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월드컵]지친 몸 툭툭 털고 공뺏기 게임… 여기는 글래스고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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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은 즐겁게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트레이닝캠프가 차려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머리파크에서 가볍게 달리기를 하며 첫 훈련을 시작했다. 독일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 태극전사들의 표정은 밝다. 글래스고=김동주  기자
훈련은 즐겁게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트레이닝캠프가 차려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의 머리파크에서 가볍게 달리기를 하며 첫 훈련을 시작했다. 독일 월드컵을 향한 마지막 담금질에 들어간 태극전사들의 표정은 밝다. 글래스고=김동주 기자
간밤에 비가 내리며 흐렸던 날씨는 눈부시게 푸른 하늘로 바뀌었다. 풀밭과 나무가 우거진 녹색의 작은 언덕이 사방을 둘러싼 곳에 한국축구대표팀의 해외 전지훈련 장소인 ‘머리파크’가 있다.

이곳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지휘했던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레인저스 구단의 전용 훈련장. 바람이 많이 부는 가운데 한국의 초가을처럼 선선했다. 소음이 없어 사방이 고요했고 짙푸른 하늘 위로 흰 구름이 흘러 다녔다.

28일 스코틀랜드 전지훈련 첫날을 맞은 한국대표팀은 둥글게 원을 그려 공 뺏기 게임과 가벼운 달리기로 오전 훈련을 마쳤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박주영(FC 서울)도 이운재(수원 삼성)도 간밤의 지친 표정을 털고 웃으며 훈련에 임했다. 선수들의 웃음소리가 높아져 갔다. 기상 변화가 심한 이곳은 하루에도 몇 번씩 비가 내린다. 선수들이 훈련을 마치자 곧 비가 쏟아졌다.

한국대표팀은 이곳에서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훈련하며 2006 독일 월드컵에 대비한 최종 점검을 한다. 2일 노르웨이, 4일 가나와 평가전을 치르고 6일 독일로 들어선다.

대표팀은 27일 16시간의 비행 끝에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입성했다. 북유럽에 가까운 스코틀랜드는 오후 9시가 가까워져도 해가 저물지 않았고 오전 4시면 해가 떴다. 날은 자주 궂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 희망을 상징하듯이.

글래스고 인근 교민은 150여 명. 이 중 절반이 마중을 나왔다. 교민들은 한국에서 직수입한 붉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레즈 고 투게더’, ‘투혼’ 등이 새겨진 티셔츠는 현지에서 구할 수 없어 한국에 단체 주문을 했다.

공항 경찰이 갑자기 늘어난 인파를 보고 출동했다가 “한국축구대표팀이 온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지 승객들도 휴대전화 카메라로 열심히 이 광경을 촬영했다.

교포 이정순(40) 씨는 “대표팀을 마중 나오기 전 교민들이 단체로 축구 경기를 하고 왔다. 주말이면 교포들이 축구로 친목을 다진다”고 했다.

인파에 둘러싸인 아드보카트 감독은 “매우 긴 하루였다. 그러나 이곳은 매우 훌륭한 환경과 시설이 있어 훈련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정환(뒤스부르크)은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머리를 황금색에서 은보라색으로 바꾼 이천수(울산 현대)는 “잘 해 보자는 뜻으로 염색을 했다”며 새로운 각오를 보였다.

글래스고=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 주장 이운재 빼고 ‘2인1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즐겁게 지내!”

딕 아드보카트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의 마음 하나하나까지 다스린다. 전지훈련 캠프인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극전사 23명의 방을 배정하는 데도 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신경을 썼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미리 정한 ‘짝짓기’를 통해 선수들에게 스코틀랜드에서 함께 동고동락할 룸메이트를 정해줬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지난해 10월 첫 소집훈련 때는 서로 장단점을 비교하라는 뜻에서 포지션별로 방을 배정했지만 이번엔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짝을 지어 줬다. 서로 의지하며 심리적인 안정을 취하라는 뜻이다.

먼저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네덜란드 진출까지 함께 하며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대표팀 좌우 윙백 이영표(토트넘 홋스퍼)와 송종국(수원 삼성)을 함께 묶었다. 둘이 훈련할 때나 돌아다닐 때 늘 붙어 다니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것을 감안한 것이다. 단짝이 아니면 소속팀이나 같은 포지션을 위주로 방을 배정했다. 윙포워드 이천수(울산 현대)는 같은 구단 미드필더 이호와 ‘합방’을 한다. 중앙 수비수 최진철(전북 현대)과 김진규(주빌로 이와타)도 같은 방. 골키퍼 김용대(성남 일화)와 김영광(전남 드래곤즈)이 함께 방을 쓰게 됐고, 수비수 김영철(성남)과 김동진(FC 서울)이 짝을 이뤘다. 막내 박주영과 백지훈(이상 FC 서울)도 한방이다.

수비수 김상식(성남)은 소속팀 후배이자 수비형 미드필더인 김두현을 룸메이트로 맞았다. 선수단 숫자가 홀수인 탓에 이운재는 짝이 맞지 않아 본의 아니게 독방을 쓰게 됐다.

글래스고=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글래스고의 ‘아드보 애증’

아드보카트는 글래스고의 영웅? 원수?

한국축구대표팀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1998년부터 3년 동안 스코틀랜드 프로축구리그 글래스고 레인저스 감독을 맡았다. 1999년과 2000년 스코틀랜드 축구협회(FA)컵과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2관왕에 올랐다.

글래스고에는 같은 지역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이 있다. 하나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이끌던 레인저스, 다른 팀은 셀틱스. 1880년대 생긴 두 팀은 세계 축구사에 손꼽히는 전통의 라이벌. 전투에 가까운 거친 경기를 하기로 유명하다.

글래스고에서 10년째 거주하는 교포 김철웅(40) 씨는 “글래스고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는 레인저스 팬, 다른 하나는 셀틱스 팬”이라며 두 팀의 라이벌 관계가 얼마나 뜨거운지를 설명했다. “길가는 학생들을 보라. 파란색 티셔츠와 녹색 줄무늬 티셔츠가 많다. 파란색은 레인저스, 녹색은 셀틱스 유니폼이다. 아드보카트에 대해 물어 보면 파란색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은 영웅이라 답하고 녹색을 입은 사람들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래스고에서 두 팀의 팬들이 워낙 격렬하게 응원해 축구 중계가 있는 날 술집에 갈 때는 파란색이나 녹색 티셔츠를 입고 가지 않는 게 불문율이 됐다고 한다. 두 팀의 팬들이 싸움을 벌일까봐서다.

유학생 강주영(27) 씨는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셀틱스가 1위, 레인저스가 3위를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떠난 후 레인저스가 챔피언 자리를 내주자 당시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많다”고 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으로서는 스코틀랜드가 ‘행운의 땅’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어떤 행운을 엮어 낼까.

글래스고=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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