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월드컵]여성 축구마니아들 “남자만 월드컵 기다리나요”

  • 입력 2006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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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의 묘미에 빠져든 여성들이 많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성 축구동호회들이 곳곳에서 친선 경기를 즐기고 ‘붉은 악마’는 열성 여성 회원들로 넘쳐난다. 7일 국내 최대 여성 축구동호회 ‘FC 헤이데이’ 회원과 서울 종로구 여성 축구단이 주한 미군 여성축구팀과 친선 경기를 했다. 왼쪽은 2002년 월드컵에서 열광하는 여성 축구팬. 사진 제공 ‘FC 헤이데이’·동아일보 자료 사진
축구의 묘미에 빠져든 여성들이 많다. 2002 한일 월드컵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여성 축구동호회들이 곳곳에서 친선 경기를 즐기고 ‘붉은 악마’는 열성 여성 회원들로 넘쳐난다. 7일 국내 최대 여성 축구동호회 ‘FC 헤이데이’ 회원과 서울 종로구 여성 축구단이 주한 미군 여성축구팀과 친선 경기를 했다. 왼쪽은 2002년 월드컵에서 열광하는 여성 축구팬. 사진 제공 ‘FC 헤이데이’·동아일보 자료 사진
“골 결정력도 중요하지만 탄탄한 수비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이경희(43·여) 씨는 2006 독일 월드컵 출전 준비를 하고 있는 축구 국가대표팀에 이같이 주문했다. 이 씨는 서울 종로구 여성축구단 주장이다. 그의 포지션은 김남일 선수와 같이 수비형 미드필더. 이 씨는 “안정된 수비가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다”고 말했다.

‘축구는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라는 것은 옛말이 됐다. 장을 보는 주부 2명이 한국팀의 첫 상대인 토고팀 선수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며 수다를 떠는 모습을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광고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1일 오후 서울 광진구 중곡동 용마초등학교 운동장. 여성 20여 명이 2인 1조 패스 및 골문 앞 전술 훈련을 한 뒤 풀타임 실전 게임까지 5시간 동안 축구공을 찼다.

이들은 국내에서 가장 큰 여성축구동호회 ‘FC 헤이데이’의 회원들. 이 동호회 회원은 무려 700여 명이다.

이 동호회의 운영자는 이향림(23·광운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 그는 2002 한일 월드컵의 4강 신화에서 느낀 감동을 체험하기 위해 2004년 10월 동호회에 가입했다. 이 동호회는 같은 해 1월 7일 출범했다.

이 씨는 “딕 아드보카트 국가대표팀 감독이 포백 수비를 쓴 뒤 헤이데이도 스리백에서 포백으로 수비체제를 바꿨다”며 “포백 수비체제에서는 오프사이드 트랙을 쓰기가 쉽지 않고 공수전환도 빨리 되지 않아 이 부분을 집중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공격수에게 한번에 연결하는 장거리 패스의 정밀도를 높여 달라”고 국가대표팀에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검게 그을린 종아리 때문에 치마를 입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매주 공을 차고 나면 태극전사가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

한일 월드컵 이후 여성축구단이 크게 늘었다. 한일 월드컵 직전 다음 카페의 여성축구동호회는 20개 안팎이었지만 요즘은 150개가 넘는다. 이 기간에 서울 지역 자치구가 창단한 여성축구단도 6개에서 16개로 늘었다. 서울 구로 강북 강동구 등은 6, 7월 여성축구단을 창단하기로 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의 행정 간사 김정연(33·여) 씨는 “붉은 악마 회원 30만 명 가운데 25%가 여성”이라며 “적극적인 회원 1만여 명 가운데 ‘극렬분자’는 여성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탐돌이’(북을 치며 응원을 리드하는 사람)나 깃발 돌리기를 하는 여성도 많다는 것.

붉은 악마 회원 양미진(25·여) 씨는 독일 월드컵 원정 응원을 위해 3월 회사에 사표를 냈다.

양 씨는 “한일 월드컵이 끝난 뒤 독일에 응원 가기 위해 취직했다”면서 “한국 예선 3경기의 티켓을 모두 구했고 월드컵이 끝난 뒤 3개월 정도 유럽여행을 다닐 수 있는 목돈도 마련했기 때문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외국계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여성축구단 ‘드림’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는 강민성(32·여) 씨는 “독일 그라운드를 누빌 박지성 선수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뛴다”며 “국민이 여자 국가대표팀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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