집에 간 적이 없던 박정은은 지난 주말 서울에서 경기 용인시로 이사했다. 7월 팀 숙소 이전에 앞서 미리 근처에 새 보금자리를 잡은 것. “신랑이 운동하는 데 편해야 된다고 해서요.” 모처럼 며느리 노릇을 하려 했던 박정은은 오히려 친정에 가서 푹 쉬라는 시어머니의 말씀에 보약까지 받고는 부산에 내려갔다. 동남아시아로의 여행 계획을 세웠던 박정은은 이번 주말 대표팀 소집에 따라 다시 ‘별거’에 들어간다. “신랑이 완전 우울 모드예요. 어떻게 해야 할지….”

5년 열애 끝에 2002년 결혼한 이종애는 요즘 남편과의 심야 데이트 재미에 푹 빠졌다. 이번 주말에는 만난 지 100일 만에 처음으로 함께 갔던 인천 강화도에 다시 가 볼 예정.

최고 연봉(2억1000만 원) 선수인 김영옥(국민은행)은 남편의 정성어린 외조 속에 시즌 때 다친 손가락 치료를 하고 있다.

최근 여자농구 선수들의 수명이 길어졌지만 주부 선수가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은 여전히 열악하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는 합숙이 많지 않고 자유시간을 충분히 보장하지만 국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아줌마 선수 파이팅!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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