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비 7명 ‘빗장’ 대결…결승 격돌 이탈리아-프랑스 분석

  • 입력 2006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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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와 프랑스의 결승전. 이 경기는 한마디로 방패와 방패의 대결. 과연 어느 쪽이 뚫릴까.》

축구가 맛이 없다. 도무지 재미가 없다. 하나같이 닮은꼴이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기계음이 자꾸만 되풀이된다. 축구는 이미 톱니바퀴 같은 ‘유럽축구’로 단일화(세계화)됐다. 브라질의 시(詩)같이 아름답던 축구도 이젠 거친 산문이 돼 버렸다. 네덜란드의 혁명적 축구도 ‘열정’이 사라져 버렸다. 그들의 토털 사커 속엔 이제 펄펄 끓는 ‘실험정신’이 없다. ‘김빠진 맥주’ 같다. ‘정열’의 스페인이 새바람을 몰고 왔지만 ‘늙은 수탉’의 노회함에 무릎을 꿇었다. 들꽃같이 싱그러운 가나 축구도 지긋지긋한 ‘신형 카테나치오(빗장수비)’의 덫에 걸렸다.

●프랑스도 ‘아트 사커’ 사라지고 수비 치중

이탈리아 축구의 화두는 ‘판타지아’다. 프랑스 축구의 모토는 ‘아트 사커’다. 두 팀 모두 ‘자유혼’을 꿈꾼다. 불확실성의 울퉁불퉁한 발로 ‘절대 자유’를 지향한다. 하지만 그것은 말뿐이다. 이탈리아의 판타지아는 ‘신형 카테나치오’로 포장됐다. 뒷문을 꽁꽁 잠그는 것은 똑같다. 다르다면 전보다 앞발톱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아트’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사라졌다. 노회함만 남았다. 수비를 철저히 하다가 빈틈이 생기면 번개처럼 역습을 하거나 세트피스(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골을 넣는 식이다. 두 팀은 철저히 수비 지향적이다. 매 경기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하는 경기 최우수선수도 이탈리아는 전원이 수비수(수비형 미드필더 안드레아 피를로 포함)다. 젠나로 가투소(우크라이나전), 피를로(가나·독일전), 마르코 마테라치(호주전), 잔루이지 부폰(호주전)이 바로 그들이다. 프랑스도 비슷하다. 지네딘 지단(브라질전)을 제외하곤 릴리앙 튀랑(포르투갈전), 파트리크 비에라(토고·스페인전), 클로드 마켈렐레(스위스전)가 수비수다.

결국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7명의 수비수(골키퍼+포백+수비형 미드필더 2명)가 게임을 주도한다. 이들은 지그재그로 촘촘히 ‘철의 방어선’을 치고 좀처럼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프랑스는 아예 수비수들이 움츠리고 나오지도 않는다. 이들의 방어벽은 천하의 브라질 ‘매직 4중주(호나우두-호나우지뉴-아드리아누-카카)’가 두드리고 두드려봤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한국의 설기현은 “거의 죽음이었다”며 진저리를 쳤다.

●이탈리아 후반 선제공격 승부수 띄울 수도

이탈리아-프랑스 기록 비교(6경기)
이탈리아항목프랑스
11 (1.83)득점(평균)8 (1.33)
토니(2) 그로소(1)델피에로(1) 인차기(1)토티(1) 참브로타(1)질라르디노(1) 피를로(1)이아퀸타(1) 마테라치(1)득점자앙리 (3)지단 (2)비에라 (2)리베리 (1)
1 (0.17)실점(평균)2 (0.33)
차카르도(이탈리아)자책골 1실점 상대비야(스페인) PK 1박지성(한국) 1
78총 슈팅64
45유효 슈팅30
30오프사이드27
124크로스133
7유효 프리킥2
39코너킥34
39역습23
586롱패스431
1889쇼트패스1885
89/147파울/태클101/123
10경고13
2퇴장0

이탈리아는 윙백들의 오버래핑이 활발하다. 좌우 윙백인 파비오 그로소와 잔루카 참브로타가 쉬지 않고 오르내린다. 그만큼 공수 전환이 빠르다. 포백 중 3명이 1골씩 넣은 것도 다 그런 이유다. 그만큼 피를로-가투소로 이어지는 수비형 미드필더의 수비 가담이 거의 환상적이다. 더구나 이들은 AC밀란에서 6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단짝. 보지 않고도 패스가 가능할 정도다. 이탈리아 득점자 10명은 전 포지션에 걸쳐 있다. 6명의 수비수와 공격수가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슛을 쏘아 댄다. 하지만 프랑스는 공격수인 티에리 앙리, 지단, 프랑크 리베리와 세트피스 상황에서 슛을 날리는 수비형 미드필더 비에라 4명뿐이다. 득점 루트가 단순하다.

수비 팀들 간의 경기는 먼저 덤비는 쪽이 당한다. 먼저 핏대 세우는 팀이 절대 불리하다. 그래서 ‘지루한 닭싸움’이 되기 쉽다. 자칫하면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처럼 승부차기로 갈지도 모른다. 튀랑-마켈렐레가 이끄는 프랑스 수비수들은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백전노장. 맥을 읽는 데 도사들이다. 어차피 피 말리는 반집 승부에선 1골 먼저 넣는 팀이 이긴다. 이들은 바둑의 이창호 국수처럼 참고 또 참으며 단 한번 올 기회를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변했다. 선제공격을 즐긴다. 2000 유럽선수권과 2002 한일 월드컵에서 1골 먼저 넣고 지키려다가 당한 교훈을 뼈저리게 알고 있다. 후반 중반 이후 늙은 수탉들이 지칠 때쯤 승부수를 띄울지도 모른다.

아주리와 레블뢰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로 각각 ‘푸른색’을 뜻한다. 강속구 투수들의 팽팽한 투수전. 지루한 0의 행진. 삐끗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절체절명의 경기. 과연 어느 팀이 상대 골문 앞에서 ‘파란 벙어리들’이 될지 궁금하다.

이래저래 월드컵 축구는 갈수록 재미없다. 투박하지만 타는 목마름으로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태극전사들의 투혼이 자랑스럽다. 프랑스전 박지성의 ‘골든 터치 골’이 그립다. 마침내 터진 한 송이 붉디붉은 동백꽃. 그것은 프랑스 철문을 산산조각 낸 통쾌한 ‘어뢰탄’이었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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