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독일월드컵 결산]②‘거품 K리거’

  • 입력 2006년 7월 12일 03시 05분


‘태극전사들이여 진정한 프로가 돼라.’

홍명보(37) 전 축구대표팀 코치는 “우리 선수들은 프로 의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국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지만 정작 선수들은 세계 수준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게 축구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 축구의 ‘거품’은 선수들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 ‘실력은 없고 몸값만 높아졌다’는 게 축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 전문가들은 선수들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처럼 유럽 빅리거를 꿈꾸지만 ‘생각’만 있지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 정신적으로 미성숙… 몸값 올리기에만 관심

“한마디로 프로가 아니다. 자신이 왜 돈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치 자기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우리가 시켜 주는 훈련만 받으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선수는 틈만 나면 술 마시고 노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다. 그게 프로냐.”

한 프로 관계자의 말이다. 훈련을 등한시하고 ‘딴 데’ 눈을 돌리는 선수에게 “그러지 말라”고 충고라도 할라치면 “왜 그래요? 제가 다른 팀으로 가길 원해요”라는 엉뚱한 반응이 돌아온다. 실력을 키울 생각은 없고 연말만 되면 “나보다 못하는 선수가 돈을 더 받는다. 다른 구단에서는 1억 원을 더 준다는데…”라며 몸값 올리는 데만 열을 올린단다.

대학을 졸업한 선수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로에 뛰어든 선수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더 많이 발생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거액의 몸값을 받다 보니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며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물론 절제하며 자신의 실력을 키우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 선수가 ‘프로를 가장한 아마추어’라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들에게서 프로란 ‘돈을 많이 받는 선수’일뿐 ‘자신의 가치를 높여 그 대가를 받는 직업 선수’라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 감독-프런트, 성적에만 급급 선수 눈치 살펴

한국 선수들이 진정한 프로가 되지 못하는 데는 감독과 구단 관계자들의 책임도 크다.

많은 감독은 선수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모른다. 윽박지르고 혼낼 줄만 알았지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지에 대해 고민도 안 한다. 사실 요즘은 감독이 선수에게 큰소리도 못 친다. “다른 팀으로 가겠다”고 선언하면 무능한 감독이 되기 때문이다.

구단 관계자들은 더 심하다. 그동안 이들은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들이 이사회를 통해 정해 놓은 스카우트 룰을 어기면서까지 선수 몸값 상승을 부추겼다. 신인 선수 영입과 관련해 드래프트에서 자유계약제로, 다시 드래프트제로 개념 없이 바뀐 것은 무한 경쟁 탓이다. 선수 몸값 거품은 프로 관계자들이 쌓은 업보다.

이러다 보니 구단 관계자들은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 한 축구인은 “구단 관계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데만 연연하지 축구 발전에 대해선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축구는 그들의 밥줄을 지켜 주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은 “박지성과 이영표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것은 축구에만 매진한 선수의 노력과 PSV 에인트호번 구단의 경영 능력이 합쳐진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국내 선수와 구단 관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 월드스타들은 축구와 가족밖에 모른다

지네딘 지단(프랑스)과 루이스 피구(포르투갈), 데이비드 베컴(잉글랜드)….

이들은 왜 세계적인 스타일까. 이들은 가족과 축구밖에 모른다. 여성 보컬 그룹 ‘스파이스걸스’의 빅토리아와 결혼해 ‘딴 데’ 눈을 돌린 것처럼 보인 베컴도 사실은 축구만 하는 선수다. 베컴은 “프리킥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정규 훈련 외에 매일 1, 2시간씩 혼자서 연습했다. 그리고 축구 외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고 자서전 ‘마이 사이드’에 썼다. 그는 지금도 훈련과 몸 관리에서는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지단이 월드컵 결승에서 ‘박치기 퇴장’을 당했음에도 전 세계 기자들이 그에게 최우수선수상을 준 것은 그동안 그가 축구에만 전념했다는 공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축구에 열정을 바쳤고 그 대가로 월드 스타가 된 것이다. 축구 선수는 축구로만 평가받아야 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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