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오프히터의 새로운 모델’ 레이예스-사이즈모어

  • 입력 2007년 2월 15일 17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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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동안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리드오프히터는 이치로 스즈키, 쟈니 데이먼, 후안 피에르였다. 세 선수는 폭발적인 스피드와 정확한 타격으로 공격 첨병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렇지만 이들이 계속해서 리그를 지배하는 리드오프히터로 활약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타격, 스피드, 수비, 파워, 강한 어깨, 스타성까지 모든 것을 갖춘 ‘툴가이 리드오프히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23살 동갑내기 리드오프히터 호세 레이예스와 그래디 사이즈모어가 그 주인공.

2006시즌 가장 돋보이는 성적을 남긴 두 선수는 리드오프계의 세대교체를 넘어 현대야구가 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리드오프히터가 탄생했음을 경기장에서 증명하고 있다.

과거에는 빠른 발, 뛰어난 선구안, 수준급 타격만 갖추면 리그 정상급 리드오프히터였다. 1번타자는 1루에 출루한 뒤 득점에 성공하는 것이 주임무였고 다른 역할은 중심타선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리드오프히터에게 다양한 능력이 요구되고 있다. 기존의 스피드, 선구안, 타격 능력만으로는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리드오프히터로 활약할 수 없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타점을 올릴 수 있는 클러치능력이 있어야 하며, 한 방으로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장타력도 요구된다. 출루율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많은 안타를 때려낼 수 있고, 홈런포로 승리를 안겨줄 수 있는 타자들이 리드오프히터로 각광 받고 있다.

또한 빠른 발을 갖췄기 때문에 넓은 수비 범위는 필수조건. 여기에 강한 어깨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야구센스까지 필요하다. 넓은 수비범위와 강한 어깨까지 포함되면서 많은 리드오프히터들의 포지션이 유격수, 중견수, 2루수 센터라인 포지션에 집중되고 있다.

여러가지 능력이 요구됨에 따라 후천적인 노력으로 완성된 타자들보다 처음부터 많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툴플레이어들이 리드오프히터를 주로 맡고 있다.

뛰어난 공격력을 갖춘 리드오프히터들의 등장으로 각 타격랭킹에서도 리드오프히터들의 이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4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알폰소 소리아노를 비롯해 타격왕을 차지한 경험이 있는 이치로 스즈키 등이 대표적인 예. 앞으로도 이러한 양상은 계속될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호세 레이예스와 그래디 사이즈모어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모델에 근접한 대표적인 리드오프히터들이다. 오랫동안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리드오프히터를 맡고 있는 크랙 비지오와 닮은 꼴이긴 하지만 화려함과 다재다능함에서 조금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00년대 최고의 유망주라고 평가 받고 있는 호세 레이예스는 폭발적인 스피드 하나만으로도 많은 야구팬들을 매료시킨다. 2003, 2004시즌 햄스트링 부상으로 제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던 레이예스는 부상의 늪에서 벗어나며 자신의 장점인 스피드로 그라운드를 휘젓고 있다. 2005, 2006시즌 2년 연속 60개 이상의 도루를 기록한 선수는 레이예스가 유일할 정도로 발군의 스피드를 자랑하고 있다. .

레이예스는 타격에서도 날카로움을 더하고 있다. 2005년 161경기에 출전해 홈런 7 타점 58 타율 0.273를 기록했던 레이예스는 2006시즌 성적을 홈런 19 타점 81 타율 0.300까지 끌어 올렸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홈런과 타점. 왜소한 체격에도 빠른 배트 스피드를 앞세워 많은 홈런포를 쏘아 올렸고, 찬스마다 적시타를 뽑아 1번 타순에서 무려 81개의 타점을 생산했다.

