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달간 매일 1만5000m…물에서 살았다… 박태환 세계 제패

  • 입력 2007년 3월 26일 02시 56분


“겨우 열여덟 살이지만 어리광이라곤 찾아볼 수 없어요. 30대 아저씨 같다니까요. 완전히 애늙은이예요.”

박태환(경기고)의 어머니 유성미(50) 씨는 아들이 세계를 제패한 비결로 정신력을 꼽았다.

○ 천부적 유연성에 보통사람 2배 폐활량… 대범함까지

수영은 잠깐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경기. 25일만 해도 지난해 자유형 남자 400m 세계 랭킹에서 박태환(2위)보다 앞선 1위인 미국의 클리트 켈러(25)는 예선 탈락했다. 자유형 800m와 1500m 세계기록 보유자이자 지난 대회 400m 우승자인 그랜트 해킷(27·호주)은 8위(3분 48초 72)로 결선에 턱걸이한 끝에 동메달에 그쳤다.

박태환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 최연소 수영 국가대표로 뽑혔지만 부정 출발로 기량을 펼쳐 보이지도 못한 채 보따리를 사야 했다. 지난해 12월 도하 아시아경기에선 3관왕과 대회 최우수선수가 됐지만 이후 스폰서와 코치를 바꾸는 혼란 속에 몸무게가 6kg이나 빠졌고 훈련을 제대로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그러나 박태환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있는 “편안하게 즐겨라”는 말처럼 주위의 상황에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세계 제패를 향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박태환은 결선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여유를 보였다. 사촌 간으로 잘못 알려진 친한 누나인 아이비의 음악이었다.

이처럼 18세 청소년답지 않은 대담함이 오늘의 박태환을 있게 했다.

여기에 천부적으로 타고난 유연성, 보통 사람의 2배 가까운 폐활량, 그리고 스포츠과학이 박태환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체육과학연구원은 2004년부터 박태환의 폐활량과 기초 체력, 근력 등을 주기적으로 점검해 경기력 향상을 도왔다.

○ 아시아경기 이후 전담팀 꾸려 ‘金프로젝트’ 추진

올해 초 태릉선수촌을 떠나 수영용품 전문 브랜드인 스피도와 후원계약을 하고 개인훈련 웨이트 트레이너, 물리치료사 등으로 박태환 전담팀을 꾸린 것도 큰 도움이 됐다. 박석기 전 대한수영연맹 감독을 코치로, 강용환(강원도청)을 훈련 파트너로 영입하면서 ‘3개월 부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박태환은 근력 회복훈련과 하루 평균 1만5000m를 헤엄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수영에 필요한 근육을 강화하고 지구력을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박태환의 아버지 박인호(56) 씨는 “사실 도하 아시아경기 직후 태환이의 컨디션이 너무 나빠 이번 대회를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역전 우승을 하다니 꿈만 같다”고 밝혔다.

멜버른=전창 기자 jeon@donga.com

■‘프로펠러 朴’… 350m 4위서 380m 지점 1위로

박태환이 금메달을 거머쥔 자유형 남자 400m는 이번 세계수영선수권대회 경영의 첫 결선 종목이다. 전 세계 수영 팬의 관심이 집중된 종목에서 믿기지 않는 막판 역전극을 펼친 박태환은 단숨에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할 계기를 마련했다. 대회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의 TV 시청자 수를 약 10억 명으로 예상하고 있다.

예선 종합 2위로 5레인에 자리 잡은 박태환은 스타트 버저가 울린 뒤 반응속도 0.68초로 결선에 오른 8명 중 가장 빨리 뛰쳐나갔다.

하지만 첫 50m에서 26초 19로 예선 1위를 한 4번 레인의 피터 밴더케이(미국·26초 01)와 우사마 멜루리(튀니지·26초 13)는 물론 예선 8위의 그랜트 해킷(호주·26초 18)에게도 뒤져 4위로 처졌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200∼300m 구간에선 5위로까지 떨어졌다.

박태환이 다시 가속을 시작한 때는 300∼350m 구간부터. 50m 랩타임 28초 62∼29초 04를 유지하던 박태환은 이때 27초 85를 내며 4위로 뛰어올랐다.

이후 마지막 50m 구간인 350∼400m는 입이 벌어질 스피드였다. 일반적으로 전체 랩 중에서 가장 빠른 최초 50m 랩 기록인 26초 19보다도 빠른 26초 06이었다.

박태환은 레이스가 끝난 뒤 “250m 정도까지 상대 선수들과 페이스를 유지한 뒤 스퍼트를 할 생각이었는데 200m까지는 해킷이, 300m 부근에선 멜루리가 앞서나가 힘들었다. 300m를 지나면서 이제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해 스퍼트를 낸 것이 제대로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작전이 적중하지 못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찾아냈던 것.

박태환은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당시 50m당 34, 35회의 팔 젓기를 했지만 1월 29일 이후 두달 가까이 해외 전지훈련을 하면서 근력을 키운 덕택에 턴할 때 킥의 강도가 세지고 또 물을 끌어당기는 힘도 좋아져 50m당 31∼32회의 팔 젓기를 하고 있다. 박석기 코치는 “팔 젓기 횟수(피치)를 줄인 것이 적중했다. 이번 대회의 레이스가 올림픽을 준비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멜버른=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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