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올림픽]4연속 한판승… 첫金은 화끈했다

  • 입력 2004년 8월 17일 02시 23분


남은 시간은 9초.

이미 유효 2개와 효과 1개를 땄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도 우승이었다.

하지만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한국마사회)는 그것으로 성에 안찼다. 비탈리 마카로프(러시아)에게 주특기인 업어치기를 시도한 뒤 곧바로 안뒤축을 걸었다. 기술이 제대로 들어갔다. 안간힘을 쓰던 마카로프가 ‘쿵’하고 쓰러졌다. 주심의 팔이 하늘을 향해 번쩍 들렸다. 한판이었다.

이원희는 무릎을 꿇고 잠시 기도를 한 뒤 양팔을 번쩍 들었다. 오랜 세월 땀과 눈물을 흘리며 바라던 오직 하나. 금메달의 꿈을 마침내 이루는 순간이었다.

그 목표를 달성한 이원희는 권성세 유도 남자 감독과 감격스러운 포옹을 한 뒤 200여 한국 응원단의 “대∼한민국”의 함성 속에 경기장을 돌며 환호에 답했다. 그 응원단에는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와 누나도 있었다.

16일 아테네 아노리오시아홀에서 열린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 유도 73kg급. 이원희는 금메달을 목에 걸 때까지 치른 5판 가운데 4판을 한판승으로 장식하며 올림픽 챔피언에 등극했다.

특히 결승에선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2분40초 만에 들어메치기 유효로 선취 득점에 성공하며 승부를 유리하게 몰고 갔다.

이원희는 “너무 좋아 실감나지 않는다. 한국 가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기분날 것 같다”면서 “그동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내게 능력주신 자에게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성경 구절을 되뇌며 극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 처음에 큰 산 두개를 넘은 뒤 자신감이 들었다”며 “앞으로 교만하지 않고 아시아경기대회 우승으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주요 오픈대회 우승을 휩쓸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날 함께 출전한 북한의 계순희와 공동 우승을 못 한데 대해선 “함께 금메달을 못 따 굉장히 아쉽다. 만나면 무어라 위로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이원희는 자신의 말대로 초반부터 껄끄러운 상대를 만나 부담스러운 승부를 펼쳐야 했지만 어차피 정상을 향해 넘어야 할 산이라면 피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다졌다.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뒤 2회전에서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인 아나톨리 라류코프(벨로루시)를 만났다. 이원희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할 때 유일하게 한판으로 꺾지 못했던 라류코프와 접전 끝에 경기 종료 44초전 어깨로 메치기 유효를 따내 우세승을 거뒀다. 3회전은 산 넘어 산. 지난해 코리아오픈 결승에서 48연승 행진을 막았던 제임스 페드로(미국)와 붙게 된 것.

그러나 설욕을 다짐한 이원희는 종료 1분23초전 페드로의 양 다리 사이를 파고들어 소매들어 업어치기 한판승을 거뒀다. 눈엣 가시를 모두 뽑아낸 이원희는 비로소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8강전에서 우크라이나의 겐나디 벨로디드를 경기 시작 26초 만에 소매잡아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제치고 4강까지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빅토르 비볼(몰도바)에게 1분24초 만에 먼저 업어치기 절반을 내줘 위기를 맞았으나 바로 11초 후에 빗당겨치기 한판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기세를 올렸다.

한편 여자 57kg급에 출전한 계순희는 준결승까지 4판 가운데 3판을 한판으로 이겼으나 아쉽게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았다.

그래도 계순희는 96애틀랜타올림픽 48kg급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00년 시드니올림픽 52kg급 동메달에 이어 3체급에 걸쳐 올림픽 메달을 거머쥐는 괴력을 과시했다.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이원희 누구인가…작년 혜성처럼 등장 48연승 대기록

유도 남자 73kg급에서 우승한 이원희는 대타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세계 정상에 오른 드라마 같은 인생역전의 주인공. 이원희는 2002년까지만 해도 보성중고-용인대 3년 선배인 ‘유도 천재’ 최용신(한국마사회)의 그늘에 철저히 가려진 무명이었다. 하지만 최용신의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지난해 헝가리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 우승, 2003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2004 모스크바오픈 우승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연승을 거두며 체급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기록한 48연승은 국내 최다 연승기록.

서울 홍릉초등학교 4년 때 유도를 시작했고 현재 공인 4단. 주특기는 빗당겨치기지만 강한 힘을 바탕으로 모든 기술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상태-이상옥씨 부부의 1남1녀 중 둘째로 모교인 용인대에서 후학을 지도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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