레이예스의 타격 상승세는 2007시즌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레이예스는 타격을 함에 있어 게스 히팅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다. 배트 스피드, 강한 손목힘, 정확한 컨택능력, 뛰어난 체중이동만으로 타격을 하고 있는 것. 즉 어떤 공에도 몸이 반응할 수 있으며 예상치 못한 공이 오더라도 안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슬럼프에 빠질 확률이 떨어지는 셈이다. 메이저리그에서 400경기 이상 출전하며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것도 레이예스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한다.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레이예스는 수비까지 제 자리를 찾고 있다. 원래 레이예스에게 가장 돋보였던 능력은 수비력. 메이저리그 입단하기 전인 도미니카공화국에서부터 넓은 수비범위, 매끄러운 글러브질, 총알송구를 인정 받았다.

갑작스러운 포지션 변경으로 잠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자신의 원래 포지션인 유격수로 복귀한 후 놀라운 수비를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레이예스의 넓은 수비범위와 안타성 타구를 가볍게 아웃처리할 수 있는 송구능력은 17, 18개의 에러수를 많아 보이지 않게 한다.

이제 23살인 레이예스는 아직도 성장 가능성이 남아 있다.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훌륭하다. 다른 어린 스타선수들과 달리 겸손함을 유지하고 있으며 배우고자 하는 의욕도 대단하다. 또한 팀에는 레이예스를 대스타로 이끌어줄 수 있는 카를로스 델가도와 카를로스 벨트란 같은 슈퍼스타까지 있다.

내셔널리그에 레이예스가 있다면 어메리칸리그에는 그래디 사이즈모어가 있다. 젊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선수들 중 가장 빠른 성장 속도를 보여주고 있는 사이즈모어는 풀타임 두 시즌만에 리그를 대표하는 리드오프히터가 됐다.

클리블랜드의 마크 샷피로 단장은 고작 세 시즌을 뛴 어린 선수에게 6년 계약과 2345만 달러를 선물했다. 오랫동안 팀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키우겠다는 의도.

제 2의 카를로스 벨트란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이즈모어는 풀타임 첫 해인 2005시즌 홈런 22 타점 81 도루 22 타율 0.289를 기록하더니 지난 시즌에는 홈런 28 타점 76 도루 22 타율 0.290로 성적을 끌어 올렸다.

특히 팀의 리드오프히터가 28개의 홈런을 때려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장타력이 뛰어나 장기적으로는 팀의 3번타자를 맡아야 한다는 분석도 있지만 리드오프히터를 맡으며 공격을 이끌며 트래비스 해프너, 쟈니 페랄타 등에게 찬스를 연결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더 효과적이다.

2006시즌 0.375의 출루율로 만들어낸 134득점(어메리칸리그 1위)으로도 그가 리드오프히터로 뛸 때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이즈모어를 1번에 배치,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들어서게 함으로써 팬들을 즐겁게 할 수 있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스피드는 조금 밀리지만 파워에서 레이예스에 한 발 앞서 있는 사이즈모어는 한 시즌 ‘50 2루타, 10 3루타, 20 홈런, 20 도루’라는 진기한 기록까지 수립했다. 이는 100년이 넘는 메이저리그에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척 클라인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 사이즈모어가 파워와 스피드 모두 정상급임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루수가 부족한 것을 아쉬워한다. 하지만 이 역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스피드와 주루 능력이 떨어져 생긴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 시즌을 뛰면서 빅 리그 적응을 끝마친데다 투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했기 때문에 2007시즌에는 더 많은 도루를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2007시즌에는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하는 사이즈모어의 모습을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사이즈모어 역시 멘탈 적인 면까지 훌륭하다. 어린 나이임에도 앞장서서 팀을 이끌고 있으며 경기 내내 집중력을 잃지 않는다.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을 날리는 허슬플레이도 자주 선보인다.

출중한 기량과 성숙한 멘탈, 풋볼(쿼터백)과 농구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을 만큼 타고난 운동능력과 뛰어난 야구센스는 사이즈모어를 더욱 강력한 리드오프히터로 만들어줄 것이다.

임동훈 스포츠동아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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