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포커 페이스’ 神弓이 되다

  • 입력 2004년 8월 19일 02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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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진에게 밀려 ‘만년 2인자’였던 박성현(전북도청)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박성현은 18일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후배 이성진(전북도청)을 110-108로 물리치고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매서운 눈으로 사선을 바라보고 있는 박성현의 모습이 경기장의 대형 전광판에 비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윤미진에게 밀려 ‘만년 2인자’였던 박성현(전북도청)이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박성현은 18일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후배 이성진(전북도청)을 110-108로 물리치고 대망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매서운 눈으로 사선을 바라보고 있는 박성현의 모습이 경기장의 대형 전광판에 비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궁술을 관장하는 태양신 아폴론도 세계 최강 태극 여전사의 올림픽 6연패만은 저지할 수 없었다.

2004 아테네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이 열린 18일 파나티나이코 스타디움. 섭씨 32도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정작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은 시속 6km로 평소에 비해선 잔잔했다. 한국의 우승은 이때부터 예상됐다.

하지만 영광의 올리브관은 세계 랭킹 1위로 올림픽 2연패에 도전한 2000년 시드니대회 챔피언 윤미진(21·경희대)이 아니라 동갑내기 라이벌인 랭킹 2위 박성현(전북도청)의 몫이었다.

윤미진이 8강전에서 일찌감치 탈락해 전북도청 선후배 사이인 박성현과 19세 소녀 궁사 이성진이 맞붙은 결승전. 한국 선수끼리의 맞대결이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은 덜했지만 이 경기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한 최고의 명승부로 남았다.

첫발을 박성현이 10점 만점, 이성진이 8점을 쏘았지만 1엔드가 끝났을 때는 26-26으로 동점. 이어 이성진이 2엔드 세 발을 모두 10점으로 장식하는 퍼펙트 행진을 벌이자 박성현은 27점으로 흔들렸다. 그러나 3엔드에서 1점을 따라붙은 박성현은 4엔드 들어 10번째와 11번째에서 다시 1점씩을 추격해 기어이 동점을 만들고 말았다.

이제 마지막 한 발로 메달 색깔을 결정해야 할 순간. 선글라스 너머 표정의 변화가 없는 박성현은 한동안 뜸을 들인 뒤 활을 당겼고 시위를 떠난 화살은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 과녁 정중앙을 꿰뚫었다. 이어 이성진이 쏜 마지막 화살은 8점을 기록하며 박성현이 110-108로 우승.

승부가 결정 나자 패자는 승자에게 악수를 청했고 승자는 패자를 따뜻한 포옹으로 맞이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가장 안정적인 경기를 펼친 박성현은 앨리슨 윌리엄슨(영국)과의 준결승 7발째에서 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경욱이 했던 것처럼 중계 카메라를 맞히는 퍼펙트 골드를 연출하기도 했다.

박성현은 2000년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지난해 뉴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위, 대구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우승한 게 전부.

한편 동하계를 통틀어 한국의 올림픽 출전 사상 첫 2관왕 2연패를 노렸던 윤미진은 8강전에서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금메달리스트인 위안수츠(대만)의 징크스를 깨지 못하고 105-107로 져 탈락했다.

아테네=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남자용 활 쏘는 ‘연습벌레 장사’…金 박성현

2001년 국가대표 선발전 때의 일이다. 경기 중 활을 못 쓰게 된 박성현은 남자선수 김청태의 활을 빌려 경기를 계속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만큼 박성현의 스타일은 남성적이다.

1m70, 72kg의 뛰어난 신체조건을 가진 박성현은 남자 선수들이 사용하는 강도 44.5파운드짜리 활을 쓴다. 실력과 근성을 갖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기록을 내는 박성현은 2001년 베이징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경욱을 꺾고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올해 국가대표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국내 1인자. 하지만 지난해 유럽 그랑프리대회, 뉴욕 세계선수권대회, 아테네 프레올림픽대회 등 해외무대에서 모두 윤미진에게 우승을 내주는 등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여 ‘2인자’에 머물렀다.

‘군산 토박이’ 박성현은 전북체고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무명이었으나 2001년 전북도청에 입단해 서오석 감독의 집중지도로 빛을 본 ‘노력파 선수’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속전속결로 승부 ‘겁없는 10대’…銀 이성진

이성진은 전 국가대표 김조순과 윤혜영을 배출한 명문 홍성여고 출신의 ‘무서운 10대’.

1m64, 65kg으로 당당한 체격이며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활을 쏘는 게 최대 강점이다. 여자대표팀의 서오석 감독은 “아주 공격적인 슈팅을 구사한다. 활을 쏘는 타임도 빨라 ‘속전속결’로 승부를 보는 스타일”이라고 설명.

이성진은 육상 단거리 선수 출신으로 충남 홍주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양궁을 시작했다. 활달한 성격이지만 활이 잘 안 맞을 땐 화장실에 가서 눈물을 펑펑 쏟는 ‘울보’.

한국여자양궁은 전통적으로 10대가 국제무대에서 초강세를 보인 종목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 개인전 금메달리스트인 서향순은 당시 광주 중앙여고생이었고 ‘신궁’ 김수녕은 청주여고 재학시 88서울올림픽을 제패했다. 윤미진 역시 10대 시절인 경기체고 재학시절 시드니올림픽 2관왕에 올랐다. 이번에도 10대 돌풍의 신화가 이어진 셈이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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